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협동조합의 기본 … 농협중앙회의 고삐를 잡아라

농협조합장 정명회·〈한국농정〉 공동기획 연속포럼 ②

  • 입력 2021.10.17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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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2012년, 농협중앙회는 기존에 병행하고 있던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분리하면서 그 수단으로 농협경제지주·농협금융지주라는 양대 지주회사 체제를 택했다. 하지만 지주회사 체제는 농협중앙회장의 ‘회원조합·조합원들에 대한 통제력’을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중앙회 사업에 대한 통제력’만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자연히 농협중앙회(지주회사)의 경제·신용사업은 조합·조합원들의 손에서 더욱 멀어져버렸고 우리 농협의 태생적 결함인 ‘하향식 지배구조’ 역시 조금도 개선될 수 없었다.

개혁적 성향의 조합장 모임 ‘농협조합장 정명회’와 <한국농정>은 농협이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연속포럼을 공동기획했다. 농협 지주회사 체제하의 ①사업구조 ②지배구조 ③조합역량을 평가·분석하는 조합장들의 포럼과 이를 총괄한 ④국회 종합토론을 9월부터 12월까지 4주 간격으로 차례차례 지면에 정리한다. 농협개혁의 의제를 다시 한 번 정리함과 함께, 20대 대선을 준비하는 각 후보자들에게도 요긴한 참고점이 되길 희망한다. 

 

지난 13일 전북 정읍 샘골농협에서 열린 정명회·〈한국농정〉 공동기획 2차 포럼에서 조합장들이 농협중앙회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지난 13일 전북 정읍 샘골농협에서 열린 정명회·〈한국농정〉 공동기획 2차 포럼에서 조합장들이 농협중앙회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지난 13일 전북 정읍 샘골농협에서 농협조합장 정명회(정명회)·<한국농정> 공동기획 연속포럼의 두 번째 포럼이 열렸다. 지난달 1차 포럼이 농협 지주회사 체제의 사업구조 문제를 들여다봤다면, 이번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 중앙회·지주회사의 지배구조를 진단하는 게 목적이었다.

농협중앙회는 농협경제지주·농협금융지주 두 개의 지주회사를 두고 그 지분을 100% 소유함으로써 지배력을 갖는다. 농민조합원들이 조합장을 선출하면 그 조합장들이 농협중앙회 총회·대의원회·이사회에 참여해 중앙회와 지주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다.

다만 부가의결권, 인사추천위원회 구성, 전문경영인 중시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이사·대의원 선임엔 조합장·조합원보다 중앙회·중앙회장의 힘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상향식이어야 할 협동조합의 지배구조가 다분히 하향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양대 지주회사가 ‘회사’라는 간판 아래 협동조합적 경영을 도외시하며 그들의 주인인 조합원들을 단지 사업의 대상으로 치부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지웅 정명회 사무국장은 농협 지배구조의 문제점으로 △농협의 비정상적 태생이 양산한 권위주의(중앙회장이 조합장을 통해 조합원 지배) △관료주의(중앙회 직원들이 수직적 조직구조를 통해 조합·조합원을 이용) △금융사업 중심주의(본연의 역할인 경제사업 등한시) △국가조합주의(국가정책의 하위파트너화로 조합원보다 조직 특권을 우선시) △중앙회장 선출제 이후 대두된 부패 문제 △지주회사 체제 이후 심화된 협동조합 정체성 약화 등을 꼽았다.

그 근본적 해결방안으로 시군단위 조합장 총회(농협시군지부·연합사업단 운영사항 상시 심의·의결), 시도단위 대의원회(농협중앙회·지주회사·자회사 운영사항 상시 심의·의결) 체제를 구축하고 이사회를 조합장 이사 중심으로 개편함으로써 상향식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조합장들은 지배구조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A조합장은 “이 사무국장의 대안도 매우 좋은 아이디어지만 당장 지금 있는 시스템부터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 도별 이사들이 후보 시절 약속했던 말들을 하나도 지키지 않고 힘 있는 골목대장 따라 몰려다니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들만 제 역할을 했다면 도 단위 의사가 중앙회에 잘 반영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쓴소리했다. B조합장은 “이들 중앙회 이사가 지주회사 이사에 그대로 포진해 있다. 경제지주 이사는 지역조합 중 경제사업을 잘 하는 곳의 조합장으로 별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첨언했다.

C조합장은 “대의원회를 가봐도 대의원회 내에서 안건을 올려 논의하는 구조가 못 되더라. 집행부(중앙회)가 상정한 안건에 찬반 투표만 하는데, 문제가 있어도 한두 명 문제제기만 하고 수긍할 뿐이다. 조합장들이 대의원회에서 발언하고 관철시킬 수 있도록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회장 선출에 대한 의견도 오갔다. D조합장은 “4년 단임의 중앙회장 임기론 책임경영을 할 수 없다. 조직을 추스르고 자기색깔을 내려면 연임 허용이 필요하다”며 적어도 중앙회 조직 내에선 회장 권한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투표에 부가의결권이 존재하면 중앙회장은 많은 표를 가진 조합을 위한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 이건 협동조합 운영이 아니며 빨리 정비해야 할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가장 뜨거웠던 화두는 감사위원회 구성이었다. 현재 농협중앙회 감사위원은 조합장-외부전문가 구성이 3대2에서 2대3으로 역전됐으며 조합감사위원은 올해 농협법 개정으로 수감당사자인 조합장이 아예 제외됐다. 특히 조합감사위원회는 중앙회가 회원농협을 지배·통제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조합장들의 불만이 여실히 터져나왔다.

