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마다 죽어가는 오리산업

  • 입력 2020.12.06 18:00
  • 기자명 홍기원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지난 1일 충북 진천군 이월면에 위치한 한 오리농장에서 홍경표씨가 텅 빈 계사를 둘러보고 있다. 올해 겨울철 오리 사육제한에 참여한 홍씨는 지난 10월 중순께 오리를 출하한 이후로 내년 초까지 오리를 농장에 들일 수 없다. 홍씨는 “휴지기제에 참여한 농가들의 수익은 예전의 반토막도 나오지 않는다”고 씁쓸해했다.한승호 기자
지난 1일 충북 진천군 이월면에 위치한 한 오리농장에서 홍경표씨가 텅 빈 계사를 둘러보고 있다. 올해 겨울철 오리 사육제한에 참여한 홍씨는 지난 10월 중순께 오리를 출하한 이후로 내년 초까지 오리를 농장에 들일 수 없다. 홍씨는 “휴지기제에 참여한 농가들의 수익은 예전의 반토막도 나오지 않는다”고 씁쓸해했다.한승호 기자

2017년부터 지금까지 겨울철 오리 사육제한(오리 휴지기)을 비롯한 각종 방역규제가 오리산업에 집중됐다. 문제는 규제 그 자체가 아니다. 산업구조와 현장에 대한 면밀한 이해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방역의 원래 목적인 오리산업 보호와는 동떨어진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충청북도(도지사 이시종)는 지난달 30일 가축방역심의회 서면심의를 통해 이달 1일부터 고병원성 AI 발생 시·도의 가금 및 가금산물 반입금지 조치를 결정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전북 정읍시의 오리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데 따른 방역조치다.

당장 오리산업 현장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충북 진천·음성지역은 오리산업이 상당부문 밀집된 지역이다. 충북도가 전북에서의 오리 초생추 및 오리종란 반입을 전면 금지하면서 충북 진천군의 한 부화장은 1주당 약 9만개의 종란을 폐기해야 할 위기에 몰렸다. 한 관계자는 “다른 시도들도 이같은 정책을 따라가면 각 시·도마다 부화장과 도축장을 운영해야 한다”면서 “종오리농장과 부화장, 사육농장, 도축장을 분산해야 방역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분산했더니 시·도 간 반입·반출을 전면 차단하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라고 하소연했다.

이같은 결정은 어떻게 내려진걸까? 충북도는 지난달 29일 25명의 가축방역심의위원들에게 개별적으로 반입금지 조치에 대한 찬반 여부를 다음날까지 알려달라고 통지했다. 이 중 21명이 찬성의 뜻을 전했고 반대는 2명에 그쳤다.

반입금지 조치가 오리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심의위원들 간 진지한 논의는 없었다. 압도적 찬성에 따른 규제 밀어붙이기만 남았다. 심의위원 중 한 명이었던 홍경표 한국오리협회 충북도지회장은 “충북지역의 부화장으로 종란이 오는 걸 막았다간 그에 따른 피해가 상당할 것이다. 숨통은 트이게 하고 규제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반대를 했지만 찬성이 훨씬 많았다”며 무력감을 보였다.

전라남도(도지사 김영록)는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전북지역에서 도축된 오리고기만 반입하겠다고 밝혔다. 전북지역엔 도축장 1곳에서만 오리 도축이 가능하다. 해당 도축장의 1일 최대 도축가능마리수는 2만마리. 그런데 전남 소재 계열업체들이 전북지역에서 사육하는 오리 마릿수는 116만수에 달한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라고 다를게 없다. 농식품부는 햇수로 4년째 겨울철 오리 사육제한을 추진하고 있다. 오리를 사육하지 않으면 고병원성 AI에 안 걸릴 것 아니냐는 논리다.

충북지역의 한 수의사는 “클러스터를 설정해 겨울철엔 클러스터별로 올인올아웃하는 방식도 제안한 적이 있다”면서 “밀집지역은 어려울 수 있지만 입추와 출하를 적절히 통제하면 교차 오염을 막을 수 있을텐데 받아들여지진 않았다”고 귀띔했다. 오리사육을 원천적으로 막는 게 근본대안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농식품부는 요지부동이다.

오리 휴지기에도 불구하고 고병원성 AI는 발생했다. 겨울마다 죽어가는 오리산업을 살릴 대안이 시급하다. 내년 겨울에도 이같은 탁상행정을 반복해선 안 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