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부도덕한 노조 지도부에 맞서 싸우다 일자리를 잃었던 가락시장 하역노동자들이 2년 7개월의 소송 끝에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
‘서울가락항운노조(가락항운노조)’는 가락시장 6개 청과도매법인 중 2개 법인에서 농산물 하역 업무를 수행하던 조직이다. 이곳 지도부는 오랜 기간 동안 조합원들을 비민주적으로 지배하며 특권을 누려오다가, 2019년 조합원들의 맹렬한 민주화 투쟁에 직면했다.
문제는 수세에 몰린 지도부가 돌연 ‘노조 해산’이라는 해괴한 수를 두면서 시작됐다. 조직이 없어지자 노동자들은 2개 청과법인에서 노동할 권리를 잃었고, 그 자리는 즉각 이웃노조인 ‘서울경기항운노조(서경항운노조)’가 꿰차고 들어왔다. 가락항운노조 조합원 중 다수는 서경항운노조에 가입해 직장을 건사했지만, 민주화를 주도했던 20여명의 노동자(민주노동자)들은 그대로 직장을 잃었고, 나중엔 서경항운노조 가입조차 거부당하는 처지가 됐다.
이들 민주노동자들은 서경항운노조의 처우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지만 1심에서도, 재심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주노동자들과 서경항운노조 간에 노사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한 부당해고 역시 성립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민주노동자들뿐 아니라 가락시장 모든 하역노조원들은 노조·도매법인 그 누구와도 노사관계를 맺지 않는, 법률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다.
하지만 민주노동자들은 끈질기게 이 싸움을 행정소송으로 끌고 왔고 마침내 지난 2일, 법원이 노동위원회의 판단을 뒤엎기에 이르렀다. 재판부는 업무에 대한 지휘·감독, 임금 지급 등 노조원에 대한 노조의 지위가 사실상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서경항운노조가 가락항운노조의 조직과 작업장을 포괄적으로 승계한 이상 민주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사용자’의 지위를 가지며, 따라서 민주노동자들을 배척한 서경항운노조의 행위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자들로선 2020년 6월 직장을 잃고 나서 2년 7개월 만에 나온 승소 판결이다.
지난 2년여 동안 민주노동자들은 가락시장 안팎에서 일용직 업무를 맡거나 다른 직장을 얻은 채로 싸움을 이어왔다. 법원에서 전환적인 판결이 나온 이상 노동위원회도 사건을 다시 해석해야 하고 서경항운노조 역시 이에 따라야 한다. 항소 여부에 따라 최종 결착까진 시일이 걸릴 수도 있지만, 민주노동자들은 마침내 하역업무에 복귀하거나 그간의 손실을 보상받을 발판이 마련됐다는 데 크게 고무되고 있다.
소송 당사자인 민주노동자 황병일씨는 “동료 노동자들 모두 너무 지치고 힘든 상태였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싸워 한 줄기 빛을 만들어냈다. 앞으로 짧은 시간은 아니겠지만,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해 나가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한 “우리가 옳았다는 걸 뒤늦게라도 인정받은 것 같다. 지금 가락시장은 그(가락항운노조 민주화 투쟁) 이전의 상태를 똑같이 유지하고 있는데, 이번 재판 결과가 하역노동자들이 사람답게 대우받는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