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다 삼무(三多 三無)’ 그린뉴딜, 정체가 뭐냐?

  • 입력 2021.05.02 18:00
  • 수정 2021.05.02 18:19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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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문재인정부는 주요 정책구호로 ‘한국판 뉴딜’, 그리고 그중 기후위기 대응계획으로 ‘그린뉴딜’을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녹색대변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25일 열린 기후적응 정상회의에서도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디지털 혁신과 결합한 그린뉴딜을 추진하는 한편, 그 경험과 성과를 세계 각국과 공유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대통령부터 강조하고 있으니 새삼 그린뉴딜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그린뉴딜은 어떤 내용을 담았는가? 정말 ‘녹색대변혁’이라 불릴만한가? 아니면 과거 이명박정부의 ‘녹색성장’이나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 같은 말잔치인가? 한국판 뉴딜이 가진 문제점을 톺아본다.

그린뉴딜의 친자본 성격

‘지구의 날’이자 기후정상회의가 열렸던 지난달 22일,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더 이상 공허한 말잔치는 그만하고 2030년 온실가스 절반감축, 해외 석탄투자 철회, 기후정의에 입각한 정책 수립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제공
‘지구의 날’이자 기후정상회의가 열렸던 지난달 22일,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더 이상 공허한 말잔치는 그만하고 2030년 온실가스 절반감축, 해외 석탄투자 철회, 기후정의에 입각한 정책 수립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제공

민중의 입장에서 바라본 한국판 뉴딜은 어떤 성격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판 뉴딜은 ‘삼다(三多)계획’이며 ‘삼무(三無)계획’이다.

삼다는 뭘까? 첫째, 영어가 많다. 한글로 표현해도 될 것도 굳이 영어로 표현했다. 그린뉴딜(따지고보면 이것부터 영어다)의 ‘그린 모빌리티’나 ‘그린 리모델링’, ‘그린 스마트스쿨’은 ‘녹색 교통수단’, ‘녹색 재건축’, ‘녹색학교’로 쓰면 안 됐을까.

‘영리한’이라 직역하기도 애매한 ‘스마트’란 단어도 많다. 스마트 그린도시·스마트 상수도·스마트 전력망·스마트그린 산업단지 등등 ‘스마트’와 ‘그린’이란 단어가 도배되다시피 했다. 뉴딜이라는 개념만 미국에서 급히 수입하고, 이를 우리나라의 관점에서 적용·실천하기 위한 고민이 없었던 결과가 이처럼 영어투성이 계획으로 드러난 걸로 보인다.

둘째, 온갖 계획과 사업도 많다. 한국판 뉴딜과 연동된 기후위기 관련 계획으로 ‘탄소중립 2050’, ‘재생에너지 3020’ 등의 계획을 정부 차원에서 추진 중이다. 이번 달 30~31일엔 문재인정부가 야심차게 준비 중이라는 ‘2021 녹색성장 및 지속가능 발전 목표를 위한 파트너십(Partnership for Green Growth & 2030 Agenda) 정상회의’가 계획돼 있다. 이 사업들을 추진하면서 정부는 각 부처에 ‘탄소감축 할당량’을 배정했다.

셋째, 자본 즉 대기업을 위한 계획이 많다. 아니, 거의 모든 계획이 자본의 수익 증대를 위한 계획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게 ‘그린 모빌리티’ 계획이다. 지난 1월 14일, 정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진행한 제4차 한국판 뉴딜 당·정 추진본부 회의에선 올해 ‘그린 모빌리티’ 관련 예산으로 전기차 10만1,000대 보급에 1조100억원, 수소차 1만5,000대 보급에 3,655억원, 전기이륜차 2만대 보급에 180억원을 쓰기로 했다. 총 21조원의 올해 한국판 뉴딜 사업 예산 중 1조4,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해당 분야에 쓰기로 한 것이다. 이는 한국판 뉴딜 관련 단일분야 예산 중 가장 많은 예산이다.

전기차·수소차 분야는 현대자동차가 최근 주력으로 미는 분야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지난해 7월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화상으로 참여해 그린뉴딜 관련 사업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같은 해 10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그린뉴딜 세부계획 발표 차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방문해 정 회장을 만나기도 했다.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현대차를 ‘그린뉴딜의 기수’인 마냥 떠받들어준 형국이다.

