현장 농민들이 말하는 신동진, 다수확 아닌 ‘고품질’ 품종

보급종 공급 중단 시 ‘강제로’ 다른 품종 선택할 수밖에 없어

전북 쌀 이미지 하락 및 재배 적응 전 농가소득 하락 우려 커

농민들 “품종 선택은 농민 권리, 정부가 일시에 바꿀 문제 아냐”

  • 입력 2023.04.09 18:00
  • 수정 2023.04.09 19:58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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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30여년 째 전북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조경희 김제시농민회 조직위원장이 지난 5일 김제시 봉남면에 위치한 자신의 저장고에서 못자리를 앞두고 저장 중인 신동진 벼를 보며 정부 보급종 퇴출과 관련해 이야기하던 중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꺼내 물고 있다. 한승호 기자
30여년 째 전북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조경희 김제시농민회 조직위원장이 지난 5일 김제시 봉남면에 위치한 자신의 저장고에서 못자리를 앞두고 저장 중인 신동진 벼를 보며 정부 보급종 퇴출과 관련해 이야기하던 중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꺼내 물고 있다. 한승호 기자

 

“품종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지금껏 재배하고 있다. 낟알의 크기가 다른 품종과 비교해 월등히 큰 데다 밥맛이 좋고 소비자도 이 품종을 선호하다 보니 다른 것보다 수량이 적게 나와도 재배가 쉽게 확대됐다. 품질 좋고 소비자들도 신동진을 찾으니 가격도 다른 품종보다 높게 형성됐고, 수량이 적어도 가격이 높아 소득이 유지되니 농민들이 지금까지 재배 중인 거다. 그런데 정부에선 지난해 쌀값이 폭락한 게 과잉생산 때문이고 쌀을 적정 생산하기 위해 다수확 품종인 신동진 재배를 막겠다는 얘길 하고 있다. 현장서 직접 20년 넘게 재배해본 결과 신동진은 절대 다수확 품종이 아니고 오히려 고품질 품종에 속한다. 이는 소비로 확실히 증명된다.”

지난 4일 전북 군산시 대야면에서 만난 농민 조판철(70)씨의 얘기다. 50년 쌀 농사 경력의 조씨는 덧붙여 “농민들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농식품부가 이런 정책을 내놓는 건지 묻고 싶다.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농민의 자부심을 짓밟는 행위다”라며 “정부가 진정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을 생각한다면 농민을 이렇게 푸대접할 순 없다. 농민이 이거 심으라면 심고 저거 심으라면 저거 심는 존재인가. 쌀 수급 안정은 품종 운운할 문제가 아니고 과잉 또는 부족 시 정부가 얼마만큼의 의지를 갖고 어떤 정책을 펼치느냐에 달렸다”라고 말했다.

지난 2월 말 전라북도의회가 발표한 ‘신동진 보급종 공급 중단 계획 즉각 철회’ 기자회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북 전체 벼 재배면적의 약 53%를 신동진 품종이 차지한다. 전북 내 14개 시·군이 공공비축미 매입 제1품종으로 신동진을 선정할 만큼 신동진이 지역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상상 이상으로 큰 상황이다. 특히 전북 내에서도 신동진 재배면적이 73.1%로 가장 높은 군산시에서는 보급종 공급 중단 시 발생할 피해에 극심한 우려를 전했다.

지난 4일 만난 군산시농민회 소속 농민들은 “보급종 공급이 중단되면 품종은 순도를 잃고 시장에서 사라지는 수순을 밟게 된다. 명맥이 끊기게 되는 거다”라며 “신동진은 낟알의 크기가 월등히 커 다른 품종과 쉽게 구별되고 훌륭한 밥맛과 장기간 보관 시에도 품질이 유지되는 특성 등으로 그간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아왔는데 신동진 보급종 공급을 중단하고 신동진과 낟알의 크기가 비슷한 품종의 공급을 장려한다면 한시적으로 소비가 유지될 순 있으나 결국 전북 쌀 소비가 급감하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신동진 대신 참동진을 심으라고 하는데 RPC에서도 그렇고 시장, 소비자들 입장에서 아직까지 신동진이 아닌 참동진 등의 전북 쌀은 그야말로 ‘잡벼’로 취급된다. 그만큼 신동진 브랜드가 굳건하다는 얘기고,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만큼 수취가격의 차이도 큰 편이다”라며 “참동진이 신동진보다 병충해 저항성이 높고 재배방법이나 식미 등이 매우 비슷하다고 해도 처음 재배하는 품종이다 보니 적게는 2~3년 동안 농가 입장에선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신동진 보급종 공급 중단은 정부가 누가 봐도 눈에 빤히 보이는 피해를 농민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밖에 안 된다”라고 말했다.

조경희 김제시농민회 조직위원장도 “품종 특성에 맞게 농사를 잘 지으면 다수확 품종이 될 수도 있는 거고, 신동진처럼 도복을 방지하고 품질 유지를 위해 적정량만 수확하게 농사지으면 다수확 품종이 아닌 거다. 생산량을 기준으로 정해놓고 이건 다수확 품종, 이건 고품질 품종으로 나누는 건 농업을 아는 사람 입에서 나올 수 없는 얘기다”라며 “아직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조차 받지 못한 품종(참동진)인데 무턱대고 신동진 대신 참동진을 재배하라는 발상 자체도 이해할 수 없다. 지금 정부 발표대로면 참동진이 신동진보다 병충해 발생 우려도 더 적고 도복 위험도 낮다. 그러면 신동진보다 참동진 수확량이 더 나올 수 있다는 얘기인데, 대체 어떻게 쌀 적정생산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이어 조경희 조직위원장은 “어떤 품종으로 어떻게 농사를 지을지는 농민만이 선택할 수 있다. 많은 품종을 재배해봤고, 지금도 재배 중이지만 직거래 시 가장 호평 받는 벼 품종은 신동진이다. ‘소비자에게 사랑받고 생산자인 농민이 원하는 품종이다’라는 것 이상의 평가가 있을 수 없는 만큼 20년 전 수량성을 근거로 일시에 품종을 없애버리는 건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면서 “지난해 쌀값 폭락의 후속조치 차원이라면 쌀 적정생산과 식량자급률 제고를 위해 타작물 재배 대상품목을 대폭 확대하고 이 경우 직불금 등으로 소득을 보전하는 정책을 펼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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