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지주는 ‘갑’ … 직불금·보험금·자연재해보상금까지 챙겨도 말 못 해

문재인정부 농정 4년 - 농지문제

  • 입력 2021.07.04 18:00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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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임차농은 땅주인의 요구대로 직불금도 양보하고, 계약서도 없이 1년 혹은 2~3년 단기로 시한부 농사를 짓고 있다. 사진은 전북 김제 들녘.   한승호 기자
임차농은 땅주인의 요구대로 직불금도 양보하고, 계약서도 없이 1년 혹은 2~3년 단기로 시한부 농사를 짓고 있다. 사진은 전북 김제 들녘.   한승호 기자

 

전북 김제에서 40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 A씨(61)와 귀농 8년차 농민 B씨(45)는 농사짓는 면적 중 일부만 직불금을 받는다. 땅주인이 ‘자경’하는 것처럼 서류를 만들어 직불금을 수령하기 때문이다.

2005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직불금 부당수령 사건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성행 중이다. 문재인정부 농정의 유일한 변화 ‘공익직불제’도 이론적으론 직불금 부당수령을 근절한다고 했으나, 농촌 곳곳은 임차농에게 더 불리해졌다.

“신고하려고 마음먹으면 지금도 우리 동네 10명 이름은 거뜬히 말할 수 있죠.”

A씨와 B씨는 직불금 부당수령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이구동성 말했다.

A씨는 김제시 ○○리에서 3만평 논농사를 짓는다. ‘내 땅’과 정식 임대차계약서를 쓰고 농사를 짓는 면적은 2만4,000평이다. “주인에 따라 직불금을 받는 형태도 다양한데, 계약서 없이 농사짓는 6,000평 중 5,000평은 주인이 직불금을 받아서 되돌려 주고 있고, 1,000평은 주인이 다 가져간다.”

계약서가 없는 논 6,000평은 서류상 땅주인들이 자경하는 것으로 돼 있다. 8년을 직접 농사를 지으면 농지를 팔 때 시세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가 전혀 붙지 않기 때문에 ‘자경 조건’을 맞춰놓기 위해서다. 농지는 언젠가 매도할 자산으로 여기기 때문에 조건을 미리 충족시켜 두는 것이다.

A씨는 “땅주인이 얘기하면 다 들어줘야 한다. 농민들끼리 농지 확보 경쟁을 하는 마당에 어떻게든 농사를 이어가려면 방법이 없다”면서도 “근데 가만히 생각하면 억울하다. 3만평 농사가 다 내가 짓는 것으로 서류가 돼 있으면 농약·비료 등을 지원받는데, 2만4,000평만 해당되니 6,000평에 들어가는 농자재비는 지원 한 푼 받지 못한다”고 답답해했다.

이렇게 10년을 농사지어 왔다는 A씨는 “최근엔 옆집 사는 땅주인이 벼 농작물재해보험을 가입한다고 하더라. 기가 막혔지만, 속으로 삼켰다. 농사는 내가 지었는데 이 논에서 자연재해가 나면 피해는 내가 입고, 보상금은 땅주인이 받게 된다. 1필지에 보험금 1만원 정도니, 땅주인들도 소액으로 혹시 모를 보상금을 기대하고 있다”고 실태를 전했다.

귀농 8년차 40대 농민 B씨는 스스로를 ‘낀세대’라고 표현했다. 마을에서 오래 농사짓던 분들과 ‘2030 청년창업농’ 사이에 끼다보니 농지를 얻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까지 밭 1만평, 논 1만1,200여평 농사를 지었는데 올해 밭을 2만평, 논은 1만3,200여평으로 늘렸다. 학비며 생활비 부담이 점점 커져 상대적으로 가격이 안정돼 있는 논농사를 더 늘리고 싶었지만, 논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B씨 역시 전체 경작지 중에 논 4,200여평은 직불금을 못 받는다. 더 기막힌 건 밭이다. 2만평 중에 2,000평만 직불금을 받고 있다.

법과 제도가 바뀐다 해도 직불금 부당수령은 여전히 건재하다. 최근 농지투기 사건과 농지법 개정안으로 뉴스가 떠들썩해지자, 농사를 잘 지어오던 농지에 어느 날 나무가 심겼다. 보나마나 외지인 소유 땅이다. 농지구입을 문의하는 전화도 심심치 않게 오고 있다.

B씨는 “시세차익을 노리고 농지를 구입하는 비농업인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선 태양광업자들까지 농지 구입 전쟁에 뛰어들었다. 농어촌공사 농지은행 농지매입 사업도 예산은 있는데 구입할 땅이 많지 않으니 결국 거래시세를 올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 사이 임차농들은 계약서도 없는 1년짜리, 2~3년짜리 농지에서 시한부 농사를 짓고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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