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살고싶다” 무수히 쏟아진 증언들

  • 입력 2022.01.27 18:42
  • 수정 2022.01.28 09:53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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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26일 세종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앞에서 열린 ‘가축위생방역노동자 2차 총력 결의대회’가 끝난 뒤 방역복을 입은 한 노동자가 본부 입구에 설치된 기관명에 ‘차별하지 마세요’라고 적은 메모를 붙이고 있다.한승호 기자
지난 26일 세종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앞에서 열린 ‘가축위생방역노동자 2차 총력 결의대회’가 끝난 뒤 방역복을 입은 한 노동자가 본부 입구에 설치된 기관명에 ‘차별하지 마세요’라고 적은 메모를 붙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20일, 조직 출범 이래 최초로 파업에 돌입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지부장 김필성, 방역본부 노조)는 파업이 끝나는 27일까지 방역현장의 실태와 현실을 알리는 데 온 힘을 쏟아부었다. 소위 ‘열정페이’로 요약되는 처우 문제를 들여다보면 자연스레 인원 대비 과중한 업무량의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고, 그 결과가 높은 부상확률과 이직률로 나타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파업 기간 2차에 걸친 결의대회와 피해증언대회, 각지에서 무수하게 쏟아진 노동자들의 증언을 담아 이들이 이야기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무엇인지 살펴봤다.

박봉 무기계약직이 전담하는 ‘국가 필수업무’

방역본부는 가축방역·축산물위생검역 등 기관이 맡은 국가 방역업무 일체를 무기계약직이 담당하게끔 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평균 근속연수가 7년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3,570만원의 평균연봉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문재인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신분이 바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평균임금(3,651만원)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구체적으로 2020년에 입사한 방역직의 올해 세전 월급은 242만원, 위생직은 257만원, 예찰직은 200만원에 불과하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희박한 승진 기회와 매우 낮은 임금인상률로, 1999년 입사한 6급 방역·위생직의 사례를 보면 이들의 월급은 근무연수가 20년을 넘었음에도 각각 357만원·378만원에 불과했다.

방역직의 경우 지난해 기준 전체 496명 가운데 10%인 50명만이 5급 문턱을 넘었고, 6급은 110명, 가장 아래 7급은 336명이었다. 383명인 위생직의 상황도 비슷한데, 평균 근속연수를 생각하면 이 역시 기형적인 구조다. 반면 본부에서 근무하는 일반직 55명은 급수에 맞춰 인원이 고르게 분포돼 있다. 심지어는 성희롱과 사찰 등으로 중징계 처분을 받은 직원이 별일 없이 승진되는 사례도 발생해 물의를 빚었고, 이런 차별은 이번 파업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기도 했다.

가족수당·명절휴가비 등에서도 일반직과 차별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똑같은 일을 하는 지자체 소속 도축검사관·가축방역관·검역관이 받는 혐오·위험근무 수당도 방역본부 노동자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예찰직은 수당에 있어 같은 무기계약직들 안에서도 가장 낮은 대우를 받는다. 행정업무를 맡은 이들 가운데선 일반 정규직 직원과 별다르지 않은 일을 함에도 너무나 다른 처우를 참다못해 퇴사 후 일반직 재입사를 하는 사례까지도 등장했다.

가축 방역 업무를 담당하는 가축방역관 부족 현상이 매년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적정 방역인력 확충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충남 공주시 정안면의 한 축사에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방역사들이 소 브루셀라병 시료 채취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승호 기자
가축 방역 업무를 담당하는 가축방역관 부족 현상이 매년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적정 방역인력 확충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충남 공주시 정안면의 한 축사에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방역사들이 소 브루셀라병 시료 채취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승호 기자

매일 같이 분변 뒤집어쓰지만 사무공간은커녕 샤워실조차 없어

열악한 근무환경 또한 임금과 함께 사기를 꺾는 주된 원인이다. 앞서 조명한 현장방역사무소의 열악한 실태는 위생직들이 처한 상황에 비하면 오히려 나아 보일 정도다. 도축장으로 출근하는 위생직들은 일터에 자신의 자리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정지성 검사원은 “(출근 첫날) 제 자리엔 당연히 있어야 할 컴퓨터가 없었다. 그냥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앉아만 있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 민망한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라며 “몇년이 지나 선임검사원이 된 지금도 제가 일하는 자리는 없고, 컴퓨터는 두 명 당 한 대를 사용한다. 후배 검사원이 출근 첫날 컴퓨터 없이 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을 바라보니 안쓰러웠다”라고 말했다. 정 검사원은 업무상 각종 문서의 스캔, 팩스 등을 요구하지만 아무것도 구비돼있지 않아 검사관이나 도축장 측에 고개 숙여 부탁해 처리한다고 덧붙였다.

