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농협’의 열쇠는 조합·조합원 역량 … 중앙회는 자각하고 있나

농협조합장 정명회·〈한국농정〉 공동기획 연속포럼 ③

  • 입력 2021.11.14 18:00
  • 수정 2021.11.15 10:45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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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2012년, 농협중앙회는 기존에 병행하고 있던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분리하면서 그 수단으로 농협경제지주·농협금융지주라는 양대 지주회사 체제를 택했다. 목적은 경제사업·신용사업의 전문성·효율성 강화. 그런데, 농협에겐 경제사업·신용사업 외에도 ‘교육·지원사업’이라는 중요한 과업이 있다. 조합원·임직원의 주체의식과 협동조합적 사업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매우 핵심적인 사업이지만, 경제·금융 양대 지주회사 체제가 굳어지면서 오히려 이전보다 소홀해진 면모를 보이고 있다.

개혁적 성향의 조합장 모임 ‘농협조합장 정명회’와 <한국농정>은 농협이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연속포럼을 공동기획했다. 농협 지주회사 체제하의 ①사업구조 ②지배구조 ③조합역량을 평가·분석하는 조합장들의 포럼과 이를 총괄한 ④국회 종합토론을 9월부터 12월까지 4주 간격으로 차례차례 지면에 정리한다. 농협개혁의 의제를 다시 한 번 정리함과 함께, 20대 대선을 준비하는 각 후보자들에게도 요긴한 참고점이 되길 희망한다.

 

지난 9일 대구 반야월농협에서 열린 정명회·〈한국농정〉공동기획 3차 포럼에서 조합장들이 토론하고 있다. 시기상의 문제로 앞선 두 차례 포럼보다 참가자는 적었지만 집중도 높은 토론이 진행됐다.
지난 9일 대구 반야월농협에서 열린 정명회·〈한국농정〉공동기획 3차 포럼에서 조합장들이 토론하고 있다. 시기상의 문제로 앞선 두 차례 포럼보다 참가자는 적었지만 집중도 높은 토론이 진행됐다.

농협의 3대 사업은 경제사업, 신용사업, 교육·지원사업이다. 모든 이들의 초점이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에 맞춰져 있어 교육·지원사업은 도외시되는 측면이 있지만, 기실 교육·지원사업이야말로 농협 운영과 사업의 방향을 이끌고 가치와 효율을 담보케 할 핵심적 요소다. 이는 개별 조합의 중요 과업이기도 하지만 회원조합의 공동이익과 발전을 도모해야 할 농협중앙회의 의무사업이기도 하다.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지주회사가 탄생해 자리잡아오는 동안, 농협중앙회의 교육·지원사업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농협조합장 정명회(정명회) 소속 조합장들은 지난 9일 대구 반야월농협에서 정명회·<한국농정> 공동기획 연속포럼의 세 번째 순서로 지주회사 체제 하 농협중앙회의 교육·지원사업 문제를 심층 토론했다.

발제를 맡은 이지웅 정명회 사무국장은 지주회사 체제 전환 후의 구조적 변화에 주목했다. 종전까지 농협중앙회의 교육·지원사업은 중앙회와 회원조합이 공동조성한 자금으로 농협중앙회가 전담했지만, 지주회사 출범 이후엔 경제지주와 금융지주가 각자의 수익을 이용해 경제·금융 관련 교육·지원사업을 나눠 맡게 됐다.

이같은 변화로 인해 교육·지원사업이 경제사업, 신용사업보다 후순위로 밀려 교육 내용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이 이뤄지지 않게 됐으며, 협동의 가치보다 효율의 가치를 강조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사무국장은 “농협중앙회가 교육·지원사업의 위상을 강화하고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과제로 △협동조합 정체성을 강화하는 교육 및 경영모델 개발 △분산된 교육·지원사업 주체와 요소의 통합성 강화 △지역 밀착형 교육·지원사업을 위한 지역단위 시스템 마련 △조합 공동이익 증진을 위한 중앙회의 대정부 활동 강화 등을 제시했다.

