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농민들, ‘가짜농민 척결’ 들불 지른다

  • 입력 2021.07.25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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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수풀이 무성하고 컨테이너가 놓여 있고 인근 카센터의 고장난 차량이 볼썽사납게 방치돼 있지만 분명 이곳은 지적도 상 농지다. 잘게 쪼개 땅 투기가 의심되는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의 농지를 지난 16일 한 농민이 둘러보고 있다.한승호 기자
수풀이 무성하고 컨테이너가 놓여 있고 인근 카센터의 고장난 차량이 볼썽사납게 방치돼 있지만 분명 이곳은 지적도 상 농지다. 잘게 쪼개 땅 투기가 의심되는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의 농지를 지난 16일 한 농민이 둘러보고 있다.한승호 기자

 

제주농민들은 2010년대 들어 개발 광풍과 함께 등장한 투기세력 탓에 온갖 피해를 겪어왔다. 우선 지속가능한 농사에 대한 희망을 품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다. 농지의 가격은 생산수단의 가치를 훨씬 넘겨 매겨진 지 오래인 데 반해 농업소득은 정체를 넘어 침체의 길을 걷고 있으니, 중소농들은 이제 단 한 마지기·단 한 평의 온전한 자가농지조차 가질 수 없는 신세가 됐다.

제주 동남부 당근·월동무 주산지 성산읍에서는 최근 발생한 투기 열풍 때문에 이제 평당 100만원을 내줘도 농지를 갖기가 어렵게 됐다. 10년 전 1,000원도 안 됐던 평당 임차료 또한 3,000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농사짓는 사람이라면 응당 받아야 할 공익직불금도 임차농지에서는 받을 기대를 접어야 한다. ‘8년 자경농지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감면한다’는 소득세법 조항 탓에 지역의 지주들이 임차농에게 임차계약서 써주길 꺼려한다는 건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실이다.

특히 제주에선 땅 주인이 통작거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즉 소득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외지인이라 하더라도 별다른 기대를 걸 수 없다. 이 경우 애초 투기 목적으로 접근한 탓에 땅을 수없이 잘게 쪼개는 경우가 많아, 땅 주인이 여러 명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정상적인 임차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폐해는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일으키는 ‘경작권의 침해’다. 우리 법은 농지를 임차한 농민에게 최소 3년의 경작 기간을 보장하고 있지만 수시로 땅 주인이 바뀌는 데다 계약서도 쓸 수 없는 세상에서 이 조항은 투명 글씨로 쓰인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 문제는 지난 2015년 이후 제2공항 건설사업이 절차를 밟아나가는 동안 더욱 가속화됐다. 경작권 상실 사례가 이어지자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은 지난 5월 ‘농지대책특별위원회’를 만들고, 농민회가 가짜농민을 찾을 테니 동참해달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제주 전역에 내걸었다. 농지관리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대신해 직접 가짜농민을 판별하겠다는 결단과 용기에 많은 사람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자신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고자 가짜농민이 판치는 실태를 처음으로 알린 ‘직불금 전도사’ 조종대씨 이후 그 어떤 이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고발에 나서지 못했다. 국가의 무심 속에 그가 당한 보복을 보고 ‘다시는 농사지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자리한 까닭이다. 조씨 사례 이후 제주농민들이 나선 오늘날까지 15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농지를 지켜낼 농정은 부재중이다. 이제 ‘이러나저러나’ 농사지을 수 없는 전국 농촌 곳곳에 제주가 지른 들불이 번져나갈 터다. 

 

쪼개기를 통한 투기가 의심되는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의 한 농지. 경작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승호 기자
쪼개기를 통한 투기가 의심되는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의 한 농지. 경작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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