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가득 메운 1만5천 농어민들 “CPTPP 가입 철회하라”

지난 13일 ‘CPTPP 가입 저지 전국농어민대회’ 열고 정부 규탄
집회 참가 농어민들 “대책 없이 가입하면 더는 버틸 재간 없어”
제주농어민 비대위 지난 8일 ‘CPTPP 투쟁 선포식’ 개최하기도

  • 입력 2022.04.15 14:52
  • 수정 2022.04.17 22:56
  • 기자명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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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태형 기자]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과 한국농축산연합회, 전국어민회총연맹 등 농어민단체 주최로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공원 광장에서 열린 ‘CPTPP 가입 저지를 위한 전국농어민대회’에서 전국에서 상경한 1만5,000여명에 달하는 농어민들이 CPTPP 가입을 강행하고 있는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과 한국농축산연합회, 전국어민회총연맹 등 농어민단체 주최로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공원 광장에서 열린 ‘CPTPP 가입 저지를 위한 전국농어민대회’에서 전국에서 상경한 1만5,000여명에 달하는 농어민들이 CPTPP 가입을 강행하고 있는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임기를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문재인정부가 ‘이번 임기 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 다음 정부에서 가입 협상’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면서 농어민들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상임대표 양옥희, 농민의길)과 한국농축산연합회(회장 이은만, 농축산연합회), 전국어민회총연맹(회장 주해군, 어민회총연맹) 등 농어민단체는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공원 광장에서 ‘CPTPP 가입 저지를 위한 전국농어민대회’를 열어 정부가 대책도 없이 CPTPP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지난 4일 ‘농어민 총궐기대회’에 이어 열린 이번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농어민 1만5,000여명이 참석해 목소리를 높였다.

본 대회가 시작되자 상복을 입은 농어민단체 대표들은 ‘농수축임산물 개방 반대, 수산보조금 폐지 반대’라는 문구가 적힌 상여를 메고 무대 앞으로 행진하는 상징의식을 펼쳤다. 각 소속 단체명이 적힌 깃발을 들고 있던 농어민들은 상여를 뒤따라 행진했다.

가장 먼저 단상에 오른 이은만 농축산연합회장은 “CPTPP에 가입하면 100%에 가까운 관세철폐율로 (국내) 농어업은 15년간 최대 6조6,000억원의 생산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는 농수축산업을 말살한다는 말과 같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윤석열 새 정부와 충분한 대화를 나눈 뒤 가입 여부를 결정할 테니, 문재인정부는 오만과 독선으로 국가 식량안보와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 농수축산업에 큰 손실을 초래하는 CPTPP 가입 신청을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주해군 어민회총연맹 회장은 “정부가 CPTPP에 가입함으로써 관세가 철폐돼 수입 수산물이 증가하면 국내 수산물 소비침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특히 면세유 지원이 중단되면 어민들은 경영비 증가로 도산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 농어민들은 죽을 각오로 CPTPP 가입을 저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양옥희 농민의길 상임대표는 “정부는 수년 동안 대기업 중심, 수출 중심 정책으로 농수축임업을 외면한 것을 넘어 개방률 96%가 넘어가는 CPTPP 가입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며 “이는 곧 검역주권의 포기이며, 국민 건강권을 짓밟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꼬집었다.

이어 김삼주 전국한우협회장과 권영환 강원도수산단체협의회장, 손용권 농어촌파괴형에너지반대전국연대회의 대표가 단상에 올라 CPTPP 가입을 추진하는 정부를 규탄했다.

농어민들이 무조건 CPTPP 가입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명확한 대책도 없이 농어민들의 희생만 강요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우 80두를 키우는 축산농민 한경호(63)씨는 “사료값이 1년 새 40~50% 오르는 등 경영비는 계속 오르는데 정부는 또 CPTPP에 가입해서 무조건 개방만 하려고 한다”며 “어느 정도 조치를 해놓고 가입을 추진하던가, 그저 개방만 하니까 버틸 재간이 없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남해에서 낙지와 쭈꾸미, 문어를 잡는 어민 심현호(59)씨는 “한국이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지만 대안으로 어떻게 해주겠다는 대책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지금도 유통과정에서 중간도매인만 돈 버는 구조인데 대책 마련도 없이 수입 개방한다고 하니 어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탄식했다.

