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농산물, 두고만 볼 것인가

수입물량 계근도 안하는 정부 … 통관 구멍 심각

  • 입력 2020.11.15 18:00
  • 수정 2020.11.16 15:04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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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수입농산물은 수확을 앞둔 농산물의 가격을 뒤흔드는 핵심 원인이다. 겨우내 농사지어 내년 6월경 수확을 기대하는 양파재배 농민들에게 수입양파의 존재는 가장 큰 불안요소다. 지난 9일 전북 익산시 여산면 두여리의 한 양파밭에서 농민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이 양파 모종을 심고 있다.한승호 기자
수입농산물은 수확을 앞둔 농산물의 가격을 뒤흔드는 핵심 원인이다. 겨우내 농사지어 내년 6월경 수확을 기대하는 양파재배 농민들에게 수입양파의 존재는 가장 큰 불안요소다. 지난 9일 전북 익산시 여산면 두여리의 한 양파밭에서 농민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이 양파 모종을 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0일 양파 생산자 대표들이 관세청을 방문했다. 범람하는 양파 수입과 통관당국의 무대책에 대항해 11월 11일 농업인의 날에 정부대전청사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거행할 계획이었으나, 경찰 측의 중재로 대화의 자리를 가진 것이다.

이날 면담엔 남종우 전국양파생산자협회장, 노은준 한국양파산업연합회장, 김석규 한국농산물냉장협회장 등 양파 생산·유통업계의 거목들이 모두 참석했지만 불청객 대접을 톡톡히 받았다. 관세청 직원들은 대면부터 대뜸 “당초 네 명이 온다 해놓고 열 명 가까이나 왔느냐”는 타박으로 시작해 “솔직히 지금 바쁘다. 직원들이 결재 받으려 기다리고 있다”며 “11시 반(한 시간)까진 끝내자”고 쏘아붙였다. 명백히 적대감이 서린 태도에 면담은 시작부터 파행의 위기를 맞았다.

간신히 진행된 면담에서 농민들은 수입업자들의 저가 신고, 중량 속임 등의 위법행위 의심 정황을 제시했다. 이는 관세 포탈행위일 뿐 아니라 수입농산물의 국내 판매가능가격을 낮춰 가뜩이나 가격경쟁력이 없는 국산농산물에 큰 타격을 주는 행위다. 하지만 농민들이 제시한 증거는 업계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정황증거로, 관세청 측은 ‘어느 항구 어느 업자’ 수준의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면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면담의 성과는 있었다. 수입 담보기준가격과 중량검사 부분에서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점을 각각 한 건씩 확인한 것이다.

먼저 담보기준가격의 경우, 수입량이 가장 많은 중국산에 대해서만 기준가격이 설정돼 있고 일본·미국 등 다른 나라에 대해선 아예 설정이 누락돼 있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산 양파의 수입 담보기준가격은 톤당 365달러인데, 한국농산물냉장협회 조사에 따르면 일본산 양파의 현지가격이 약 400달러다. 400달러의 일본산 양파를 365달러 수준으로 신고해 들어와도 정상 통관이 되는 것이다.

단순히 모든 국가에 동일한 기준가격이 적용되는 줄 알고 있었던 농민들은 기준가격 자체가 없다는 사실에 허탈해했고, “일본산 양파는 거의 수입되지 않는다”고 항변하던 관세청 직원들은 때마침 농민들이 사들고 온 일본산 양파를 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중량검사 문제는 더 심각하다. 통관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수입물량 중량검사 실적이 거의 없다시피 하며 사실상 수출국 선적 시 민간 선박회사의 계근 서류로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산물 수입량을 파악하는 과정에 공신력이 결여돼 있는 것이다.

이유는 통관 현장에서 늘상 호소하고 있는 ‘인력 부족’이다. 그러나 사안이 사안인 만큼 이해하고 넘어갈 순 없는 문제다. 농민들은 “관세청이 수입 중량검사를 ‘안 한다’는 게 말이 안되는 것 아니냐. 관세청이 이렇게 허술한 조직이냐”며 노기를 드러냈다.

농민들은 자리를 정리하며 향후 농산물 수입 관련 모든 기관이 참여하는 논의자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날 통관 문제 외에도 PLS 적용과 검역조건 등 다양한 화두가 등장했지만 이는 관세청의 업무범위를 벗어난 것들이었다. 농산물 수입 문제는 통관과 검역, 행정, 유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과정이 얽혀 있어 모든 담당기관을 망라한 포괄적인 논의가 있어야 그 대응을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전제조건은 농업과 식량주권의 중요성에 대한 의식 공유다. 우리 농업·농민·농촌을 보호하려는 공통된 의지가 없는 이상 논의의 진척을 떠나 논의 테이블 자체를 마련하기가 어려울 것이 자명하다. 이날 관세청이 면담 초반에 내비친 농민에 대한 ‘적대감’이 벼랑에 몰린 농업과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한 첫 번째 청산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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