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선거제, 유권자가 노력해야 좋은 조합장 뽑는다

후보-유권자 갈라놓는 선거제

유권자 역량에 조합 운명 걸려

선거 이후 선거제도 개선 절실

  • 입력 2023.02.26 18:00
  • 수정 2023.02.26 19:18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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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 ‘난이도’란 게 존재해선 안되지만, 농협 조합장 선거는 유권자 입장에서 ‘난이도 극상’에 해당하는 어려운 선거다. 선거제도가 후보자들의 공정한 경쟁과 유권자들의 합리적 선택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동시조합장선거의 근거법인 「공공단체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위탁선거법)」은 혼탁한 선거문화를 정돈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선거운동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건 후보자 본인뿐이고 기간은 선거일 직전 겨우 13일이다. 공개석상 연설이나 후보자 대담·토론회는 고사하고 공약서 한 부, 현수막 한 장도 만들 수 없다. 후보자의 견해가 추상적으로 담긴 한 장짜리 공보물이 유권자들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전부다.

그 외엔 후보자가 조합원들에게 열심히 명함과 전화·문자를 돌릴 뿐이다. 다만, 현직 조합장이 아닌 후보자는 전체 조합원 명단을 파악할 수 없다. 누가 유권자인지도 모른 채 손에 닿는 대로 인사를 해야 한다. 반면 현직 조합장은 조합원 명단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직무 과정에서 사실상 상시적인 자기홍보가 가능하기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도 늘 따라붙고 있다.

폐쇄적인 선거제도는 오히려 부정선거를 조장한다. 공개석상에서 유권자를 만날 수 없으니 암암리에 만나고, 정책적 담론을 제시할 수 없으니 밥 사고 돈 주는 후보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위탁선거법이 적용된 최근 두 차례의 조합장 선거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돌아보면 답이 나온다.

위탁선거법은 유권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우리 농협에 좋은 조합장을 앉히기 위해선, 유권자들이 직접 후보자의 면면을 찾아내 검증해야 하고 각종 부정의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 세상 그 어떤 선거보다도 유권자들이 노력과 숙고를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9년 3월 13일 제2회 전국 동시조합장선거 당일 충남 당진 고대농협 투표소에서 조합원들이 투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한승호 기자
2019년 3월 13일 제2회 전국 동시조합장선거 당일 충남 당진 고대농협 투표소에서 조합원들이 투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한승호 기자

그렇다면, 조합장 선거의 공정성은 언제까지 제도적 보장이 아닌 유권자의 역량에 의존해야 할까. 법을 만들고 고치는 국회에서도 문제의식은 오래 전부터 팽배했다. 19대 국회에선 위탁선거법이 제정된 직후인 2014년 11월, 정청래 의원이 △예비후보제 도입 △후보자 대담·토론회 허용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고 20대 국회에서도 2년에 걸쳐 6명의 의원들이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모두 의원들의 임기가 끝나면서 폐기됐다. 국회 ‘전문위원’의 반대를 넘지 못한 게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론 의원들의 의지 부족을 지적할 수 있다.

현 21대 국회 임기 초반에도 발의는 활발했다. 2020년 7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5명의 의원이 각각 개정안을 발의했다. 내용을 취합해 보면 △예비후보자제 도입 △예비후보자 공개행사 소견발표 허용 △후보자에게 유권자 가상전화번호 제공 △후보자 대담·토론회 허용 △후보자 배우자 및 직계비속 선거운동 허용 등이다.

이 법안들 역시 상임위 법안소위에조차 회부되지 못하고 지금껏 계류 중이다. 선거 전 마지막 개정 기회였던 지난해엔 ‘농협중앙회장 연임 허용법’이 농협 관련 모든 이슈를 장악하면서 이 법안들은 사실상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3월 8일 전국 동시조합장선거 이후, 국회의원들은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입법업무에 마지막 불꽃을 태울 예정이다. 조합장 선거제 개선에 대한 의원들의 진정성이 살아있다면, 4년 뒤 조합장 선거에야말로 공정한 정책선거의 바탕이 마련될 수 있다. 그리고 적어도 이번 선거까진, 엉망진창인 조합장 선거제를 지탱해야 할 보루는 유권자 조합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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