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판로 잃어 신음하는 경주마 생산농가들

  • 입력 2020.11.22 18:00
  • 수정 2020.11.24 10:31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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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코로나19로 경주마 생산기반도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

축산경마산업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2차례의 경주마 경매에선 144두가 상장돼 고작 2두만 낙찰됐다. 경주마 생산농가들은 안 그래도 사료비·관리비·훈련비 등을 감당하기 어렵던 상황에서, 사실상 경주마의 판로가 막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최근 경주마 생산농가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이들은 정부에 어떤 대책을 호소하고 있나? 국내의 대표적인 경주마 생산지역인 제주도의 말 생산농민들을 만났다.

“경주마, 자식 키우듯 애지중지해야”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의 더러브렛 경주마 생산농민 현종욱(46)씨는 부친 현대영씨에 이어 2대째 경주마 생산 노력을 기울여 왔다.

현씨 부자가 사육하는 더러브렛은 태어날 때부터 철저히 경주마로서 길러지는 품종이다. 사육과정 또한 경마장에 보내 뛰게 하는 걸 전제로 삼으니, 경마장 쪽으로의 판로가 끊겨도 당장 승마용이나 비육용으로 전환하는 게 어렵다. 승용마로 전환시키려면 소위 순치(順治), 즉 경주마의 야성을 잠재우는 과정이 필요하나, 그걸 민간 말 사육농가 차원에서 하는 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난이도도 높다.

더러브렛을 경주마로 키워내는 과정 또한 엄청난 비용과 정성을 필요로 한다. 경주마는 약간의 부상이나 상처만으로도 경주마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팔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종욱씨는 “경주마를 키우는 과정은 거의 자식을 키우는 과정에 비교될 정도로 어려운데, 말들끼리 놀다가 다치는 경우도 많다”며 “이럴 때 약간의 상처도 잘 관리해 주지 않으면 상처가 커져 경주마로 보낼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현씨 말마따나 경주마는 “자식 키우듯이 애지중지 키워야 한다.”

여기서 잠시 현종욱씨가 설명한 경주마 구입·사육·판매과정을 살펴보자. 매년 11월 현씨는 미국 켄터키 주 렉싱턴에서 열리는 경주마 경매시장에 직접 방문해 경주 퇴역마인 씨암말(경주마의 씨를 받기 위해 기르는 암말)을 구입한다. 에이전시를 통해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급적 말의 혈통·능력·체형 등을 직접 살피려는 목적에서 현씨가 직접 방문해 구입한다.

보통 4만~5만달러(한화 약 4,500만~5,500만원) 범위에서 씨암말 구매가 이뤄지며, 국내 이송 시 검역 과정을 거쳐 12월 중에 목장으로 들인다.

씨암말은 빠르면 1월에, 일반적으론 2월말에 새끼 말을 낳는다. 그러고서 적당한 시기가 되면 다시금 교배를 하러 간다. 현씨네 목장엔 씨수말이 없기에, 타 지역 민간농가 또는 한국마사회에서 보유 중인 씨수말과 자연교배를 시킨다. 또는 전북 장수군의 장수목장으로 씨암말을 데려가 교배시키고 다음날 내려오는 경우도 많다. 교배 뒤 약 340일의 임신기간을 거쳐 다시 새끼 말이 나온다.

평균적으로 교배 과정을 거쳐 1년에 8마리가 태어나는데, 이 과정에서 한 마리씩은 사고를 겪거나, 태어나자마자 폐렴, 장염 등으로 죽기도 한다.

현씨는 “대다수 더러브렛 농가에선 교배 과정에서 태어난 말의 70%가 생존하고 30%가 죽는다. 이것만으로도 부담이 큰데, 키우다가 말이 사고를 당하면 생산농가 입장에선 더 부담이 커진다”고 밝혔다.

더러브렛, 경마장 아니면 갈 곳 없다

 

지난 16일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현종욱씨의 농장에서 더러브렛 경주마가 워킹머신 위를 걷고 있다. 한승호 기자

 

무사히 태어난 말은 한 살 반, 즉 생후 17~18개월이 될 때까지 넓은 초지에서 길러진다. 그래야 골격이 발달하고 체형도 적절히 갖춰지기 때문이다. 경주마가 생후 17~18개월을 지나면 ‘후기육성’이라 하여 개방조련사들에게 보내져 훈련받기도 하는데, 개방조련사에게 맡기는 비용은 한 달에 150만~180만원이다. 보통 후기육성은 6개월이 걸리니, 1,0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이다.

