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마늘섬, 가의도

  • 입력 2022.07.03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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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달 20일 육지에서 건너온 여성농민들이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의 마늘밭에서 씨마늘을 수확하고 있다. 이들 모습 뒤로 섬의 주택과 농지 등이 짙게 드리운 해무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20일 육지에서 건너온 여성농민들이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의 마늘밭에서 씨마늘을 수확하고 있다. 이들 모습 뒤로 섬의 주택과 농지 등이 짙게 드리운 해무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가의도. 충남 태안 신진항으로부터 3km가량 떨어진 면적 2.19㎢의 섬이다. 인근에서 제법 큰 섬이라 해도 면적의 대부분은 산지다. 항구에 내리면 보이는 고개 하나를 중심으로 그 주변 얼마 안되는 땅에 마을과 농지가 밀집해있다. 이 한적한 섬이 농업적으로 특별한 이유는, 섬 전체 농지 4.3ha(30농가)가 단 하나의 예외없이 모두 마늘로 채워져 있고 이 마늘의 용도가 전량 ‘씨마늘’이라는 것이다.

가의도는 농사를 짓기엔 너무 척박한 땅이다. 과거로부터 주민들은 이 비좁고 척박한 땅에 보리·고구마·콩·마늘·쪽파 등 몇 가지 작목을 심어 자급자족 식량으로 삼았다. 그런데 30여년 전, 우연히 육지로 옮겨심어본 가의도 마늘이 괄목할 상품성을 보였고 이때부터 가의도 주민들은 소득작목으로 씨마늘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농사짓기는 팍팍하다. 길이 좁고 경사가 많아 농기계는 쓸래야 쓸 수가 없다. 관개시설이 돼있는 것도 아니고, 비료·농약을 쓰려 해도 밭까지 그걸 운반하는 일이 고역이다. 자재를 들이거나 상품을 출하할 때도, 수확기 인력을 고용할 때도 선박을 이용해야 한다.

그렇게 힘들게 재배한 이 섬의 씨마늘이 그 유명한 태안 육쪽마늘 중에서도 최상의 품질을 자랑한다. 토양이 척박해 씨알은 작지만, 육지에 옮겨심으면 어떤 굵은 씨마늘보다도 크게 자라고 무엇보다 질병이 없다. 해안가에서 자란 마늘이 종자용으로 좋다는 거야 상식이지만 다른 섬이나 해안지역의 씨마늘과 비교해도 우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종자는 가의도 주민들이 조상 대대로 재배해온 재래종 육쪽마늘(한지형마늘). 주민들의 자부심도 대단해서, ‘육쪽마늘의 원산지’라는 말이 이젠 가의도를 수식하는 고정 문구가 됐다. 씨마늘 본격 재배 초창기에 경북 의성 등지에서도 이곳 마늘을 받아 갔는데, 이 때문에 주민들은 의성마늘의 뿌리 역시 가의도 마늘이라 믿고 있다.

지금은 안정적인 판매를 위해 개별 판매를 최소화하고 태안 내륙의 마늘농가들과 전량 약정거래하고 있다. 섬 내 농지가 좁은 만큼 공급에도 한계가 있지만, 올해 기준으로 태안 육쪽마늘 씨마늘 수요량의 8.3%를 담당하고 있다. 육지에서 이뤄지는 가의도산 마늘의 자가채종까지 생각하면 지역 마늘산업에 상당한 영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바다로 격리돼서인지, 해풍 때문인지, 토양이나 기온의 영향인지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가의도 씨마늘은 적어도 경험적으로 그 우수성이 입증됐고, 이를 토대로 태안에선 매우 특별한 마늘 분업체계가 발달하게 됐다.

국내에서도, 세계적으로도 지역의 특별한 문화와 전통, 가치가 담긴 농업방식을 농업유산으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구들장논, 밭담, 각종 전통 농업방식 등 수세기에 걸쳐 이어온 농업유산들처럼, 근래에 등장한 ‘씨마늘섬’ 가의도 역시 태안의 독특한 농업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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