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위생방역노동자, 사명감 하나로 참았다

  • 입력 2022.01.27 18:28
  • 수정 2022.01.27 19:05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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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사무실 안쪽 탕비실 같은 공간에 건물주의 허락 아래 가벽을 세워 만든 샤워실 그리고 문을 대신한 샤워커튼. 경기도 안성시 도기동에 위치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경기도본부 경기남부사무소의 오늘(25일)이다. “사명감 하나로 참아왔다”는 말을 곱씹게 되는 풍경이다. 한승호 기자
사무실 안쪽 탕비실 같은 공간에 건물주의 허락 아래 가벽을 세워 만든 샤워실 그리고 문을 대신한 샤워커튼. 경기도 안성시 도기동에 위치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경기도본부 경기남부사무소의 오늘(25일)이다. “사명감 하나로 참아왔다”는 말을 곱씹게 되는 풍경이다. 한승호 기자

“방역사들이 업무를 보는 사무실을 한 번 가보십시오. 말이 공공기관이지 얼마나 협소하고, 열악하고, 초라한지 말입니다. 쥐꼬리만 한 예산으로 월세를 찾으니 마을회관 셋방살이가 웬 말입니까(전광수 방역사, 지난 18일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노조 총파업 선언 기자회견에서).”

그래서 가봤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60만원을 내며 쓰고 있다는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경기도본부 경기남부사무소다. 사무소는 안성 시가지의 아래쪽 안성천 너머 한 공터 내 조립식 건물, 그것도 전체가 아닌 ‘일부’였다.

본래 사무소는 안성 시내에 있었는데, 적은 비용으로 많은 차량 주차가 가능하면서 어떻게든 시내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마지노선을 찾다 보니 이곳에 자리 잡게 됐다고 한다. 건물 바깥에 붙은 초라한 간판을 제외하면, 때 묻은 입구벽에 제대로 된 액자나 틀도 없이 투명 테이프나 자석으로 붙여 둔 ‘사무소 현황’, ‘비상연락망’, ‘조직도’, ‘관련 시설 현황’ 등이 그나마 이곳이 공공기관의 사무실이란 걸 짐작케 하는 증표였다.

30평 남짓한 1층의 사무공간은 이곳을 거점으로 하는 방역직(10명)·예찰직(1명)의 책상과 컴퓨터만으로 가득 찼다. 변변한 휴게 공간은커녕 사무에 으레 필요한 회의실조차 둘 수 없는 공간이다. 사무소를 소개한 오재연 방역사(부소장)와의 대화 또한 사무실 입구에서 선 채로 진행됐다. 입구에 가스난로와 함께 둔 소파는 사무실에서 책상 이외의 거의 유일한 집기였다.

현장에서 분변과 땀, 악취에 시달리는 방역사들은 늘 샤워와 세탁에 목마르다. 안그래도 부족한 1층을 쪼개 만든 사무실 안쪽의 좁고 긴 공간에는 세탁기 두 대와 옷장, 싱크대 그리고 가벽과 샤워커튼으로 겨우 가려둔 샤워실이 있었다. 공공기관에서 지내는 직원이, 다른 일도 아닌 공무 때문에 더러워진 몸을 씻어야 하는 장소라고는 믿기 힘든 풍경이다. 이런 수준의 샤워시설은 농촌 이주노동자 숙소 가운데서도 매우 열악한 수준의 공간에서나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위층, 1층과 똑같은 면적으로 자리한 창고 역시 비슷한 상태였다. 조명조차 없어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창고는 가뜩이나 부족한 공간 중 일부가 건물주(임대인)의 물건으로 채워져 있어 놀랍다. 창고는 방역복, 마스크, 장갑, 장화 등 각종 보호용 물품이 담긴 상자들로 채워졌다.

입구 주변조차 악성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재빨리 들고 나갈 수 있도록 현장에서 사용하는 48시간 초동방역용 각종 차단 물품들로 발 디딜 틈 없다. 무거운 소독용 분무기는 창고에도 두지 못해 1층 공간을 더욱 부족하게 만든다.

지난 한 해, 방역현장 출동용 차량 1대 당 하루 평균 이동거리는 133.49km에 달했다. 이처럼 차량 또한 ‘운전노동의 과도함’을 호소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곳 차량은 널찍한 승합차나 SUV가 아닌 소형차, 그것도 10년 가까이 달린 경유차로 주로 구성돼 있었다. 노후화 문제는 둘째치고 농로를 달리기에도, 장거리 운행 시 승차감 측면에서도 절대적으로 불리한 종류다.

오재연 부소장은 “48시간 초동방역을 나간 방역사들이 밤을 버티는 장소가 바로 이 차 안”이라며 “소독용 분무 장비는 뒷좌석에도 트렁크에도 그대로 실리지 않아 일일이 분해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최근엔 조금씩 중형 SUV로 대체되고 있지만, 다른 관공서였다면 진작에 교체됐을 차량들이 여전히, 이곳을 비롯해 많은 사무소에서 운행되고 있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현장 노동자들이 조직 출범 23년 만에 처음으로 전면파업을 했다. 현장 방역사무소의 이 경악스런 근무환경은 그들이 파업을 일으킨 원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자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파업 기간 8일, ‘사명감 하나로 참아왔다’는 무수한 호소들을 부족한 지면에나마 최대한 담아보려 애써본다.

경기도 안성시 도기동의 한 조립식 건물 일부를 사무실로 임차해 사용하고 있는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경기도본부 경기남부사무소의 창고 모습. 조명조차 없는 창고에 각종 방역물자들이 발 디딜틈 없이 쌓여 있다. 한승호 기자
경기도 안성시 도기동의 한 조립식 건물 일부를 사무실로 임차해 사용하고 있는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경기도본부 경기남부사무소 내 창고의 모습. 조명조차 없는 창고에 각종 방역물자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쌓여 있다. 한승호 기자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경기도본부 경기남부사무소의 사무실. 탕비실과 간이 샤워실을 포함해 책상과 의자, 컴퓨터가 놓인 30평 남짓한 공간을 11명이 쓰고 있다. 한승호 기자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경기도본부 경기남부사무소의 사무실. 탕비실과 간이 샤워실을 포함해 책상과 의자, 컴퓨터가 놓인 30평 남짓한 공간을 11명이 쓰고 있다. 한승호 기자
경기도 안성시 외곽 도기동에 위치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경기도본부 경기남부소무소의 전경. 한승호 기자<br>
경기도 안성시 외곽 도기동에 위치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경기도본부 경기남부소무소의 전경.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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