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인가 생명인가 … 식량을 바라보는 상반된 관점

  • 입력 2022.09.16 11:2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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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식량이라는 존재를 놓고 누군가는 ‘산업’이라 하고 누군가는 ‘생명’이라고 한다. 같은 존재에 대한 인식이건만 인식과 인식의 간극은 하늘과 땅 차이다. 가치 판단은 배제하고, 여기선 최근 식량이라는 존재에 대해 어떤 논의가 이뤄지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식량 ‘산업’, 그리고 규제완화

서울 지하철 2·3호선 을지로3가역의 식물공장. 현재 농업회사법인 팜에이트가 서울 일부 지하철 역사에서 운영하는 식물공장은 언론에서 ‘푸드테크’의 대표사례로 자주 소개된다.

지난 15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원장 김홍상, 농경연) 주최로 전북 익산시 한국식품산업클러스터진흥원에서 ‘농식품 신산업 분야 규제혁신 현장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박미성 농경연 연구위원은 최근 국내외 ‘푸드테크(Food-tech)’ 현황 소개 및 향후 식품산업의 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푸드테크란 직역하면 ‘먹거리 기술’로, 식품산업에 생명공학 또는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산업을 산출하는 기술 분야라는 게 박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푸드테크의 한 조류인 ‘대체식품’ 영역은 식물성 고기, 배양육, 그리고 식물공장에서 생산되는 채소 등을 포괄하는 산업 영역이다. 식품자본들은 이미 대체식품 분야에까지 손을 뻗었다. 롯데푸드·농심·신세계푸드 등의 대기업들은 발빠르게 식물성 고기·계란 가공식품을 상품화해 팔고 있다.

박 연구위원은 식품산업 육성을 위해 식품 관련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미생물 유래 대체단백질 관련 규제 완화와 관련해, 박 연구위원은 “생명공학기술 발전으로 환경적 제약이 없는 미생물을 활용해 단백질을 직접 합성할 수 있는 혁신적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미생물로 우유 단백질 성분을 합성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아이스크림과 영양과자의 원료로 사용하며, 해당 제품들을 최근 홍콩·싱가포르 등에도 수출한다”며 “(미생물 유래 대체단백질에 대해) 각국에서 활용하면서 과학적으로 안전성이 입증됐음에도, 국내에선 완전히 새로운 물질로 심사·등록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박 연구위원은 이어서 ‘업계 애로사항’을 소개했다. 업계에선 “유전자변형(유전자조작) 미생물과 유전자 산물의 안전성에 대한 내용 외에도 수출기업의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기술자료(DNA 서열, 유전자조작 기법 등)를 요구 받는다”, “미생물로 단백질을 합성해 만든 미생물 유래 대체단백질이 유전자변형식품(GMO)으로 간주돼 안전성 평가 후 한시적 승인을 받아야 하는 실정” 등의 애로사항을 토로하면서, 미생물 유래 대체단백질 관련 심사·등록 과정을 간소화해 달라고 건의한다는 게 박 연구위원의 설명이었다.

GMO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코덱스)가 제시한 ‘실질적 동등성 원칙(GMO가 기존 식품과의 성분 비교 결과 차이가 없으면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원칙)’을 따르므로, 타국과의 형평성이 고려된 유연한 심사·등록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유무역 활성화’ 기조하에 추진돼 온 각종 무역협정 및 경제협력체계도 먹거리에 대한 규제완화를 부추긴다. 일례로 지난 8~9일 열린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장관회의에서 도출된 각료선언문에 담긴 ‘규제·행정 요건에 관한 절차 개선과 협력 증진’, ‘과학과 위험에 기반한 의사결정 고도화’ 등의 내용은 GMO 규제 완화 내용과 연관된다. 미국은 한국의 농업생명공학 규제체계가 미국산 농산물 수출에 “계속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면서 GMO 문제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기조를 계속 보여왔다.

‘생명’을 키우는 이들, 찬미 받으소서

반면 식량을 ‘생명’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들(현장 농민, 종교계 등)은, 식량에 대한 산업적 접근이 농식품 자본에 복무할 가능성, 나아가 농민을 소외시켜 온 신자유주의 체제를 공고화시킬 위험성이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지난 13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주최로 열린 ‘제43회 가톨릭 에코포럼 – 식량, 산업인가 생명인가’에 참석한 정영기 한국친환경농업협회 교육국장은 2017년 11월 미국 농무부가 수경재배 농산물(식물공장 등 수직농장 농산물 포함)도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 있게 결정했던 사례를 소개하며 “그 직후부터 미국 농민들은 토양생태계와 단절된 농업을 유기농업으로 인정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흙을 지키자!(Keep soil!)’는 구호하에 ‘아스팔트 농사’를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정 국장은 이어 “국내에서도 식물공장 농산물에 대해 ‘깨끗하고 벌레도 없는’ 농산물이라며 선호하는 목소리가 일부 있다. 햇빛·토양과 단절된 농산물을 과연 ‘친환경농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현재 농업회사법인 팜에이트가 서울 일부 지하철 역사에서 운영하는 식물공장은 언론에서 ‘푸드테크’의 대표사례로 자주 소개된다.

가톨릭농민회 원주교구연합회 소속으로 강원도 횡성에서 8년째 농사짓는 이동훈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한 회칙 ‘찬미 받으소서’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황은 기업농에 대해 경계하면서 소농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국적 농식품기업에 의한 지역농업의 몰락 문제를 지적하면서, 기업에 의한 이익 극대화를 방치할 시 환경이 파괴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소농이 지구를 먹여살린다는 점을 다시금 인식하면서, 종교인들도 소농의 삶을 위한 대안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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