농어민단체는 이날 결의문을 통해 “오늘의 투쟁을 시작으로 전 지역에서 도 단위의 대책위를 구성하고, 전 국민과 함께 운동본부를 건설할 것”이라며 “그럼에도 정부가 계속 가입을 추진하면 더 큰 투쟁으로 끝까지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8일 제주도청 앞에서 열린 ‘제주 농어업 사수! CPTPP 가입 결사반대! 제주 농어민 투쟁선포식’에서 CPTPP가입저지 제주농어민 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들이 CPTPP 가입 추진을 규탄하는 대형현수막을 찢는 상징의식을 벌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8일 제주도청 앞에서 열린 ‘제주 농어업 사수! CPTPP 가입 결사반대! 제주 농어민 투쟁선포식’에서 CPTPP가입저지 제주농어민 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들이 CPTPP 가입 추진을 규탄하는 대형현수막을 찢는 상징의식을 벌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제주도 가장 큰 피해 받을 것”

앞서 정부가 CPTPP 가입 입장을 다시 한번 명확히 한 지난 8일에는 제주도청 앞에서 ‘CPTPP 가입 저지 제주농어민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주관으로 CPTPP 투쟁 선포식이 열리기도 했다.

비대위는 결의문에서 “(정부가 CPTPP에 가입하면) 제주 경제의 가장 큰 버팀목인 감귤산업은 값싼 열대과일에 밀려날 것이고, 지금까지 열심히 만들어 놓은 시설 만감류 또한 가격경쟁에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CPTPP 가입의 가장 큰 피해 지역은 제주도가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김윤천 비대위 집행위원장(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의장)은 “조금 전 제주도의회 의장을 만나 ‘제주 농어민 CPTPP가입 반대 결의문 채택 요구안’을 전달했다”면서 “6월 본회의에 앞서서 CPTPP가입 반대 결의안 채택 안건 하나만 가지고 원포인트 회의를 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추미숙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 회장은 “이미 수입농산물이 식탁을 점령했고 마트에 가면 국내산 농산물 찾기도 어렵다”며 “지금도 벼랑 끝인데, 도대체 어디까지 더 떠밀려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우리나라가 CPTPP에 가입하면 농축수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으로 국내 농산물 생산 기반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우려했다.

이날 아침 6시부터 감귤나무 전정(가지를 잘라주는 일)작업을 하다 집회에 참여한 김성하(62, 서귀포시 안덕면 상창리)씨는 “농자재값도 많이 올랐는데 농산물 가격은 30~40년 전보다 더 떨어졌다”며 “이런 상황에서 CPTPP에 가입하겠다고 하니 바빠도 일을 제쳐놓고 나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너무 힘들어서 뭐라 할 말이 없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제주시 한림읍에서 4,000평 규모로 양배추, 비트 등 채소류를 재배하는 양형수(59)씨는 정부에 농어민을 보호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양씨는 “이번에 작업비도 안 나와서 전량 폐기했다”면서 “지금도 어려운데 CPTPP에 가입해서 수입농산물이 물밀 듯이 들어오면 농민들은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고 말했다. 그는 “농민들이 농산물을 팔아먹을 수 있게 대책을 마련하고 가입하던지, 이건 순서가 맞지 않다”고 성토했다.

콩과 보리농사를 짓고 있는 고애숙(55, 서귀포시 안덕면)씨는 “기후가 예전 같지 않아서 작황이 좋지 않다. 어떤 해는 가뭄이 들고, 어떤 해는 또 태풍으로 농사짓기가 더 힘들어졌다”면서 “어쩌다 농사가 잘되면 정부는 물가 잡는다고 수입을 늘린다”고 지적했다. 고씨는 “이런 상황에서 또 개방을 한다고 하니 CPTPP에 반대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한편, CP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 국가가 참여하는 초대형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농산물 관세철폐율은 96.1%에 달해 전면개방 수준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가 CPTPP에 가입할 경우 농업 부문에서 15년간 연평균 853억원에서 4,400억원의 생산감소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과수의 경우 호주, 칠레, 멕시코, 페루산 오렌지·포도 등의 수입증가로 국내 감귤 시장의 피해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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