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기관 ‘갑질 근절’ 원년으로

[기고] 서권재 전국농업기관노동조합연합회 의장

  • 입력 2023.01.15 21:35
  • 수정 2023.05.31 09:49
  • 기자명 서권재 전국농업기관노동조합연합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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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권재 전국농업기관노동조합연합회 의장.
서권재 전국농업기관노동조합연합회 의장.

‘상급기관인 농림축산식품부 직원의 무리한 업무지시와 인신공격으로 숨이 막힙니다. 과도한 업무지시로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개인 생활도 다 포기하고 살고 있습니다. 새벽에도, 주말에도 전화해서 자료를 당장 달라고 해 사무실에 나가는 일의 반복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자료의 질이 떨어진다, 능력이 부족하다는 인격 모욕 발언까지 들었습니다. 나이가 많은 부장님께도 반말은 기본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자괴감이 들고, 부모님이 저의 이런 모습을 알면 얼마나 슬퍼하실지 걱정됩니다. 갑질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의 심정을 알 것 같습니다. 회사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저뿐만이 아닙니다.’

위 내용은 농림축산식품부 산하기관 직원의 갑질 사례를 일부 각색한 내용이다. 이러한 갑질 사례도 충격적이지만 이보다 훨씬 더한 사례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것이 대한민국 공공부문의 민낯이다.

2018년 7월 정부는 공공부문의 갑질 근절을 위해「공공분야 갑질 근절 종합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

공무원 행동강령에 갑질 금지규정을 신설하고, 갑질 근절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다. 또한 가해자의 우월적 지위로 인한 신고 기피 현상 타개를 위해 신고자 신변 보호, 가해자 처벌 강화 등의 대책도 수립하였다.

대책 수립 후 4년 반이 지난 현재 농식품부, 소속·산하기관에서 갑질은 과연 얼마나 개선되었을까?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전혀’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범정부 차원에서 갑질은 근절되어야 한다 선언하고 중대 갑질은 형사처벌 대상이 됨에도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인격모독, 무리한 업무 추진 요구 등이 여전히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각 기관 내 노동조합에서 조합원들에게 듣는 각종 갑질의 양상을 들어보면 공공부문의 시계는 10년, 20년 전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구시대적이고 변화가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도대체 왜 하는지도 모르고, 국민에게 아무런 편익이 없는 일을 단지 상급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갑질을 해가며 수행하는 관행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 갑질 경험자 중 7.1%가 ‘자해 등 극단적 선택을 고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만큼 갑질은 개인의 삶을 뒤흔드는 범죄 행위다.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는 사랑받는 가장이며, 누군가의 삶의 이유인 아들, 딸이다.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다고 해서 반말하고 막말하고 무리한 것을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나의 부모가, 자식이 내가 하는 그 갑질을 똑같이 당한다고 한 번만 생각해 줬으면 한다.

농식품산업을 대표하는 기관 노동조합의 연대체인 ‘전국농업노동조합연합회(전농노련)’은 2023년을 갑질문화 근절 원년으로 삼고, 농식품부의 산하기관 근로자 갑질 근절을 위해 투쟁할 계획이다.

단지 예산을 배정하고, 집행하는 상급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폭언, 부당한 업무지시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농식품부 산하기관의 갑질 피해 사례를 상시 접수하여 증거 수집 등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할 것이며, 개선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경우, 언론제보, 농해수위 국회의원 항의 방문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대응할 것이다.

새해에는 하루빨리 농식품부와 소속·산하기관에 상호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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