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체제 9년, 본말 전도된 농협 경제사업

농협조합장 정명회·〈한국농정〉 공동기획 연속포럼 ①

  • 입력 2021.09.19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2012년, 농협중앙회는 기존에 병행하고 있던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분리하면서 그 수단으로 농협경제지주·농협금융지주라는 양대 지주회사 체제를 택했다. 당초 신경분리의 목적은 두 사업 각각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함이며 특히 ‘농업협동조합’의 정체성에 걸맞게 중앙회와 회원조합의 경제사업을 비약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투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2021년, 농협의 사업이나 구조가 외형의 변화만큼 실질적인 개선을 이뤄냈느냐 하는 데엔 아직도 물음표가 붙는다.

개혁적 성향의 조합장 모임 ‘농협조합장 정명회’와 <한국농정>은 농협이 회원조합 중심으로 경제사업을 활성화하고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연속포럼을 공동기획했다. 농협 지주회사 체제하의 ①사업구조 ②지배구조 ③조합역량을 평가·분석하는 조합장들의 포럼과 이를 총괄한 ④국회 종합토론을 이달부터 12월까지 4주 간격으로 차례차례 지면에 정리한다. 농협개혁의 의제를 다시 한 번 정리함과 함께, 20대 대선을 준비하는 각 후보자들에게도 요긴한 참고점이 되길 희망한다.
 

 

지난 14일 전남 화순 능주농협 회의실에서 농협 지주회사 체제의 사업구조 문제를 주제로 한 정명회·〈한국농정〉 공동기획 1차 포럼이 열렸다.
지난 14일 전남 화순 능주농협 회의실에서 농협 지주회사 체제의 사업구조 문제를 주제로 한 정명회·〈한국농정〉 공동기획 1차 포럼이 열렸다.

지난 14일 전남 화순 능주농협에서 열린 농협조합장 정명회(정명회) 포럼은 정명회·<한국농정> 공동기획 연속포럼의 첫 순서였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농협 지주회사 체제하의 ‘사업구조’ 문제. 즉, 농협중앙회의 지주회사 체제가 지역농협 경제사업 활성화에 과연 얼마나 기여했는지 조합장들의 시각으로 진단하는 자리였다.

사실 지주회사 체제의 성과에 대한 회의적 시각은 농업계에 이견없이 퍼져 있는 실정이다. 국회예산정책처나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등에서도 이미 그 미흡을 지적하는 평가자료들을 발표한 바 있다.

이지웅 정명회 사무국장은 주제발표에서 기존 평가자료들의 요지를 모아 지주회사 체제의 한계를 지적했다. 발제문에 따르면 산지유통 점유율, 조공법인 조직 실적, 공판장 사업실적 등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수치만 살펴봐도 경제사업의 목표달성률이 극히 저조하며 농가소득·소비자편익 또한 퇴보하고 있다. 그렇다고 신용사업의 전문화와 활성화를 정상적으로 도모했다고 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 사무국장은 △농협경제지주가 회원조합의 경제사업을 제대로 지원하고 있는지 △도시농협의 협동조합적 역할을 정립하고 있는지 △중앙회-회원조합 사업경합 문제를 해소하고 있는지 △중앙회의 신용사업과 상호금융사업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며 포럼 주제를 구체화했다.

지역농협 조합장인 정명회 회원들은 농협중앙회의 경제사업에 한결같이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A조합장은 “중앙회와 지역농협은 동반자가 아닌 갑과 을의 관계다. 지역농협이 하나로클럽에 물건 하나 넣기도 힘들고 오히려 중앙회 사업과 경쟁해야 하는 일도 잦다. 중앙회가 지역농협 실적을 평가할 때도 각 지역의 상황을 고려해 소규모 농협들의 의미있는 노력을 평가해야 하는데 자꾸 광역합병 등 규모에만 집중하면서 정치판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B조합장은 “경제지주가 산지-소비지 직접판매를 못하고 공판장으로 넘기면서 꼭 연합사업단이나 조공법인에 수수료를 요구한다. 농가 입장에선 직접 출하하는 것보다 나을 게 없다. 지난해 한 품목을 100억원가량 취급하면서 수수료만 7,000만원을 냈다. 농가수취가를 뒤로하고 오직 경제지주를 위해 참여하고 있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조공사업에 대한 회의론도 나왔다. C조합장은 “중앙회가 장려하는 조공법인 활성화가 지역농협의 직접적 유통 관장을 막아 조합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도나 밀접도를 약화시키고 있다. 조공법인은 대도시 판매경쟁력을 위해 원가를 낮출 수밖에 없고 결국 농가수취가를 낮추게 되는 문제가 있다”며 “조공법인을 장려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농약 등 자재유통에 대한 논의도 뜨거웠다. 조합장들은 민간 덤핑판매 등 복잡하고 불투명한 농약 유통구조, 농협간 빈부에 따른 할인역량 차이 등의 문제에 경제지주가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입 모아 지적했으며, 조합 입장에서도 “계통구매보다 자체계약이 더 저렴하다”며 경험담을 공유하기도 했다.

