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 농산물, ‘지구를 살린다’

  • 입력 2022.01.16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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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친환경 ‘못난이 농산물’로 구성한 꾸러미의 내용물. 비록 모양이 크거나 작고 볼품없이 보여도 그 맛과 영양은 규격품에 못지않다. ‘등급 외’로 판정돼 가공하거나 폐기될 수밖에 없었던 ‘못난이 농산물’에 최근 소비자들의 관심이 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친환경 ‘못난이 농산물’로 구성한 꾸러미의 내용물. 비록 모양이 크거나 작고 볼품없이 보여도 그 맛과 영양은 규격품에 못지않다. ‘등급 외’로 판정돼 가공하거나 폐기될 수밖에 없었던 ‘못난이 농산물’에 최근 소비자들의 관심이 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7일 배송받은 친환경 ‘못난이 농산물’ 꾸러미. 뿌리가 여러 개로 갈라진 당근, 야구공보다 작은 크기의 양파, 갓이 고르게 펴지지 않은 버섯, 과잉 생산된 로메인 상추와 판로가 부족한 쑥갓, 아주 큰 크기의 무 반쪽이 담겼다.

겉으로 보기에 ‘특품’이나 ‘상품’은 아니지만 전부 몸에 좋고 맛있는 무농약 농산물이다. 하지만 표준규격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못난이 농산물’이라 불리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채소·과일 생산량의 10~30%는 ‘등급 외’ 농산물이다. 농식품부가 27개 채소·과일 품목을 대상으로 전국 128개 산지농협을 설문 조사한 결과 못난이 농산물 발생률은 평균 11.8%에 달했다.

색깔·크기·흠집 여부 등 외적 기준에 따른 선별을 거쳐 표준규격 상 등급 외로 분류된 못난이 농산물들은 단지 색이 거뭇거뭇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크기가 너무 크거나 작다는 이유로 또는 모양이 평범하지 않다는 이유로 ‘정상’적인 유통 경로를 따라 출하되지 못한다. 가공이 가능한 경우 즙이나 말랭이 등으로 활용코자 그나마 헐값에라도 거래가 되지만, 가공이 여의치 않은 품목들은 대개 저장고에 보관되다 끝내 폐기되는 수순을 밟고 만다. 우리나라 채소·과일 전체 생산량의 10% 이상이 폐기되고 있다는 의미와 다름없다.

비영리 국제 환경보호시민단체인 미국 천연자원보호협회(NRDC)가 지난 2012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자국 내 식량의 약 40%가 낭비되고 그중 상당량이 수확 후 포장되는 과정에서 폐기된다. 품질과 크기·색깔·무게·흠집 등의 외관 기준에 따라 선별을 거치기 때문인데, NRDC에 따르면 그 양은 전체 생산량의 20~50%(감귤류와 핵과류, 포도)에 달한다.

아울러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한국협회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국제기구 농수산동향 모니터링 자료는 “전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식품의 14%가 수확 후 소매에 이르는 과정에서 손실되고, 가정, 소매업체, 레스토랑 및 식품서비스 업종 등에서는 17%가 폐기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세계식량계획(WFP) 관계자는 “현재 수준의 식품 손실로 30억톤 이상의 온실가스 배출이 야기된다. 식품 폐기물을 하나의 국가로 간주할 경우 탄소 배출국 3위를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이에 프랑스·영국 등 유럽과 미국에선 이미 8~9년 전부터 못난이 농산물을 의식적으로 소비하는 움직임이 그 규모를 키워나가고 있다. 탄소배출 저감을 위해 대형 유통업체와 마트 체인 등에서 저렴한 가격에 못난이 농산물을 팔기 시작했고, 소비자 호응도 뜨겁게 뒤따르는 추세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소비자가 못난이 농산물을 인식하기 시작한 건, 아마 2019년 말 TV 예능프로그램을 통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그랗지 않은, 다양한 크기의 감자들이 수확된 밭에서 전부 그대로 폐기될 위기에 처했단 소식이 방송을 탔고 한 대형마트에서 이를 판매해 ‘완판 신화’를 쓴 것이다. 당시 농가는 큰 손실을 면하게 됐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방안에 불과했다.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농가가 못난이 농산물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비료와 농약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해 못난이 발생률이 보다 높은 편인 친환경 농가의 고충은 더욱 크다. 식탁에 올라 마땅할 농산물은 계속해서 갈아엎어지거나 땅속에 묻히는 실정이다.

물론 주목할 만한 움직임도 속속 눈에 띄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못난이 농산물로 구성한 꾸러미를 정기배송하는 업체가 등장하고 있어서다.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소비자 호응도 뛰어난 편이다. 못난이 농산물 정기배송 업체는 꾸러미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농가 소득이 보전되고, 탄소배출 저감에도 한 발 나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과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이에 <한국농정> 또한 못난이 농산물의 외면이 아닌 내면에 주목해보려 한다.

생긴 게 다가 아니다. 농가와 지구를 살리는 ‘못난이 농산물’ 소비에 앞장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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