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 평년작? 올해도 혼란만 낳은 쌀 생산량 관측

통계청 예상생산량 확신 못한 농식품부, 자동시장격리 미뤄
농민들 "이상기후를 핑계 삼아 실질 대책 미룬다" 극렬 반발

  • 입력 2021.10.15 23:13
  • 수정 2021.10.20 16:5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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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깨씨무늬병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진 충북 제천시 봉양읍 공전3리 인근 들녘에서 지난달 15일 고창환(60)씨가 까맣게 물들어버린 벼 이삭을 살펴보고 있다. 고씨는 “이 상태로 수확해봐야 쭉정이만 있고 먼지만 날릴 뿐”이라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한승호 기자
깨씨무늬병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진 충북 제천시 봉양읍 공전3리 인근 들녘에서 지난달 15일 고창환(60)씨가 까맣게 물들어버린 벼 이삭을 살펴보고 있다. 고씨는 “이 상태로 수확해봐야 쭉정이만 있고 먼지만 날릴 뿐”이라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한승호 기자

통계청은 매년 9월 중순 수행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그해의 ‘쌀 예상생산량’을 발표한다. 지난 12일 발표된 올해의 쌀 예상생산량은 총 382만7,000톤으로, 이 전망에 따르면 ‘흉년’으로 불린 지난해의 생산량보다 무려 9.1%나 증가한다.

통계청의 예상대로라면 지난 2020년 신곡수요량이 360만톤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했을 때 최소 20만톤 이상의 쌀이 남게 된다. 언론들은 이 수치를 인용해 앞다퉈 쌀 초과생산이 예상된다며 ‘풍년설’을 내보내고, 농민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산지 수매가는 벌써부터 이에 영향을 받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반면 지난해 변동직불제가 폐지되면서 개정된 양곡관리법에 따라 초과생산량(생산량의 3%) 발생 시 시장격리에 나서야 하는 정부는 작황 변동 여부를 좀 더 주시해야 한다는 이유로 통계청의 자료가 최종 갱신되는 11월 이후로 결정을 미루고 있다. ‘풍년’, ‘과잉생산’이라면서 정작 수급안정대책은 발동되지 않는 모습에 현장에서는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올해 쌀농사, 정말로 풍년일까?

때늦은 가을장마 탓에 ‘신동진’ 품종을 중심으로 최악의 병충해를 입은 전북 지역에서는 이미 기록적인 쌀 생산량 감소가 확실시된 분위기다. 전라북도농업기술원은 이미 지난 9월 말 전북도 전체 벼 재배면적 11만450ha 중 43.1%에 해당하는 4만9,303ha에서 병충해가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생산량은 예년 대비 최대 8% 정도 감소할 수 있다고도 봤다. 이렇게 되면 대형 기상재해의 영향을 받은 지난해 생산량 56만6,000톤에도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아들 수도 있다. 통계청이 예상하는 올해 전북 지역 생산량은 약 59만9,000톤에 이른다.

논 병충해 추정면적 조사에 나선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에 따르면 전북 지역의 논 피해 면적은 5만5,683㏊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9월 말 전북도의 조사결과와 비교했을 때 10% 이상 늘어난 셈이다. 이는 작황이 부진했던 지난해의 같은 조사에서 집계된 발생 면적(5만7,491ha)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통계청의 예상생산량이 들어맞을 확률은 더더욱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생산량 감소가 오로지 전북 지역에 한정된 문제로 끝난다면 다행이지만, 전북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작황 부진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점 또한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한국농정>은 지난 2일 지난해 침수의 여파가 올해까지 이어진 충북 제천에서 봉양읍의 논 전체가 깨씨무늬병으로 인해 전멸한 사례를 보도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집계된 전국 병충해 피해 재배면적은 총 13만5,308㏊로 전남(3만3,226㏊), 충남(2만8,754㏊)이 전북의 뒤를 잇고 있다. 농식품부 측은 “전체 피해 면적을 기준으로 봤을 땐 평년대비 87% 수준으로 피해는 주로 전북 지역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여전히 작황 변동을 염두에 둔다며 통계청의 예상생산량 조사결과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수확기 이후 처음 집계된 산지 쌀값이 높은 인상 폭을 동반하며 비교적 고가에서 시작된 점 또한 ‘풍년’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2021년산 산지 쌀값은 지난 5일 20kg 기준 5만6,803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지난달 25일 대비 약 3,000원이나 오른 가격이다.

지난해 이후 신뢰 잃은 통계청 쌀 예상생산량 조사

통계청의 쌀 예상생산량 조사는 지난해에도 크게 빗나가 원성을 산 전례가 있다. 당시 통계청은 10월 발표한 쌀 예상생산량 조사결과에서 지난해 대비 3.0%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가 11월 생산량 조사에서는 6.4%라고 정정했다. 한 달 만에 생산감소량이 두 배 이상 증가한 데다, 그 격차가 12만톤을 넘어가는 수준으로 매우 커 당시 정부·농협·농가 모두 큰 혼란을 겪었다.