각종 지원을 받는 곳은 현대차만이 아니다. SK의 경우, SK텔레콤이 지난해 7월 16일 한국수자원공사와 함께 그린뉴딜 사업의 일환인 ‘스마트 물관리체계(올해 투입예산 4,865억원)’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SK E&S는 지난달 16일 새만금개발청과 함께 전북 새만금지구에 대규모 수상 태양광 사업 개발 및 그린산업단지, 그린수소 생산거점 구축에 나서기로 협약했다. SK E&S는 수상 태양광 사업에만도 약 2조1,0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이처럼 직간접적으로 기업에 힘을 실어주는 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조치는 그린뉴딜에서 찾기 힘들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 상반기 중에 기업 사용 전력량의 100%를 2050년까지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충당하도록 만든다는 ‘RE100(재생에너지 100)’을 추진할 계획이나, RE100은 어디까지나 기업이 ‘자발적으로’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게 하는 캠페인에 가깝다.

‘자본’은 있되 ‘민중’은 없다

지난해 7월 15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후위기비상행동 주최 한국판 뉴딜 비판 기자회견. 이날 기자회견에선 우리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에 농업·먹거리 얘기가 사라지고 그저 기업 이익을 대변하는 내용으로 가득찬 상황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지난해 7월 15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후위기비상행동 주최 한국판 뉴딜 비판 기자회견. 이날 기자회견에선 우리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에 농업·먹거리 얘기가 사라지고 그저 기업 이익을 대변하는 내용으로 가득찬 상황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그렇다면 한국판 뉴딜에 없는 세 가지는 무엇일까? 그중 첫 번째에 대해 김현우 탈성장과대안연구소 소장(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후위기 시대엔 ‘정의로운 전환’, 즉 기후위기를 심화시켰던 과거의 잘못된 체제에서 기인한 양극화·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고, 농민을 비롯한 시민들이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전환이 핵심 기조여야 한다. 그럼에도 문재인정부는 소비 진작, 기업 활력 강화 등 자본의 관점에서만 그린뉴딜을 이야기하며, 그 과정에서 핵발전과 같이 기후위기 극복방안과 양립할 수 없는 정책도 여전히 고려 대상에 포함돼 있다. 말하자면 ‘정의로운 전환’이란 관점은 한국판 뉴딜에서 찾기 힘들다.”

둘째, 진정성도 없다. 말하자면 기만투성이다. 위에 거론한 RE100과 관련해,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지역문제해결플랫폼’은 지난달 28일 RE100 시민클럽 발족식을 개최했다. 이 발족식은 지역문제해결플랫폼과 일부 시민단체들이 함께 주최했다. 말하자면 그동안 기업이 주도했던 RE100을 시민 주도하에 해보자는 취지긴 하나, 해당 행사는 한국가스공사·한국부동산원·한국수자원공사가 후원했다. 그냥 보면 민(民)의 자발성에 따른 캠페인처럼 보이나, 결국 그 뒤엔 정부와 각종 공기업이 자리잡은 형국이다.

대통령부터도 기만을 일삼는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열린 기후정상회의에서 “한국은 2019~2020년 2년에 걸쳐 탄소배출량을 2018년 대비 10% 이상 감축한 바 있다”며 “신규 해외 석탄 화력발전소에 대한 공적 금융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정부의 노력이 없었다고만 볼 순 없으나, 2019~2020년의 탄소배출량 감축은 코로나19에 따른 관광·산업의 침체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정부는 감축 성과를 이야기하면서도 제주도 제2공항과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추진 중인 상황이다. 석탄 화력발전소 금융지원을 중단하겠다면서도 여전히 인도네시아 자바 화력발전소, 베트남 붕앙 화력발전소에 대한 공적 금융 회수조치도 진행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결정적으로 셋째, 민중이 없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이 참석한 지난해 7월 청와대에서의 한국판 뉴딜 발표대회에 농민이, 노동자가 앉을 자리는 없었다. 말하자면 한국판 뉴딜은 민중의 이익을 위해, 공공성 강화를 위해 설계돼야 하는데, 오직 자본의 이익만 대변하다 보니 민중이 설 자리가 사라진 셈이다.

김현우 소장은 “자유시장 국가인 미국에서도 1930년대 뉴딜정책을 통해 ‘공적영역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다”며 “두산그룹은 친환경 사업 한다고 하니까 3조원 이상의 자금을 알아서 쓰라고 지원하면서, 정작 기후위기의 최대 피해계층인 농민·노동자 등에 대한 대책은 찾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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