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무성한 감귤 농지, 비정상적 17개 필지로 지적도에 나타나

  • 입력 2020.11.29 18:00
  • 수정 2020.11.29 20:04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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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25일 둘러본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과수원 필지가 방치된 채 통째로 비어있다. 지적도를 찾아보면 이 필지는 한 덩어리가 아닌 17조각으로 쪼개져 있다. 그 중 한 필지는 매우 얇고 긴 T자 형태로 각 구역을 이어주고 있어 주택단지 속 진입로의 역할을 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승호 기자
지난 24일 둘러본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과수원 필지가 방치된 채 통째로 비어있다. 지적도를 찾아보면 이 필지는 한 덩어리가 아닌 17조각으로 쪼개져 있다. 그 중 한 필지는 매우 얇고 긴 T자 형태로 각 구역을 이어주고 있어 주택단지 속 진입로의 역할을 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승호 기자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 2015년 ‘농지기능강화 방침’을 마련해 농지 관리의 강도를 높였다. 매년 실시되는 농지이용 실태조사를 통해 실경작이 이뤄지지 않는 등 문제가 확인된 농지는 농업경영 혹은 처분의 의무를 부과하고, 그 이행 여부를 주시하는 ‘관리 대상’에 포함된다. 제주도 서귀포시의 자료를 참고해, 시가 지난 2015년부터 관리대상으로 지정한 농지들 가운데 종결 처리되지 않은 60개 법인 소유 117필지의 농지들 일부를 직접 찾아가 그 실태를 확인해봤다.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의 한 감귤 밀집 재배지역에 약 2,870평(9,500㎡)에 이르는 드넓은 필지가 통으로 비어있다. 지목은 과수원이지만 이 시기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어야 할 감귤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재배지 경계에 쌓은 밭담(제주 지역에서 주로 필지를 구분하기 위한 목적으로 쌓은 낮은 돌담)만이 아직 남아 있어, 본래는 농가 한 집이 도맡아 감귤을 재배했던 농지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실제로 2016년 12월에 촬영된 농지 사진에서는 현 시점 경작 중인 인근 재배지와의 경계선 없이 필지 전체에 꽉 찬 감귤나무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재배지 바로 옆 농가의 한 농장주는 “옆집에서 농사짓던 땅인데 분할해서 한 필지만 빼고 전부 넘겼고 그 뒤로 이렇게 빈 지 1년이 넘었다”라며 “땅 주인은 제주도에서 목장카페를 하는 분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겉에서 보면 한 구역이지만, 실제로는 17개의 필지로 쪼개져 있다. 그런데 그 분할된 모습이 매우 특이하다. 각 필지는 400㎡에서 800㎡ 사이의 작은 면적으로 잘게 쪼개져 있고, 16개의 필지는 법인 한 곳이 일괄 구매했다가 다시 법인 한 곳과 개인 한 명으로 소유권이 나뉘었다. 두 소유주가 이전의 같은 법인에 소속됐었던 것으로 미뤄봤을 때 실질적인 소유 주체는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필지들 가운데 하나는 T자 모양으로 분할돼 있어 도저히 영농에 쓰이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이 희한한 모양의 필지는 분할된 다른 모든 필지와 접점을 둔 데다 끝은 도로와 연결돼 있고, 또한 두 소유주가 지분을 공유하는 유일한 필지다. 이를 종합해보면 이 과수원은 애초부터 영농을 목적으로 거래됐다고 보기 어렵다. 제주 지역에서 주로 농업법인이나 기획부동산에 의해 횡행하고 있는, 이익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구매한 농지를 분할해 재판매하는 이른 바 ‘쪼개기’의 전형적인 형태다. 이런 형태로 쪼개진 농지는 대정읍과 인근 안덕면에서 네 곳을 더 발견할 수 있었다.

제주 지역에서 법무사로 20년을 활동했던 김창남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이렇게 비정상적인 구조의 제주 농지는 기획부동산이 개입했다고 보면 된다. 내부에 도로로 생각되는 필지까지 있다면 100%라고 확신한다”라며 “농사지을 목적이 아닌 매도용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200평 이하로 잘게 쪼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월동엽채류 재배가 한창인 지역에서도 푸른 잎사귀를 품고 있는 재배지 사이의 유휴농지가 더욱 돋보인다. 서귀포시가 지난해 농업법인 소유로 확인한 대정읍 신도리 소재 300평 규모 작은 밭에는 이 지역에서 재배되는 배추나 콜라비 대신 잡초와 수풀이 발 디딜 틈 없이 무성했다. 한 눈에 봐도 이미 수년이 넘도록 관리가 되지 않은 듯 보였다. 주변에서는 이 땅에서 농사짓던 원주민이 사망한 뒤 소유권이 친인척으로 넘어가고, 이어 채무로 인해 땅이 압류되면서 외지인의 소유가 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 땅은 그 파란만장한 소유권 이전의 역사를 통해, 투기세력에 노출된 제주농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주변인의 증언과 법원 등기부등본 자료를 종합하면 지난 1987년 이 땅을 구매해 농사짓던 원 소유주는 채무에 시달리다 결국 압류를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경매를 통해 지난 2011년 6,000만원에 한 영농조합법인으로 넘어간 이 토지는 불과 한 달 만에 대구 거주 외지인에게 1억2,000만원에 팔렸다. 4년 뒤 1,000만원이 더 붙어 다시 대전 소재의 한 농업회사법인으로 넘어간 이 토지는 또 다시 압류 절차를 거쳤고, 현재 최종 권리자는 대전광역시 서구청이다. 필지 하나가 농업법인 제도를 악용한 투기 행위에 놀아난 끝에 결국 농사지을 수 없는 땅이 돼 버린 셈이다.

농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건너편 밭에서 적채 수확 작업을 하고 있던 신도1리 농민 김대진(74)씨도 “이 땅이 이렇게 빈 지 얼마나 됐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됐다. 최소 5년은 넘었을 것”이라며 “이렇게 관리되지 않는 밭이 주변에 있으면 잡초를 퍼뜨려 피해를 주는데 관공서에 알려도 지금까지 아무 조치가 없으니 너무 무심한 것이 아닌가싶다”라고 한탄했다. 김씨는 또 “부동산에서 외지인들에게 농지를 중개하고, 농민들에게는 그 땅 임대를 주선한 뒤 임대료 가운데서 관리비 명목으로 돈을 챙기는 행위가 만연해 있다”라며 “땅값이 점점 오르면서 이 지역 밭 평당 임대료는 2,000원을 넘긴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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