정현호 검사원도 “온갖 사무업무가 난무하는데도 PC를 비롯해 사무용품 지급이 턱없이 부족해 프린터를 구걸하고 사비로 노트북을 구매해 업무용으로 사용한다”라며 “어떻게 정부부처에서 일을 시키면서 기본적인 업무환경조차도 만들어주지 않는 건가. 우리는 단순히 칼질만 하는 사람이 아닌, 위생관리 업무의 전문성을 인정받은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검사원을 위한 공간의 부재는 검사관과 달리 검사원을 위해 공간을 마련할 도축장의 의무가 법률에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여성 검사원들만이 겪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방역직과 달리 위생직군에서는 많은 여성이 근무하는데, 이들은 피와 내장, 분변을 뒤집어쓰며 일해도 씻을 곳조차 없다.

충북 지역에서 17년째 근무한 한 여성검사원은 “사무실 뿐만 아니라 탈의 공간 자체가 없어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남성들이 이용하는 도축장 직원 샤워실은 이용할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다”라며 “여성 입장에서 거기서 씻는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입사 이후 한 번도 작업이 끝난 후 직장에서 씻어본 적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 검사원은 “본부에 요청했더니 그건 도축장과 상의해서 해결해야 할 일이지 우리가 해줄 일이 아니라는 식의 답변을 들었다. 그것을 만들어내는 게 너희 능력이라고 했다”라며 허탈해했다. 앞서 경기남부사무소에서 만났던 오재연 부소장 역시 “위생직들의 공간 문제 해결을 건의했더니 ‘얼마나 소통을 잘못했으면 그런 것도 못 얻어내느냐’는 식이었다”라고 비슷한 증언을 했다.

지난 25일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경기도본부 경기남부사무소에서 오재연 방역사가 현장 방역사무소의 열악한 현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업무는 폭증, 충원은 무소식

더 심각한 문제는 일할 인원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방역직의 경우 이 문제가 가장 두드러지는 직종으로, 지난 3년만 살펴봐도 담당 업무는 엄청나게 늘어난 데 반해 충원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방역사들은 ‘고유사업’으로 일컫는 소·돼지·닭의 시료 채취 및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상시 예찰, 농장정보 현행화 사업 외 ‘지원사업’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양돈농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담당 관제 및 전염병 발생 농가 48시간 초동방역, 지자체 소관의 시료 채취 수요까지 떠맡아왔다. 방역본부에 따르면 ‘고유사업’ 하에 지난해 채취한 가축 시료량만 약 87만두, 농장 예찰은 6,200여건, 고병원성 AI 관련 시료 채취는 13만2,000여건에 이른다.

그런데 악성전염병 확산이 계속되면서 지난 2020년부터 2년에 걸쳐 지원사업 항목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제 방역사들은 ASF와 고병원성 AI 대응 차 농장은 물론이고 주변 지역 실태를 점검·분석해야 한다.

전광수 방역사(11년차)의 피해증언에는 이 폭증하는 ‘지원업무’로 겪은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 방역사는 “지자체 동물위생시험소의 채혈업무임을 명시한 공문에 협조기관으로 꼭 방역본부를 끼워 넣기 때문에 지자체는 은근슬쩍 채혈업무를 방역사들에게 전가하고 결국 채혈업무 대부분은 방역사들의 몫으로 남는다”라고 개탄했다.

2021년부터 시행된 질병등급제와 관련해서도 “전담방역사 80여명을 신규 채용해 사업을 전담시키기로 했는데, 결국 신규 채용이 불발되면서 기존 방역사 80명이 등급사로 차출되고 나머지 인원이 80명의 몫을 떠안게 됐다”라며 “그러잖아도 과중한 업무로 신음하는 방역사를 죽음의 늪으로 내동댕이치는 농식품부의 행태에 분노만이 치밀어 오른다”라고 분개했다.

2019년 ASF 발생 이후 방역 현장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이를 점검하는 예찰 업무도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했지만, 이쪽 역시 충원은 없었다. 김성숙 예찰원(5년차)은 “하루 120통이 넘는 전화를 기본으로 특별방역기간에는 이 몇배의 일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각종 성희롱과 언어폭력에 시달리지만 농가와의 유대관계를 위해 참아내며 침이 마르게 매일 통화를 한다”라며 예찰원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그는 “2년 가까이 이어진 휴일 근무에 이틀에 한 번꼴로 내려오는 농식품부 하달 각종 설문까지, 1분 단위로 쪼개 전화를 돌려도 하루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매일 축주들의 욕받이까지 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방역본부, 지자체, 농림축산검역본부 등 다양한 방역 주체가 똑같은 점검 내용으로 동일 농가를 계속 방문하는 탓에 축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반복적 설문 전화까지 받으면 예찰원에게 화를 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국민 1인당 축산물 소비가 매년 증가세를 보이지만, 도축검사를 담당하는 위생직 역시 그에 걸맞는 규모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축산물 위생관리법 시행령」에 따르면 지자체 소속 검사관 정원은 가축별 일일 도축 두수에 따라 필요 인원이 정해져 있다. 소 90두, 돼지 600두, 닭 15만 수가 증가할 때마다 1명씩 추가된다는 이 규정과 달리 방역본부 소속 검사원의 수는 소 3명 이상, 돼지 3명 이상, 닭 6명 이상으로 최소 인원만 제한돼 있을 뿐 도축 두수에 비례하지 않는다.

