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 불어닥친 ‘가루쌀’ 바람 … 넘어야 할 산 많아

  • 입력 2022.10.16 18:00
  • 수정 2022.10.16 18:41
  • 기자명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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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태형 기자]

지난 12일 전남 곡성군 목사동면 대곡리에서 가루쌀을 재배하고 있는 강덕구 곡성군의원(왼쪽)이 추수를 앞둔 벼 이삭을 살펴보자 지역농민인 이희천씨가 다가와 벼의 특징 등에 대해 물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2일 전남 곡성군 목사동면 대곡리에서 가루쌀을 재배하고 있는 강덕구 곡성군의원(왼쪽)이 추수를 앞둔 벼 이삭을 살펴보자 지역농민인 이희천씨가 다가와 벼의 특징 등에 대해 물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정부는 가루쌀 전문생산단지를 2026년까지 4만2,000ha(헥타르) 조성할 계획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올해는 2,000ha를 모집했는데, 약 3,300ha가 접수돼 농가들의 ‘가루쌀’에 대한 관심을 실감케 했다.

신동춘씨도 곡성군 내 가루쌀 재배 농가들과 함께 공동으로 80ha를 재배단지로 지원했는데 65ha를 배정받았다. 정부는 2023년에 생산단지에서 생산되는 가루쌀을 전량 공공비축미로 매입한다는 방침이다. 또 국산 밀이나 조사료 등 동계 작물과 이모작하는 경우 전략작물직불제를 통해 ha당 250만원, 가루쌀만 재배하는 경우 ha당 100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신동춘씨는 가루쌀이 생소하던 2018년부터 ‘수원542’라는 가루쌀 품종을 시작으로 현재는 ‘가루미2’를 재배하고 있다. 10ha 규모에서 일반 벼농사를 짓던 그는 이모작에 적합한 품종을 찾기 위해 농촌진흥청에 문의했다가 가루쌀을 알게 됐다.

당시 가루쌀이 생소한 품종이다 보니 초기 2년 정도는 생산된 농산물을 처분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신동춘씨는 “처음에는 판로가 없어 재고도 많이 쌓였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고정거래처가 확보돼서 크게 판로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

가루쌀을 재배할 때 주의할 점을 묻자 “가루쌀은 6월 하순부터 7월 초에 모내기를 하는데, 그땐 온도가 이미 30도를 넘어가기 때문에 모가 웃자라기 쉬워 주의해야 하고, 다른 병충해에는 강한 편이지만 나방류에는 약한 편”이라고 조언했다.

정부의 가루쌀 가공산업 활성화 대책에 대해서는 “재배단지로 선정되면 농기계와 시설·장비 등을 지원해준다고 하는데, 가루쌀은 5월 초에서 6월 초순까지 심어도 되는 밥쌀용 벼보다 모내기 시기가 짧기 때문에 많은 면적을 재배하도록 하려면 농기계 등 지원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종자를 확보하거나 직불금을 주거나 하는 게 모두 정해진 예산에 따라 움직이다보니 재배면적을 더 빠르게 확대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일관된 정책 필요”

지난 12일 찾은 전남 곡성군 소재 논. 강덕구 곡성군의원이 자신이 재배하는 가루쌀을 살펴보고 있었다. 강덕구 군의원은 군 제대 후 고향인 곡성에서 20여년 벼농사를 지어왔다. 그는 국산 밀과 이모작에 적합한 품종을 찾다가 신동춘씨로부터 종자를 받아 2020년부터 가루쌀을 재배했다.

이희천씨가 가루쌀에 관심을 보이자 강덕구 의원이 가루쌀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이희천씨는 “막내아들이 농사를 짓는데, 가루쌀에 관심이 있어서 조언을 구하려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가루쌀에 대한 설명을 듣던 그는 종자는 어디서 얻는지, 판로는 어떻게 되는지 연신 물었다.

강덕구 의원은 “최근 가루쌀에 대한 문의가 늘었다”며 “내 농사만 망하는 건 상관없지만 다른 농가가 손해 보면 내가 보전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그동안은 권장을 못 했다. 이명박정부 때도 쌀국수나 쌀막걸리가 한창 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해졌는데, 그렇게 되지 않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식량주권이나 식량안보라는 말이 40년 전부터 나왔는데, 그런 걸 떠나서라도 농민들이 벼농사를 포기 못 하는 이유는 갈수록 농촌 인력은 줄어드는데 벼농사만큼 기계화가 잘 돼 있는 게 없기 때문”이라며 “작물 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벼에서 나오는 소득만큼 소득을 얻을 수 있게 해주면 된다. 다만 미래 예측이 어려운 만큼 논의 형상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시장성·가공 적합성’ 등 국감서 연이은 질타

이번 대책은 농민들의 흥미를 끄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루쌀을 재배하고 가공 및 제품 개발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식품부의 2023년 예산안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정부의 목표인 200개의 가루쌀 전문생산단지를 조성하려면 1개소당 5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이미 조성된 전문생산단지 4개를 제외하면 앞으로 196개를 추가로 조성해야 하는데, 이에 총 98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분석됐다. 또 국산 밀과 가루쌀을 이모작하는 농민에게는 전략작물직불금을 1ha당 250만원 지급하기로 했는데, 목표로 잡은 4만2,105ha의 재배면적을 확보하려면 1,052억6,250만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승남 의원은 “기업이 수입 밀가루 대신 (가루쌀을 포함한) 쌀가루를 사용하게 하려면 수입 밀가루만큼 저렴하게 공급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가루쌀 재배전문단지 조성과 재배면적 확보에 2,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자한 것도 모자라 가공용 쌀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예산을 보조금으로 지급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김승남 의원은 “이명박정부 당시 정부 정책에 따라 쌀 제품 개발과 공장 증설 등 몇백억을 투자했지만 결국 사업을 중단해야 했던 국내 기업들이 떠오른다”며 “윤석열정부가 이명박정부의 쌀가공산업 활성화 정책 실패를 교훈 삼아 가루쌀을 활용한 쌀가공산업 사업을 현실에 맞게 축소해야 한다”고 했다.

가루쌀이 밀가루를 대체하기에 부적합하다는 가공·제분 업체의 평가 결과도 넘어야 할 산이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대량 수요처와 연계한 연구개발을 위해 지난 6월쯤 CJ 제일제당을 비롯한 식품·제분업체와 제과제빵업체에 분질미(가루쌀)와 일반 쌀가루 1톤을 제공해 제분 특성과 품목별 가공특성 평가를 의뢰했다.

국회 농해수위 소속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글루텐 성분이 없는 가루쌀은 밀가루를 대체하기에 부적합하거나 일반 쌀가루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루텐은 밀가루 조직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쫀득한 식감을 만들어내는 성분이다.

국감에서 이원택 의원이 이를 근거로 가공 적합성에 의문을 제기하자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업체들이 아주 극미량을 가지고 테스트를 했기 때문에 제대로 테스트가 안 됐다”며 “올해 (가루쌀을) 500톤 수확하는데 그중 약 100톤을 제분·가공업체에 제공해 레시피를 만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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