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팜 고민할 시간에 농민수당부터

기후위기 대응농정, 관건은 ‘농업 지속가능성’ 확보

  • 입력 2021.05.02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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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전환을 하려면 농민이 최소한 지속가능하게 농사짓고 살 여건은 보장돼야 하지 않나. 그러지 않고 전환하라고만 하면 농민은 굶어죽는다.”

지난 3월 28일 경북 상주시 외서면 언니네텃밭 봉강공동체에서 열린 대산농촌재단 농업실용연구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지역 농민공동체 중심의 온실가스 감축농업 실험 및 조사 연구’ 관련 초벌회의에 참석한 한 상주 친환경농민이 한 말이다. 이는 이날 참석한 농민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달리 말하면, 한국판 뉴딜로 대변되는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농정이 농민 지속가능성을 보장하지 않고, 전환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민에게 일방적 책임만 강요한다면 농민은 굶어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농식품부, 자본 위한 스마트팜 꿈꾸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 농식품부)가 그린뉴딜과 연계지어 진행하는 사업은 △스마트팜 확산 및 빅데이터 기반 구축 △그린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발굴·육성기반 마련 △농식품 산업과 농촌의 디지털 기반 확충 등이다.

그린뉴딜의 친자본적 성격은 농업 분야, 특히 스마트팜 관련 사업에서도 두드러진다. 지난해 12월 10일, 농식품부는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와 함께 산업·금융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팜 분야 뉴딜 투자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날 팜한농을 비롯한 4개 농·축산업체는 각자가 보유한 스마트팜 관련 기술과 사업계획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인공지능 기반 축산관리, 복합환경제어체계, 수직형 농장, 빅데이터 기반 서비스 등이었다. DSC인베스트먼트, BNK벤처투자 등의 투자회사는 모듈형 농장, 아쿠아포닉(물고기 양식과 수경재배를 합친 농법) 등을 대표적 투자사례로 소개했다.

위에 거론된 기술들은 대부분 설비 구축비용이 많이 들고, 노동력 절감을 목표로 하는 기술들이다. 어느 정도 자본이 확보되고 규모화된 농가가 아닌 이상 설비 구축이 힘드니 상용화가 어렵다.

수직형 농장(식물공장도 포함)이나 아쿠아포닉 등 수경재배 방식 기술은 땅을 기반으로 하는 유기농업 정신에도 안 맞다 보니, 이게 널리 확대될 시 친환경농민들의 판로에 위협을 가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강원도 춘천에서 토종벼 농사를 짓는 박중구 강원도시농업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스마트팜 중심 농업은 전형적인 ‘자본 투입성 농사’다. 그런 만큼 돈 있는 농민은 시설 구축으로 더 돈을 벌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중소농은 오히려 배제되고 농업노동자로 전락하는 ‘농민층 분화’의 심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와 같은 스마트팜 분야를 뉴딜정책의 유망 분야로 보면서, 향후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는 2021~2025년에 걸쳐 정부·정책금융기관 출자를 통해 7조원 규모의 모(母)펀드 및 20조원 규모의 자(子)펀드를 조성하고, 스마트팜 연구·개발에 3,867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자 한다.

‘스마트팜’이라는 자본 중심 농정에 지배되는 농관련 기관들의 상황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지난해 한 청년 귀농인 대상 교육장에서 귀농 준비 중인 청년과 한 농관련 기관 직원이 대화를 나눴다. 해당 청년이 귀농하려는 곳은 스마트팜 혁신밸리가 들어설 지자체였다. 귀농해서 토종작물 농사를 짓겠다는 청년에게 농관련 기관 직원은 “스마트팜 혁신밸리로 오라. 청년농 대상 지원도 이뤄질 예정”이라고 홍보했다.

이근행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소장은 “여전히 우리나라 농업정책은 규모화, 자본 집적, 에너지 집적, 생산성 향상 등의 구시대적 목표를 지상목표로 삼고 있다”며 “진정 기후위기 대응농정을 고민한다면 ‘자원순환’과 ‘땅의 보전’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농업정책의 중심축을 옮겨야 하는데, 그저 스마트팜을, 식물공장을 미래농업의 대안으로 이야기하는 상황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진정 농민 위한 기후위기 대응책은?

경북 상주시 외서면에서 친환경농사를 짓고 있는 김상환씨가 지난달 26일 고추 모종을 심으려고 준비 중인 밭에 유박 비료를 뿌리고 있다. 한승호 기자
경북 상주시 외서면에서 친환경농사를 짓고 있는 김상환씨가 지난달 26일 고추 모종을 심으려고 준비 중인 밭에 유박 비료를 뿌리고 있다. 한승호 기자

10년간의 친환경농사 과정에서 근골격계 질환을 앓게 된 경북 상주 농민 김상환씨는 기자에게 기사 하나를 보여줬다. 소위 ‘웨어러블 로봇(입을 수 있는 로봇)’이라 불리는 기계였다.

“밭농사 지을 때 허리와 팔을 많이 쓰지 않나. 이 기계를 쓰면 허리와 팔을 숙일 시 더 편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더라. 스마트팜을 그토록 강조할 거면 이런 기술부터 보급했으면 좋겠다. 지금 정부와 기업들이 강조하는 스마트팜은 누구를 위한 스마트팜인지 모르겠다.”

김씨는 비록 5,500평이었던 농사 규모를 올해 1,290평으로 줄이려 하나, 휴경지에는 가을에 녹비작물을 키워 지력을 계속해서 높이고자 한다.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기후위기가 심화돼도, ‘땅’을 기반으로 하는 농사는 포기할 수 없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김씨를 비롯한 친환경농민들이 계속 ‘땅’에서 농사지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기후위기 대응농정의 1차 과제일 테다. 여기서 ‘친환경농민’이란 꼭 친환경 인증 받은 농민만을 일컫는 건 아니다. 점차 농약·화학비료 사용량을 감축하고자 노력하는 농민도 친환경농민이며, 어떤 식으로 농사짓든 조금이라도 더 생태친화적 방식을 추구하려는 신념이 있는 농민은 누구나 친환경농민이다.

이근행 소장은 “이와 같은 신념을 가진 농민들이 계속 그 땅에서 농사지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며 “그런 면에서 농업분야의 진짜 기후위기 대응방책은 경자유전 법칙에 따른 농지문제 해결, 땅에서 농사짓는 농민에 대한 보상 강화 등이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비록 ‘직불금’이나 ‘농민수당’, ‘농민기본소득’ 등 표현은 달랐지만, ‘농민의 생계 지속가능성 강화정책’은 이 소장뿐 아니라 이번에 만난 취재원들 모두가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농작물 재해보험 강화를 비롯한 안전망 구축도 시급하다. 김상환씨는 “자질구레한 보조금 사업은 싹 다 정리하고 그냥 직불금을 대폭 강화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중구 이사장도 “먹고 사는 게 보장되지 않는데 어떻게 유기농업이든, 재생농업이든 실천할 수 있겠나. 농민기본소득 또는 농민수당 등의 정책이 중요한 시점”이라며 “농민은 환경을 보전하고 먹거리를 책임지는 준(準)공무원이란 관점에서의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도시도 기후위기와 관련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도시농업 확산이다. 도시농업은 농촌농업과 달리 생산량 증대 목적의 농업은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 도시농업의 역할에 대해 박 이사장은 △도시 내 생태친화적 공간 확산 △도시민이 농업을 이해할 수 있는 장 마련 △직접 먹거리 재배 및 필요한 도구 제작을 함으로써 도시민의 자립능력 배양 △농촌 전통문화 및 공동체문화 보전 등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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