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재배, 친환경농업 아니다”

미국발 ‘수경재배는 유기농’ 판결이 우리에게 던지는 고민

  • 입력 2021.04.18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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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서울 서대문구 농협 쌀박물관의 스마트팜 실내농장.
서울 서대문구 농협 쌀박물관의 스마트팜 실내농장.

수경재배는 유기농업 범주에 포함돼야 하나? 유기농업의 정의에 맞나? 최근 미국에서 이뤄진 ‘수경재배도 유기농업에 포함된다’는 판결과 연이은 논란은 우리에게 많은 고민을 던진다.

지난 2019년, 8명의 미국 유기농민들은 소비자단체인 식품안전센터와 함께 미국 농무부(USDA)에 “토양에서 농사짓지 않는 수경재배 기업에 대한 유기농 인증을 금지해 달라”고 청원했다. USDA는 이 청원을 거부했다. 이에 유기농민들은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방법원에 “USDA가 수경재배 작물에 유기농 인증 딱지를 붙여 파는 걸 허용하지 말라”는 내용의 소송을 걸었다.

유기농민들의 논리인즉슨, 수경재배 작물에 유기농 인증을 부여하는 것은 USDA의 국가 유기농업프로그램(NOP)에 명시된 ‘토양 기반 유기농 인증 표준’ 내용을 위반한다는 내용이다. 미국 유기식품생산법도 유기농업에 대해 ‘적절한 경작, 작물 순환 및 거름을 통해 토양의 유기물 함량 관리를 함으로써 토양 비옥도를 촉진하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지난달 22일,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방법원은 농민들의 소송에 대해 “유기식품생산법이 수경재배를 특별히 금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USDA의 수경재배 농산물 유기농 인증을 허용한다고 판결했다.

미국 유기농민들은 USDA의 이 판결에 분노했다. 소송 제기에 참여했던 농민 폴 뮬러 씨는 “우리 농장에선 적극적인 토양 관리와 다양한 작물 재배, 토양 건강과 생물다양성을 촉진하는 농사를 통해 토양 비옥도 확보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 뒤 “법원 판결로 인해 우리와 같은 토양 기반 유기농장은 토양을 만들고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 없는 수경재배 생산자와 동일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22일 판결은 미국 정부의 계속되는 ‘유기농업 기준 재정의’ 시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2017년 11월 1일, USDA 국가유기농기준위원회에선 수경재배 농산물도 ‘환경친화적으로 관리된다면’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 있다고 결정했다. USDA는 2018년에도 “수경재배, 아쿠아포닉(물고기 양식과 수경재배를 합친 농법), 분무수경(작물을 공중에 매단 채 키우는 농법)은 유기농 인증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 유기농민들의 주장이 일견 보수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친환경인증제를 비춰봤을 때 무시할 수만은 없는 주장이다. ‘잔류농약 검출 중심 친환경인증제’ 하의 우리나라에서 친환경농산물은 ‘잔류농약 없는 농산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경재배 또한 ‘안전한 먹거리’, ‘잔류농약 걱정 없는 먹거리’의 생산방식으로 거론된다. 유기농업이 무엇인지, 수경재배가 무엇인지, 수경재배는 유기농업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홍보도, 교육도 찾기 힘들다.

수경재배가 이뤄지는 대표적 공간인 식물공장 농산물은 ‘무농약인증’ 딱지가 붙은 채 샐러드 가게로 팔린다. 식물공장 운영 기업도, 언론도 식물공장 농산물이 ‘무농약, 무GMO, 무병충해’ 친환경농산물이라고 홍보한다.

정영기 한국친환경농업협회 교육국장은 “‘과정 중심 인증제’를 시행하는 미국에서 ‘결과 중심 인증제’를 옹호하는 판결이 내려진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미국의 이러한 동향은 국내 친환경농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며 “이대로 가면 친환경농업의 요건에서 ‘토양’이 실종되고 ‘재배된 농산물에 잔류물질이 있나 없나’가 주요 판단 기준이 될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개정된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친환경농어업법)’은 친환경농업을 ‘생물의 다양성을 증진하고, 토양에서의 생물적 순환과 활동을 촉진’하는 농업이라 규정했다. 정 교육국장은 “수경재배를 친환경농업 영역에 포함시키는 건 이러한 친환경농어업법 내용과도 괴리된다”며 “일각에선 ‘차라리 수경재배 인증을 별도로 만들어라’는 목소리도 제기된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도 미국처럼 친환경농업에 대해 법과 괴리된 이야기를 할 것인가? 미국의 대혼란을 우리도 겪을 가능성은 어떻게든 막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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