도시농협 역할미흡 문제엔 특히 많은 불만이 집중됐다. A조합장은 “도시농협은 무늬만 농협이다. 조합원 수가 얼마 되지 않으면서 손익에 큰 차이가 생겨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도시농협은 산지농협들의 출자농협이 돼야 한다”고 제안했으며 C조합장은 “산지농협의 농산물 생산은 나름 기틀이 갖춰져 있는데 문제는 소비다. 도시농협들이 소비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한 생산-유통의 순환고리는 연결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D조합장은 “도시농협은 농촌 지속가능성과 국민경제에 이바지한다는 걸 전제로 평균 30억원 정도의 조세감면 혜택을 받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이바지하는 것이 없다”며 “경제지주가 도시농협 자산의 일정부분을 판매사업에 투입하도록 유도하면 도시농협이 산지농협과 연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협동조합의 기본원칙은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고 특히 협동조합은 양극화가 있어선 안된다”며 도시농협의 각성과 농협경제지주의 중재 역할을 재차 당부했다.

결론적으로 농협중앙회 지주회사 체제에 대한 정명회의 평가는 ‘불만족’이었다. E조합장은 “조합원에게 도움이 될거라던 신경분리가 오히려 해가 돼버렸다. 중앙회 조직에 자리만 더 만들고 이윤만 더 좇게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꼬집었고, A조합장은 “지역농협처럼 신용사업 수익이 경제사업을 뒷받침해줘야 하는데 지주회사 분리로 신용사업 수익을 경제사업으로 못 넘기다보니 경제사업이 수익창출에 몰두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진단했다. 이날 포럼엔 14명의 조합장이 참석했으며 정명회는 향후 불참한 회원조합장들의 의견도 추가로 수렴해 논리를 구체화할 방침이다.



[비하인드 인터뷰]

포럼이 끝난 직후 몇몇 조합장들을 만나 포럼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일선 조합장으로서 느끼는 좀더 자세하고 생생한 이야기들을 청해봤다. 복수 조합장의 공동인터뷰라 어느 개인이나 정명회 전체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으며, 당사자들의 요청으로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지역농협들은 농협중앙회의 지주회사 체제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있나.
직원은 물론 조합장들도 지주회사 체제 문제를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주회사 설립 이후에도 똑같이 자재 갖다주고, 공판장으로 내보내고, 지역농협 사업이 하나도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신용사업은 몰라도 경제사업은 반드시 지역농협 중심으로 가야 하는데, 여전히 중앙회가 틀을 만들어 놓고 지역농협을 맞춰가려 하는 구조다. 경제지주가 조합이나 조합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으며 오히려 조합원이 경제지주를 도와주고 있는 꼴이다.

지주회사 체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농협은 조직도, 개혁도 상향식으로 해야 하는데 우리 농협중앙회는 태생도 하향식이었고 신경분리도 정부 정치논리에 따라 진행됐다. 이후 근 10년 동안 사회가 급변하면서 농촌이 고령화·공동화됐고 대농이 탄생함에 따라 농협은 도외시되고 있다. 그 와중에도 농협중앙회에 국내 최대 농업물량이 집중되고 있는데 그럼에도 농협의 각종 자재비가 민간보다 비싼 실정이다. 농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역할을 농협경제지주가 전혀 못 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느끼는 불합리한 점을 예로 든다면.
사실상 농협중앙회 시·군지부의 필요성이 없어진 시대인데 신경분리 이후 이들을 존치시킬 명분으로 ‘농정지원단’을 만들었다고 본다. 이들이 연합사업단 등의 형태로 경제사업을 하는데, 사업단별로 한두 품목을 대량으로 취급하며 판매 전문가 역할을 하면 모를까 단지 이 품목 저 품목 전표 치고 공판장에 올리는 지금 모습은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지부당 직원 수가 10~15명이니 인건비만도 얼마겠나. 중앙회가 잉여인력 정리가 난감해서 운영하는 걸로밖에 볼 수 없다. 특히 시·군지부 신용사업은 모든 지역농협과 충돌하고 있다. 시·군지부가 없다면 상당한 부분이 지역농협에 흡수돼 경영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들이다.

조합과 조합원들이 농협경제지주 사업을 살펴보는 데 있어 지금의 평가지표가 단순하고 미흡한 면이 있는 것 같다. 바라는 개선점이 있다면.
판매실적을 몇%라고 얘기하는데 판매엔 수탁이 있고 매취가 있다. 직접적으로 유통에 개입을 하지 않는 수탁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얼마나 직접 매취해서 판매했느냐가 중요하다. 또 단순히 공판장 출하보다 직거래·도농교류·로컬푸드 등 얼마나 직접적인 역할을 했느냐와 같은 가치 지표가 강화돼야 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