김현서 검사원(17년차)은 “2022년 1월 기준, 제가 근무하는 도축장에서는 소 40~50두, 돼지 1,200~1,600두를 검사하고 있다. 소 1두를 돼지 10두로 환산해서 검사관에 적용되는 기준으로 근무인원을 재산출하면 검사원 정원은 5명이 돼야 하지만 두 명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검사원들은 ‘의사가 아닌 간호사가 수술을 도맡는 형태’라며 도축장의 실태를 병원에 비유해 이야기한다. 검사원의 업무가 검사관과 별다를 것이 없고, 도축검사의 상당 부분을 도맡을 정도로 역할이 증대됐지만 이들의 권한과 책임은 검사원 제도가 처음 도입되던 지난 2005년 당시와 다를 게 없다는 이야기다.

부족한 인원을 최대 효율로 돌리는 것조차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불가능하다. 인건비가 6:4 비율로 국가, 지자체에서 나눠 마련되는 기형적 예산구조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처한 지역에 타지 인원이 지원을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 예로 지난해 말에는 결원이 발생한 충남의 한 도축장에 대전광역시 지역 노동자 1명을 파견했는데, 그가 관내에서 근무하지 않은 기간만큼 보조금을 반납하라고 통지하는 일도 있었다.

비정상적 기관 운영 정상화, 현장 인력 충원, 열악한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사상 첫 파업에 돌입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방역사, 검사원, 예찰원 등 가축위생방역노동자들이 파업 7일째인 지난 26일 세종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앞에서 열린 2차 총력 결의대회에서 국가방역체계 전면개편을 촉구하는 선전물을 흔들고 있다. 한승호 기자

‘사람답게 살고 싶어’ 파업했다

불안한 처우, 열악한 환경, 부족한 인원은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이 신체·정신적 피해까지 감내해야 하는 최악의 노동 조건을 형성한다. 방역본부 노조가 파업 기간 방역사 213명, 위생직 13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현장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 뒷발에 치이거나 뿔에 받힌 경험이 있는 방역사는 51.3%(114명)나 됐다. 보정(가축을 줄로 붙들어 고정하는 행위)하는 도중 다친 경험 역시 31.4%였다.

위생직들은 칼에 베이거나(47명) 부산물로 미끄러운 바닥 때문에 넘어지고(31명), 반복되는 검사업무로 손목 등에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다(30명)고 호소했다. 칼에 베이는 사고는 너무 자주 있다고 할 정도인데, ‘레일로 내장이 계속해서 내려오기에 칼을 놓을 수 없고 칼을 쥔 채 폐기를 위해 내장을 들어 올렸다가 무겁고 미끄러운 백내장을 놓쳤고 칼이 제 얼굴을 찍어 찢어졌다’와 같은 증언도 있다.

생명에 심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인수공통감염병에도 그대로 노출돼 있는 처지지만 외상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예방조치와 보상도 없다. 최민수 방역사(6년차)는 “관내 염소 큐열발생 300두 규모 농장에 전수검사를 위해 투입됐다가 급성 큐열에 감염됐고, 이로 인해 평생을 헌혈도 할 수 없는 보균자로 살아가는 신세가 됐다”라고 한탄했다. 방역본부 노조를 이끄는 김필성 지부장 역시 큐열 감염을 겪었는데, 자비로 대학병원에서 대체 약물을 통해 겨우 치료한 경우다.

지난 3년간 그만둔 방역사만 69명, 이직률은 13.9%에 이른다. 폭증하는 업무량에 잦아지는 부상, 높은 퇴직률은 2인1조 구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더 많은 사고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김기철 방역사(17년차)는 축주의 도움을 받아 12개월 미만 송아지를 채혈하던 도중 날뛰는 송아지에 받혀 넘어진 뒤 그대로 옆구리를 짓밟혔다. 2인 1조를 이루는 동료는 현장에 나왔지만 이미 손가락 골절을 당해 보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김 방역사는 “업무는 많고 사람은 없다보니 다쳐도 동료 생각해서 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경영평가에 업무상 재해에 대한 항목이 포함돼 있어 다쳤다 얘기도 못하고, 산재처리도 힘들어 그냥 자비로 치료를 받는 일이 허다하다”라고 말했다. 김 방역사가 증언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사람답게 살고 싶어 파업에 참여했다’는 심정의 토로였다.

지난 24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가축위생방역노동자 현장 실태고발 증언대회'에 나선 김기철, 전광수 방역사가 업무상 피해를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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