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햇벼 수매가 동결, 농민 한숨 돌려

여주 조합장들 장고 끝에 용단

‘삭감’ 이천도 재조정 가능성

전국 수매가 ‘기준’ 역할 예상

  • 입력 2022.10.09 18:00
  • 수정 2022.10.09 21:28
  • 기자명 권순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전국 농민들의 관심을 모았던 경기 여주지역 햇벼 수매가가 ‘동결’로 결정됐다. 농민들의 1년 농사에 작은 숨통이 트인 셈이다. 앞서 ‘삭감’ 결정된 이천지역 수매가 역시 이번 여주의 결정으로 재조정 가능성이 생겼다.

지난달 14일 여주시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통합RPC) 운영협의회(농협 및 농민 대표로 구성)에선 농협과 농민 측이 올해산 벼 수매가를 전년과 동결(진상미 40kg 기준 9만원)키로 합의했다. 예년 같으면 벌써 7월경에 합의했어야 할 사안이지만 쌀값 폭락에 따른 통합RPC 적자 부담에 논의가 미뤄진 탓이다.

하지만 운영협의회는 의결권이 있는 기구가 아니다. 운영협의회 합의사항을 바탕으로 수매가를 확정·발표해야 할 통합RPC 이사회(관내 8개 농협 조합장과 통합RPC 대표로만 구성)는 최종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며 눈치를 살폈다. 그만큼 농협이 당면해 있는 적자 부담은 심각한 것이었다.

농민들은 농민들대로 절박했다. 사상 유례가 없는 농업 생산비 폭등으로 농민들 모두가 생계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쌀값 폭락 사태는 농협이 어느 정도 완충 역할을 해줬는데, 햇벼 수매가가 삭감된다면 폭락의 충격마저 농민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관내 8개 농협 앞에 나락 톤백을 적재하며 수매가 확정을 촉구했다.
 

지난달 26일 여주통합RPC 이사회에서 햇벼 수매가 결정을 내지 못하자 농민들이 각 농협 앞에 나락 톤백을 적재하며 조합장들을 압박했다. 조합장들은 결국 지난 5일 2차 이사회에서 ‘수매가 동결’을 결정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26일 여주통합RPC 이사회에서 햇벼 수매가 결정을 내지 못하자 농민들이 각 농협 앞에 나락 톤백을 적재하며 조합장들을 압박했다. 조합장들은 결국 지난 5일 2차 이사회에서 ‘수매가 동결’을 결정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26일 이사회에서 끝내 수매가를 결정하지 못한 조합장들은 각 조합 이사들의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지난 5일 2차 이사회에 임했다. 이날 100여명의 농민들이 회의장 밖에 진을 친 가운데, 조합장들은 결국 ‘수매가 동결안’을 통과시켰다. 찬성 5표, 반대 4표의 아슬아슬한 결정이었다.

김영준 여주시농민회 정책실장은 “애초에 수매가를 인하할 수 있는 요건은 없었다. 농자재·농약·비료·기름·농기계 등 모든 게 폭등해 동결이라 해도 농민들의 수익이 깎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어려운 상황에서 농협이 옳은 결정을 해줘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여주의 벼 수매가가 중요한 이유는 철원·이천과 더불어 전국에서 가장 먼저 발표되는 ‘확정 수매가’이기 때문이다. 이들 지역의 수매가는 그 해 전국 벼 수매가와 쌀 가격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농협은 수매가를 결정할 때 이 지역들의 선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설혹 수매가를 크게 깎으려는 농협이 있다 해도 농민들의 요구에 명분으로 작용하게 된다.

줄곧 동결을 주장해왔다는 김지현 여주 가남농협 조합장은 “여주가 수매가를 깎으면 정부에서 몇 톤을 격리하든 쌀값은 더 폭락하게 된다. 농협이 적자를 보더라도 최소한 동결을 해줘야 농민들이 살 수 있다. 농협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농가 권익 보호’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웃 지역인 이천의 10개 농협은 여주보다 하루 앞선 지난 4일 수매가 삭감(알찬미 40kg 기준 8만5,000원→8만원)을 결정했는데, 여주의 동결 결정으로 인해 조정 논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동안 여주·이천의 수매가가 늘상 보폭을 맞춰온 데다 이미 이천 농민들의 불만이 들끓고 있고, 당장 내년 3월 조합장 선거까지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철원에 이어 여주의 벼 수매가가 동결됐고, 삭감된 이천 수매가 역시 농업 관계자들 모두가 상향 조정될 것이라 낙관하고 있다. 정부의 양곡정책 실패로 쌀산업에 커다란 피해가 닥쳤지만, 이를 농민에게 떠넘겨선 안 된다는 분위기가 몇몇 의식 있는 조합장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