게다가 정정한 6.4%의 감소세조차 현장은 물론이고 정부 기관인 농식품부 역시 믿지 않았다. 현장 농민들은 실제로 수확을 하며 겪었던 감소세가 최소 20%, 많게는 30%에 달한다며 통계청의 결과를 기반으로 양곡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발했다. 당시 이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던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서삼석 의원은 그해 11월 예산소위원회에서 “농식품부 역시 내부적으로는 지난해 대비 올해 쌀 생산 감소량을 10%에서 20% 정도로 파악 중”이라며 “올해 쌀 생산이 지난해보다 20% 감소했다고 가정하면 약 75만톤이 줄어든 셈이니 대비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농식품부도 시장에 부족한 쌀을 공급하기 위해 37만톤에 이르는 정부 양곡 방출계획을 세워 실행했다.

큰 물의를 빚었음에도 통계청의 쌀 생산량 조사방식은 올해도 전혀 변화가 없었다. 통계청은 전국 6,300여개 표본구역에서 실측을 통해 얻은 낟알 수 표본을 바탕으로 지역별로 중회귀분석해 생산량을 예측해 왔다. 올해 조사가 이뤄진 시기는 지난달 13일부터 23일 사이로, 병충해가 가장 심한 전북 지역에서 피해 사례가 보고되기 시작한 시점(8월 중순)보다 한참이 늦었지만 이번 피해는 반영되지 못했다.

한 예로 조사 직전 시기였던 전주MBC 9월 12일자 보도에도 한 농민이 이미 쭉정이만 남은 신동진 벼 피해를 호소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결과 자료에는 ‘9월 15일 기준으로 실시 돼, 조사 이후 기상 여건에 따라 수치가 변동될 수 있다’는 설명이 붙었지만, 올해 쌀 생산량에 악영향을 미친 기상 변화는 출수기인 8월 중순 이후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작황의 급격한 변화를 제대로 감지해내지 못하는 기존의 조사방식으론 엉뚱한 결과를 생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작년에 이어 다시금 확실해진 셈이다.

예상생산량 못 믿은 양곡안정위, 자동시장격리 등 핵심조치 ‘연기’

지난 8일 차관 주재로 양곡수급안정위원회를 연 농식품부는 통계청의 예상생산량을 토대로 “예상수요량 대비 초과 생산이 예상된다”면서도 “일부 지역에서 벼 도열병 등 병충해 피해가 평년보다 증가했고, 기상 여건에 따라 작황이 변동될 가능성이 있어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라며 사실상 통계청의 예상생산량 활용을 포기한 수급안정대책을 내놓았다.

지난해 변동직불제 폐지와 더불어 개정된 양곡관리법에 따라 정부는 수급안정제도 상 요건에 해당할 경우 초과 생산량을 대상으로 시장격리에 나서야 한다. 격리 요건은 수요 초과 생산량이 생산량의 3% 이상이거나, 단경기(7∼9월) 또는 수확기(10∼12월) 가격이 평년 또는 전년 대비 5% 이상 하락한 경우를 말한다. 농식품부는 이를 포함한 각종 조치에 있어 오는 11월 15일 발표되는 통계청의 최종생산량 조사결과를 기다리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쌀 생산량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통계청 발 각종 언론 보도를 통해 평년작 이상의 수확량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산지 시장에선 민간RPC를 중심으로 수확기 벼값을 떨어뜨리려는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다.

양곡수급안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전국농민회총연맹·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전국들녁경영체중앙연합회·전국쌀생산자협회 5개 단체는 지난 14일 성명을 내고 농식품부가 병충해와 이상기후를 핑계 삼아 실질적인 대책 발표를 미뤘다며 극렬히 반발했다. 이들은 “이미 농촌지역에서는 양곡 도매업자와 일부 RPC가 상황을 이용해 농업인의 불안감을 자극해 벼 수매가를 하락시키고 있다”라며 “농식품부의 시장자동격리 약속은 거짓이라며 울분에 찬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라고 날을 세웠다.

이들 단체는 지난 8일 양곡수급안정위원회가 내놓은 대책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히며 자동시장격리 시행을 조속히 결정하고 이후의 시장 상황 변화와 실제 수확량에 따라 생산자와 협의를 지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11월 15일 생산량 발표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하는데 수확기 가격이 매우 중요한 농민들에게 이건 조금 늦는 정도가 아니다”라며 “농가소득을 먼저 생각한다면 선제적으로 격리 조치에 나선 후 나중에 다시 푸는 게 맞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농협도 그렇고, 농식품부도 그렇고 말로만 나락이 너무 많이 나온다며 걱정하고 속으론 수확기 쌀 가격을 떨어뜨리려고 작정한 것 같다. 또 물가만 걱정하는 게 아니겠나”라고 비판했다.

한편 농식품부는 병충해·흑수 등에 의한 피해 벼에 대해 농가 희망물량을 매입하고 재해보험 가입 피해 농가는 11월부터 보험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전북 농민들이 시급한 사항으로 요구하고 있는 농업재해 인정은 이번 달부터 실시하고 있는 정밀조사 결과에 따라 ‘농어업재해대책법’ 상 요건을 충족했을 때 조치하겠다는 계획이어서 이 또한 많은 반발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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