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푸드플랜의 의미 묻다

메르스 등 유사 사례에도 정부·지자체, 사실상 무대응
지역 차원 먹거리 선순환 구축, 공공급식 체계 보완 절실

  • 입력 2020.03.15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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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10일 충남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 한 친환경농가 시설하우스에서 농민들이 근대를 수확하고 있다. 이미 일정 부분 수확이 진행됐어야 할 근대가 학교급식 중단으로 하우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0일 충남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 한 친환경농가 시설하우스에서 농민들이 근대를 수확하고 있다. 이미 일정 부분 수확이 진행됐어야 할 근대가 학교급식 중단으로 하우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한승호 기자

‘등교’하지 못한 무 6톤

충남 아산시에서 친환경 채소농사를 짓는 안복규씨. 그가 회장으로 있는 아산시학교급식생산자연합회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개학 연기, 그에 따른 학교급식 출하 정지로 판로가 막혔다.

무와 얼갈이, 근대 등을 재배하는 안씨는 모든 농산물을 학교급식에 출하해 왔다. 학교급식 정지로 원래 나가야 할 무 6톤이 못 나갔고, 열무는 전부 폐기했다. 장기 저장이 어려운 얼갈이는 점차 상해간다. 안씨는 “학교급식에 열무와 얼갈이를 합쳐 매주 400~500kg이 나가야 한다. 무 또한 매주 학교에서 1~1.5톤 소비되는데, 이 물량이 못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안씨의 유일한 희망은 꾸러미 공동구매 사업이다. 송악면민들이 가입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꾸러미를 홍보했는데 하루만에 100세트를 팔았다. 안씨는 “일부 주민들은 직접 농민들을 도와 아파트에 꾸러미를 배달해주기도 했다”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꾸러미 구매에 나서는 걸 보며 희망을 느낀다”고 밝혔다.

현재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차원에서 꾸러미 공동구매 사업을 진행 중이다. 아산시와 아산시교육청도 꾸러미 공동구매에 같이 나섰다.

반복되는 비상사태에도 대책 없어

그러나 농민들로선 언제까지고 성숙한 시민의식에만 의존할 순 없다. 지자체, 더 나아가 중앙정부의 근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앞으로 대두되는 과제는 또 발생할지도 모를 비상사태(전염병·자연재해·안전사고 등)에 대비해 먹거리계획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회장 김준식, 경기친농연)는 지난 3일 경기도에 ‘급식중단 사태에 따른 장기대응 방안 건의안’을 냈다. 경기친농연은 △학교급식 공급가에 일정비율로 기금을 포함 △지자체의 기금 지원 △농가 자체 기금 조성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 유보금(추정액 약 25억원) 활용 등의 방법을 통해 향후 농가들에 닥칠 비상상황을 대비하자는 입장이다.

경기친농연의 이 제안은 처음 나온 게 아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당시 경기친농연 농가들의 학교급식 납품량은 기존 대비 60%가 감소했다. 이에 경기친농연은 경기도에 이번과 같은 내용을 건의했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기금은 불가하다”는 경기도의 답변이 전부였다. 2017년 가뭄 때도, 2018년 식중독 사태 때도 급식 중단으로 농민들은 피해를 입었으나, 새로운 대책은 없었다. 그나마 이번엔 경기도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계약생산 체계 재구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를 이뤘다. 경기도 친환경급식지원센터 내 민·관거버넌스 운영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다만 기금 설치 문제의 경우 여전히 난관이 남아있다. 현행「지방자치단체 기금관리기본법」제3조 ‘기금의 설치 제한’에 따르면, 지자체에 재정적 부담이 되는 기금을 설치하려면 소관 중앙 행정기관장(이 건의 경우 농식품부 장관)은 기금 신설의 타당성을 심사하기 위해 미리 행정안전부 장관과 협의해야 한다. 즉 지자체의 의지만이 아닌, 관련 중앙부처와 행안부의 논의까지 거치는 까다로운 과정이 필요하다.

결국 국가 차원의 상시적인 급식체계 지원이 절실하다. 홍안나 경기친농연 정책실장은 “중앙정부는 학교급식법을 개정해 (급식 관련) 정부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무상급식은 무상교육의 일부분이기도 한 만큼, 정부가 예산지원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병원엔 가지 않는 건강한 먹거리

중앙정부든 지자체든 그토록 ‘푸드플랜’을 강조하고, 이를 위한 ‘민·관협치’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정작 학교 이외의 공간에서 어떤 식으로 공공급식을 확대할지에 대한 협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의외의 사실은, 어찌 보면 가장 ‘건강한 먹거리’가 절실한 공간인 의료시설들도 대부분 친환경 공공급식 체계에서 소외됐다는 점이다.

예컨대 ‘친환경 로컬푸드 1번지’라는 충청남도 홍성군은 충남에서 유일하게 푸드플랜 기본계획 및 실행계획을 수립한 지자체였다. 이와 관련해 민·관 합동 먹거리위원회도 만들고, 각종 계획도 잔뜩 세웠다.

그러나 홍성군에 위치한 공립의료원인 홍성의료원에선 여전히 지역산 친환경농산물을 찾기 힘들다. 그나마 2014년 충남도가 도내 4개 지방의료원(천안·서산·공주·홍성)에 무농약 쌀을 공급하면서 홍성의료원에도 친환경 쌀은 들어간다.

영농조합법인 홍성유기농의 정광식 생산관리팀장은 “홍성유기농도 학교급식 출하정지로 공급처를 찾기 어렵다. 특히 딸기농가들의 피해가 크다”며 “홍성의료원 등 지역 의료시설엔 우리지역 친환경 채소와 과일이 들어갈 판로가 없다”고 말했다.

홍성군은 서울시가 추진 중인 ‘도농상생 공공급식’에도 참여 중이다. 홍성군은 서울시 노원구와의 1대1 연결로 지역먹거리를 노원구에 공급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도농상생 공공급식 과정에서 어린이집 쪽으로의 판로는 넓어졌으나, 지역 의료시설은 아직 공급대상이 아니다. 어린이집도 학교와 마찬가지로 코로나 때문에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푸드플랜 모범사례로 칭송받는 홍성군의 상황이 이럴진대, 푸드플랜이 미비하거나 아예 없는 지자체의 상황은 오죽할까.

‘지역 차원 선순환체계’ 구축해야

위와 같은 상황들을 봤을 때, 향후 어느 한 분야만이 아닌 종합적 영역에서의 푸드플랜 설계가 다시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친환경농업계 및 먹거리문제 전문가들은 △민·관협치 강화를 통한 공공급식 확대 △농민수당 도입 △지역단위 먹거리 선순환 체계 구축 등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윤병선 건국대 교수는 “이와 같은 비상사태는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런만큼 농민과 먹거리운동 진영, 그리고 정부가 지속적으로 이러한 상황의 재발을 막기 위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며 “궁극적으론 지역 차원에서 의료·사회복지 영역까지 아우르는 먹거리 선순환 체계를 점차 확산해 나가기 위한 시민사회와 지자체, 중앙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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