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2년째 … 농민들은 ‘각자도생’ 중

  • 입력 2022.01.23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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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농민 한상우 씨가 하우스에서 자라나는 오이들을 살피고 있다. 한씨는 2년째 계속되는 코로나19에 따른 학교급식 파행운영으로 근심이 크다.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농민 한상우 씨가 하우스에서 자라나는 오이들을 살피고 있다. 한씨는 2년째 계속되는 코로나19에 따른 학교급식 파행운영으로 근심이 크다.

“코로나19가 발생한 뒤 2년간 농민들은 그야말로 ‘각자도생’했다.”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에서 친환경 오이·대추방울토마토 농사를 짓는 한상우 씨는 위와 같이 지난 2년의 소감을 밝혔다. 그에게 2020년 초봄은 악몽으로 남아있다. 코로나19 발생과 그에 따른 학교급식 중단으로 3,000평 농지에서 재배하던 오이와 대추방울토마토 약 100톤 가량이 적체됐다. 그해 3월 한씨의 친환경농산물 학교 공급물량은 ‘0’이었다.

2020년 하반기 들어 상반기보단 상황이 나아졌다. 일부나마 등교가 재개됐다. 그러나 코로나19 이전엔 농사지었던 물량의 30~40%를 공급했던 한씨로서는, 공급 가능한 물량이 예년의 절반 수준인 15~20%로 줄었다. 이 상황이 1년 6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모 지자체에서 친환경 부추 농사를 짓는 P씨도 마찬가지였다. 2020년 초엔 학교급식 중단으로 1,400평 농지에서 재배한 부추는 판로를 잃었다. 그 이후론 전면 등교중단 사례는 없었기에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계속되는 등교인원 변동에 따른 혼란은 계속됐다. 어쨌든 P씨는 지난해 2학기 기준 평년 대비 70% 수준의 물량은 학교에 납품했다.

공급 가능한 물량이 줄어든 문제 못지않게, 코로나19 범유행에 따른 불확실성은 학교급식 공급농가들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그 이유는 한씨의 대추방울토마토 재배 과정만 봐도 알 수 있다. 대추방울토마토는 정식부터 파종·육묘 및 수확에 이르는 기간이 3개월 정도 걸린다. 재배 시작 시점에서부터 학교 측과의 계약을 통해 일정 물량을 공급하기로 약속된다.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 유행 심화로 교육부가 등교인원을 재조정할 시, 한씨가 공급하고자 한 대추방울토마토 중 약 30%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한씨를 비롯한 농민들은 등교인원 재조정 관련 뉴스를 접할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을 느꼈다.

학교급식 파행운영뿐이랴. 농업소득을 거둘 여지는 예년보다 줄었건만 인건비와 농자재 가격상승은 그칠 줄 모른다. 한씨는 “코로나19 이전 6만~7만원 선이었던 외국인노동자 일당이 올해는 15만원으로 2배 이상 폭증했다. 코로나 때문에 외국인노동자들의 입국 제약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P씨는 농자재 비용 상승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비닐하우스 설치에 필요한 파이프 1개당 가격이 코로나19 이전엔 1만2,000원이었는데 현재 가격은 1만8,000원으로 33% 가량 상승했다는 게 P씨의 설명이다.

학교급식 중단 또는 파행운영에 따라 ‘주요 판로’인 학교에 농산물을 공급하지 못할 시, 농민들의 대체판로는 어떻게 될까?

한씨는 학교급식에 공급하지 못하는 친환경농산물(전체 물량의 약 60~70%)은 거의 전부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 내왔다. 코로나19 이후엔 70~85%로 ‘가락동행(行)’ 비중이 늘었다. 철저히 경매제 중심으로 돌아가는 가락시장에서, 소위 ‘품위’도 낮고 ‘규격’에도 안 맞는 친환경농산물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아니, 친환경농산물이라는 정체성마저 상실된다는 게 한씨의 설명이다.

한씨는 “일반 오이는 1kg당 2,000원 안팎에서 가격이 형성되는데, 친환경 오이는 3,000원 가량 나와야 생산비는 건질 수 있다”고 한 뒤 “학교급식에 못 들어간 친환경 오이를 가락시장에서 1kg당 1,000~1,500원에 판 적이 종종 있었다. 아예 가락시장에 오이 낼 땐 친환경 인증딱지 떼고 낸다. 가락시장에선 친환경농산물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P씨의 경우 학교급식에 공급하지 못한 부추는 주로 모 대기업 계열 중간유통업체에 1kg당 2,000~3,000원 수준 가격으로 공급한다. 학교급식엔 3,000~4,000원 수준으로 나갔으니, 학교에 낼 때보다 대체로 1,000~2,000원 더 낮은 가격이다.

또다시 급식이 ‘전면중단’된다면?

농민들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지난 2020년 초와 같은 학교급식 ‘전면중단’ 상황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점이다. 점차 코로나 변이의 ‘대세’로 떠오르는 오미크론 변이는 델타변이 대비 치명률은 낮은 대신 전파율이 높다. 오미크론 변이 전파율이 통제 불능 수준으로 높아질 시 학교급식이 다시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친환경농업협회(회장 김영재) 등 친환경농업계는 계속해서 학교급식 전면파행 상황을 대비한 ‘대응지침(매뉴얼)’ 마련이 절실하다고 주장했으며, 이와 관련해 농림축산식품부 등 정부 측에도 대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현행 제도상 학교급식 관련 제반 사무가 「학교급식법」에 따라 ‘지방사무’로 규정돼 있기에, 중앙정부에선 매뉴얼 마련 등의 조치도 ‘지자체의 역할’이라는 입장을 내세우며 직접적인 대책 마련에 미온적이다. 이에 친환경농업계에선 학교급식법 개정, 먹거리기본법 제정 등을 통한 중앙정부 차원의 ‘급식 파행 대비 근본대책 마련’이 새 정부의 과제로 대두된다고 강조한다.

한상우 씨는 “매뉴얼 마련이든, 공공급식 등 학교급식 바깥 영역의 판로 확보든, 중앙정부 차원의 근본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며 “만에 하나 이대로 또 ‘급식 전면중단’ 상황이 발생하면 농민들은 또다시 각자 살길을 찾아야 한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반복돼야 하나”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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