개방조련사를 통한 후기육성 비용이 만만치 않기에, 현씨를 비롯한 대부분의 농가는 부담스러운 초기 시설비용에도 불구하고 자체적으로 워킹머신, 트레드밀(런닝머신), 모래마장 등을 마련해 말을 훈련시킨다. 현씨는 “농가 자체적으로라도 후기육성을 안하면 구매율이 떨어진다. 마주(馬主)들은 당장이라도 경마장에 데려갈 수 있는, 철저히 검증된 말을 원하기 때문”이라 말했다.

후기육성까지 들어가는 경주마 생산비는 한 마리당 약 2,500만원에 달하니, 매년 평균 11마리를 생산하는 현씨 농가는 약 2억7,500만원의 생산비가 드는 셈이다. 이 과정은 전적으로 민간농가의 책임으로, 한국마사회는 자신들이 일괄수매한 말을 제외하면 농가들의 후기육성에 대해 별도의 지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경마가 멈추면서, 현씨는 경주마의 판로를 잃어버린 상태다. 경주마는 잘 기르는 것도 중요하나, 경주마를 팔 시기도 중요하다. 마주에게 팔리는 경주마는 소위 ‘2세마’로, 태어난 뒤 2년 된 시점의 말들이다.

운동선수가 나이가 들수록 신체능력이 떨어지듯이, 더러브렛 경주마 또한 적정연령(보통 5세를 전후한 시기)을 넘으면 경마 능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마주들 입장에선 경주마가 3~4세만 돼도 능력을 유지시킬 시기가 짧기에, 대부분 2세마를 선호한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는 경주마 생산농가들에 치명타를 안겼다. 하루라도 빨리 팔려야 할 2세마가 갈 곳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씨는 운이 좋은 축으로, 경매로 40%의 말을 팔았고 나머지는 마주나 조교사들과의 직거래를 통해 팔았다. 직거래 단가는 낮게는 3,000만원, 많게는 8,000만원까지 나가는데, 경매가보단 적게 나간다.

현씨는 “현재 빚이 5억원을 넘는다. 말을 팔아 수익을 거둬도 생산의 지속을 위해 재투자를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다시 빚이 발생하고, 대출기한이 다다르면 연장하고, 이러면서 버텨왔다”며 “‘사람들 기억에 남는 좋은 말’을 키우고자 노력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마사회가 경마를 중단하니 말 농가로선 살 길이 없다. 그럼에도 마사회와 농식품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못 내놓고 있다”고 호소했다.

마사회, 제주마에 대한 대책도 없어

제주시 월평동에서 제주마를 키우고 있는 신성욱씨가 제주마를 쓰다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제주시 월평동에서 제주마를 키우고 있는 신성욱씨가 제주마를 쓰다듬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한편 제주시 월평동의 제주마 생산농민 신성욱씨는 “제주도의 경마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마사회는 제주마의 경주능력을 높이기 위해 제주마 도입 커트라인을 올려놨다. 이보다 미달된 말은 경마를 못 한다”며 “커트라인에 미달된 제주마에 대한 활용 방안도 없는 상황에서, 현재 제주마 판로의 약 90%가 경마 쪽으로 치우처져 있어, 우리 농가 또한 코로나19 뒤 경주마를 팔 곳이 없어졌다”고 토로했다.

수입종인 더러브렛과 달리, 제주마는 제주도산 품종이다. 더러브렛보단 생산비가 덜 들지만, 제주마 또한 한 마리당 약 500만~1,000만원의 생산비가 든다. 제주마는 더러브렛보다 번식력도 월등해, 한 마리의 제주마가 16마리의 새끼를 낳을 정도이다. 현재 제주도 내 제주마 생산농가는 약 600농가인데, 정작 경마 외엔 그 많은 제주마가 갈 곳이 없다는 게 신씨의 설명이다.

신씨는 “최근 제주마 농가들의 어려움은 마사회도 책임이 있다”며 “말로만 ‘선진경마’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경마를 통한 수익을 거두는 데만 집중하고 제주마들의 훈련을 위한 조련시설 하나 제대로 구축하지 않았다”며 “하다못해 이토록 많은 제주마의 도태를 위한 지원이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 본 기사는 달라진 사실이 확인돼 11월 24일자로 수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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