토론에선 조합장들이 지근거리에서 체감하는 직원 교육훈련의 맹점이 1번 화두로 등장했다. A조합장은 “조합장으로 들어와 보니 가장 큰 문제가 직원들의 역량이 떨어져있다는 거다. 제도적으로 인사교류가 어려워져 입사해서 퇴직할 때까지 우리 농협에서만 근무하고, 그러다 보니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아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며 “정해진 정원 외에도 조합장들이 추천하는 직원이 농협대학 교육 등을 거쳐 돌아와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B조합장은 “회원조합 직원들의 교육 기회 자체가 중앙회보다 훨씬 적다. 신용사업 MBA과정의 경우 정원이 한 도에 20~30명으로, 한 조합당 한 명도 채 못 간다. 신용부문은 그나마 나은 편이고 경제사업 전문가 육성 프로그램은 아예 없다. 교육·지원사업에 재원을 대는 게 거의 금융지주고, 경제지주는 많은 수익을 못 내니 교육도 금융 쪽으로 치중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C조합장은 “교육·지원사업이라 하면 중앙회에서 뭐 하나 지원받는 사업 정도로 인식이 굳어져 있다. 우리 조합 직원들도 보험 신상품이 나올 때 그 내용을 교육받는 정도고, 경제사업 관련해선 팜한농·경농 같은 업체에서 교육을 받지, 중앙회 교육은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교육 수준이 낮아 가려 하지 않는다. 중앙회가 회원조합에서 뭘 고민하고 있는지 적극적으로 살펴야 하며 필요하면 중앙회 직원들을 회원조합에 일정기간씩 파견근무 보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조합원 교육·지원사업에 대한 고민도 다수 공유됐다. C조합장은 “농협의 모토가 ‘생산은 농민, 판매는 농협’이라고 하는데 이건 잘못된 명제다. 대개 경쟁력이 있는 농가는 품목조합이나 시중 상인들에게 출하하고 경쟁력이 약한 농가가 농협에 몰리는데, 이런 건 팔기도 힘들고 팔아줘도 욕 먹는다. 이러니 직원들도 판매사업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며 “농협이 기술지도·영농대행·품종선택 등 생산부터 관여하고 지원하지 않으면 판매사업이 기초부터 무너진다”며 적극적인 농가 지원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B조합장은 “많은 지역조합들이 교육·지원사업 재원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촌의 열악한 조합일수록 가뜩이나 몇십% 밖에 안되는 예대비율로 신용사업 잉여이익금을 끌어오기 힘들다. 그걸 보완하기 위해 중앙회에서 무이자자금이나 교육지원을 내려보내는데, 내려보내는 액수 대비 120%의 사업을 하라는 자부담 조건이 붙어있어 규모가 작은 조합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한다. 정말로 사업이 필요한 조합은 이런 열악한 조합들인 만큼 이들을 배려할 수 있는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협 본연의 협동조합 정신을 회복하는 데 교육·지원사업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일치했다. D조합장은 “농협중앙회가 이번 국정감사에서 지적받은 게 결국 협동조합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어발식 경영에 도시농협 신용사업에만 치중하고, 협업은 안되고, 이런 문제는 교육을 통해 본질을 회복해 줘야 한다. 중앙회가 협동조합 본연의 역할을 잘 하는 조합에 힘을 실어주고 그런 모델을 확대하면서 농협의 본질을 되찾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C조합장은 “농협중앙회가 자본주의 시장질서 아래 너무 이익 중심의 사고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협동조합 발전의 한계는 협동과 공동이익의 필요성에 대한 조합원들의 이해가 부족한 데 있다. 이게 바탕이 돼야 협동조합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데 중앙회가 이를 간과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명회는 지난 9월부터 이어온 3회의 연속포럼 결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발표 예정이며, 12월 중 포럼 결과와 전문가·관계자들의 견해를 망라한 종합토론을 개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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