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미국 학교급식 정책의 명암

  • 입력 2022.01.30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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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등교는 멈춰도 급식은 멈추지 않는다”며 학교급식 프로그램 정상화 관련 예산을 투입하는 미국 정부의 학교급식 정책. 코로나19로 학교급식이 파행운영돼도 학교급식 관련 업무가 ‘지방사무’라며 근본대책 수립에 나서지 않는 우리나라 정부와 비교된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 학교급식 정책은 우리에게 완전한 선망의 대상이 되긴 어렵다. ‘신자유주의 첨병’ 미국에서도 공공급식-농업 연계와 관련해 국가 차원의 최소한도 책임은 지려 한다는 점만 참고하면 되겠다. 코로나19 이래 미국 학교급식 정책의 명암을 살펴보고자 한다.

급식 정상화 위한 미국 농무부의 노력

지난해 12월 17일, 톰 빌색 미국 농무부(USDA, 한국의 농림축산식품부에 해당) 장관은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는 학교급식 프로그램 운영자가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중단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주(州)와 학군에 최대 15억달러(한화 약 1조8,015억원)를 제공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빌색 장관의 말마따나 USDA는 각 주마다 학교급식 프로그램이 정상 가동될 수 있도록 하는 ‘공급망 지원기금’ 10억달러, 각 학교별 로컬푸드(지역산 먹거리) 구매 촉진을 위한 금액 2억달러를 지원함과 함께, USDA 푸드(100% 미국 국내 생산 식품) 3억달러 어치를 구매해 정상적인 공급망 중단에 따른 악영향 상쇄 목적으로 학교에 공급 중이다.

공급망 지원기금은 각 학군에서 과일, 우유, 치즈, 냉동야채 및 고기 등 덜 가공되거나 가공되지 않은 국산 식품 구매에 사용된다. 각 주 정부는 4분의 1 이상의 학생이 저소득 가정 출신인 학군으로 분배를 제한해 가장 먹거리 공급이 절실한 지역에 자금 지원을 집중할 수 있는 선택권도 갖는다.

한편 USDA가 코로나19 심화로 원격수업을 받거나 휴교령이 떨어진 학교의 학생을 위해 시작한 ‘그랩 앤 고(Grab ‘n’ go, 그랩 앤 고는 사실상 ‘테이크아웃’과 같은 뜻)’ 급식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그랩 앤 고는 통학버스에 음식을 싣고 정해진 장소에 옮겨 놓으면 그것을 학생 또는 학부모가 수령해 간다. 최소 1명의 자녀가 코로나19 심화로 폐쇄된 학교에 다닐 시 해당 가구의 18세 이하 모든 학생에게 식사가 제공된다. 각 지역별 무상급식 수령 가능장소는 USDA 누리집에서 확인 가능하다.

USDA는 지난 7일에도 전국 학교급식 프로그램에 약 7억5,000만달러(한화 약 9,000억원)을 추가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빌색 장관은 “USDA는 전염병의 압력과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영양가 있는 식사를 제공해야 할 필요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게 전국 학교의 우선 순위임을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먹거리 질 강화로는 이어지지 않아

지난 1월 13일 미국 뉴욕 주 시민 크리스 반젤로 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한 학교의 급식 사진. 반젤로 씨의 19살 아들(키 195cm의 농구선수)이 먹기엔 어느 모로 봐도 불충분하다. 크리스 반젤로 씨 페이스북 인용
지난 1월 13일 미국 뉴욕 주 시민 크리스 반젤로 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한 학교의 급식 사진. 반젤로 씨의 19살 아들(키 195cm의 농구선수)이 먹기엔 어느 모로 봐도 불충분하다. 크리스 반젤로 씨 페이스북 인용

위에서 언급한 학교급식 프로그램이 ‘질’까지 담보된 것은 아니다. 미국 뉴욕 주 홉킨튼에 사는 네 아이의 아빠 크리스 반젤로(Chris Vangellow) 씨는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위 사진을 비롯해 자신의 19살 아들이 이용한다는 급식 사진을 올렸다. 반젤로 씨는 이 급식이 키 195cm의 농구선수인 자신의 아들이 먹기엔 너무나도 부실한 급식이라고 비판했다.

그나마 이 급식은 나은 수준이고, 자신의 다른 아이는 급식 이용 시 위 사진에 나오는 ‘말라 비틀어진 당근’도 못 받았다는 게 반젤로 씨의 증언이다. 반젤로 씨는 “우리는 아주 부유한 지역에 살고 있지 않다”며 몇몇 아이들은 살기 위해 학교급식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임을 강조했다.

2000년대 초 조지 W. 부시 정권 이래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등 대외전쟁 수행에 들어간 막대한 전비(戰費) 때문에 국내 복지예산이 감축됐고, 학교 측은 적은 예산으로 급식을 운용하려고 인건비도 줄이고 노후한 조리기구도 그대로 방치했다. 학교급식도 적지 않은 부분이 정크푸드·패스트푸드로 채워졌다. 이상의 상황으로 학생들의 비만 심화 및 필수영양소 부족 문제도 심각해졌다. 이러한 추세는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코로나19 이후 미국 정부가 학교급식에서의 신자유주의적 흐름을 끊고 국가 책임성을 강화하려는 점은 평가할 만하나, 반젤로 씨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여전히 20년 넘게 이어진 신자유주의·불평등 먹거리정책의 폐해는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미국의 사례에서 참고할 것은 △공공급식 정책에 대한 국가 책임성 강화 △등교는 멈춰도 급식은 멈추지 않는 학교급식 정책 준비 △학교급식의 건강성 강화 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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