E조합장은 “농협 감사의 최고 전문가는 현장을 잘 아는 조합장이다. 지금은 때때로 현장과 동떨어진 감사가 이뤄지기도 한다. 현장 발전을 담보하는 감사가 되려면 조합장 감사위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으며 B조합장도 “각 지역농협 인사위원회에도 직원을 의무배치하는데 그 이유는 위원회 내에 직원 입장을 대변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합감사위원에 적어도 조합장 1명 정도는 들어가야 한다”고 거들었다.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F조합장은 “조합감사위원에 조합장이 들어가니 수감조합이 로비를 하는 일도 있다. 똑같은 사안에 조합마다 징계수위가 다르게 내려진 사례도 있다. 이런 게 조합장 자리를 축소하는 결과를 낳은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고, A조합장도 “퇴직한 조합장을 외부전문가로 임명하는 현행 방식은 합리적이지만 현직 조합장을 포함시키는 건 고민해볼 일이다. 우리 스스로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A조합장은 중앙회 감사위원회에 대해서도 “조합장이면서 생산자조합의 이익에 반하는 행태를 보이는 위원이 있다”며 “선출 방식이 사실상 중앙회장의 임명인데, 대의원회에서 무작위로 선출하든지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명회 간부인 E조합장은 “농협 지배구조 개선의 1번 과제는 ‘참여’다. 실질적으로 협동조합이 농민을 위한 방향으로 가도록 의결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이에 대한 평가(감사)도 농민을 대변하는 분이 맡아야 하며,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점검해야 한다”고 포럼을 정리했다.



[비하인드 인터뷰]

포럼이 끝난 직후 몇몇 조합장들을 만나 포럼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일선 조합장으로서 느끼는 좀더 자세하고 생생한 이야기들을 청해봤다. 개별 조합장의 의견으로 정명회 전체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으며, 조합장들의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


농협의 하향식 지배구조 문제, 어떻게 체감하고 있나.
조합장들이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당선되더니 변했다”는 말이다. ‘조합원’이 아니라 ‘조합 경영’에 무게중심을 두기 시작하면 조합은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중앙회도 똑같다. 지금 농협중앙회 직원들은 ‘농협 마인드’가 거의 없다고 본다. 그게 제일 큰 문제다. 회원조합을 하부조직으로 생각하고 심지어 조합장들을 하대하는 일도 최근까지 흔했다.

조합 경영에 실질적으로 문제되는 부분이 있나.
정부의 농정을 견제하고 요구해야 할 농협중앙회가 오히려 지역농협을 이용해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지역농협은 그로 인해 더 힘들어지기도 한다. 가령 벼 손해보험을 예로 들면 보험사업을 추진하는 지역농협에 지급수수료·권유비 등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데, 정부가 줄이는 것 이상으로 줄어든다는 건 중앙회가 일정한 수익구조를 갖기 위해 지역농협에 부담을 떠넘기기 때문이다. 차라리 보험을 지자체 협력사업으로 해버리면 중앙회 수수료만큼 조합원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데, 중앙회가 수익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보험사업을 따고 있는 것이다.

중앙회장의 권력을 축소해야 한다,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는데 사안에 따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전체적인 흐름을 정하는 게 중앙회, 이를 실무적으로 풀어가는 게 지주회사들이다. 가뜩이나 몇 안되는 중앙회 이사들이 지주회사 이사까지 겸직하고 있는데, 이사 숫자를 늘리고 지주회사엔 중앙회와 별도로 전문성 있는 이사들이 들어가야 한다. 가령 경제지주 이사는 경제사업 비중이 50% 이상인 조합만 출마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이건 중앙회장 권력을 분산시키는 일이다.
반면 지주회사 이전엔 임원에 대한 중앙회장의 지시가 통했는데 지금은 저항이 매우 심해졌다. 조합도 그런데 중앙회는 오죽하겠나. 조합은 그나마 조합장을 지지하는 조합원들이 근거리에 있지만 중앙회장은 동떨어져 혼자 해나가야 한다. 중앙회 조직 내에서는 회장 권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중앙회장 선출 방식이 조합장 직선제로 바뀌었는데, 아직 미진한 점이 있다면.
250만 조합원이 농협중앙회장이 누군지, 공약이 뭔지도 모른다. TV토론 같은 걸 통해 후보의 정책이 제대로 공유돼야 하고, 결국엔 조합장 동시선거와 함께 중앙회장도 조합원이 직접 뽑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부가의결권 논란도 자연스레 해결된다.
조합장 직선제로 인해 금품선거 문화는 개선될 여지도 있지만 한편으론 더 큰 돈이 오갈 우려도 있다. 조합장이 1,100여명이니 500명은 포섭해야 하는데 인당 1,000만원씩만 잡아도 50억원이다. 만약 연임이 가능해지면 더할 것이다. 4년 임기론 50억원 뿌린 걸 다 못 빼먹지만 8년이면 빼먹을 수 있다.

농협중앙회 지배구조를 민주화하기 위해 중앙회·지역조합·조합원들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지역-중앙 소통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중앙회 직원들을 1년씩이라도 지역농협에 파견보내 현장에 밀착시켜야 한다. 한편에선 조합원들이 중앙회에 관심을 갖게 해줘야 한다. 지역농협들이 살아남고 있는 건 자기 지역 농협에 관심갖고 있는 조합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역농협뿐 아니라 중앙회도 우리 조합원들의 것이라는 걸 인식시켜야 하며 그 역할을 조합과 조합장들이 해줘야 한다. 그동안 중앙회가 조합원들의 뜻대로 운영되지 않았던 건 조합원들의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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