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농산물, 농민은 애타는데 정부는 태평

농업 무너뜨리는 수입농산물
정부 대응 소극적인 가운데
농민단체들 팔 걷고 일어나
민관 협력 대응책 가능할까

  • 입력 2020.11.15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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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UR 협상이나 각국과의 FTA 체결 등 굵직한 수입개방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정부는 농업 피해대책을 논의하며 표면적으로나마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담당 공무원이 바뀌는 시점에 이르면, 책임감은 흐려지고 몇 안되는 정책에 대한 생색, 농민에 대한 책임 강조로 태도가 바뀌어왔다.

농산물 수급·가격 문제가 ‘정부가 초래한’ 수입에 기인하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건고추·당근 사례로 대표되듯 수입 방어벽이 뚫린 품목들은 자급률이 급격히 무너져 내렸고 지금도 여전히 붕괴 중이다. 밀·콩처럼 근대화 과정에서 자급을 포기한 품목은 감히 넘보지도 못한 채, 고만고만한 품목들로 쫓기듯 재배가 몰리면서 농산물 전 품목에 만성 폭락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수급불안 때마다 농민들의 ‘과잉생산’을 탓한다.

김형식 농식품부 원예산업과장은 지난달 13~14일 마늘·양파의무자조금 대의원대회에서 수입을 철저히 관리해 달라는 농민들의 요구에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룰이 있다. 바로 자유무역이다. 무턱대고 수입을 막을 순 없다. 쓰는 분들이 있으니 들여오는 건데 정부가 그걸 쓰지 말라고 할 순 없다”고 답했다. 수입개방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의식조차 희미해진 모습이다. 농식품부 밖으로 갈수록 인식은 더욱 싸늘해져서, 수입 통관을 담당하는 관세청이나 안전검사를 담당하는 식약처의 경우 농민들에게 아예 적의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4일 서울 송파구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앞에서 열린 ‘수입농산물 저지 및 검역강화 촉구 전국 생산자 결의대회’에 참석한 제주, 전남, 강원지역 생산자연합회 대표들이 가락시장 일부 유통인들의 수입농산물 취급을 규탄하며 중국산 양배추, 브로콜리, 당근을 폐기하는 상징의식을 벌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12월 4일 서울 송파구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앞에서 열린 ‘수입농산물 저지 및 검역강화 촉구 전국 생산자 결의대회’에 참석한 제주, 전남, 강원지역 생산자연합회 대표들이 가락시장 일부 유통인들의 수입농산물 취급을 규탄하며 중국산 양배추, 브로콜리, 당근을 폐기하는 상징의식을 벌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업분야 전문가들은 농산물 수입 문제가 단순히 사무적 관점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고 당부한다. 수입에 밀려 농민들이 농업 생산을 포기한다면, 국가는 식량을 스스로 조달할 힘을 잃어버리고 국민들은 먹거리의 양과 질을 보장받기 어렵다.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힘,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 직결되는 문제지만, 정부 조직 내에선 이같은 인식이 좀체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올해 농민들이 다시 한 번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판 투쟁을 넘어서 대안을 세우고 정부 인식을 선도하려 하는 것이 최근 수입저지 운동의 특징이다. 선두는 양파·마늘이다. 전국양파생산자협회·전국마늘생산자협회는 정부의 의무자조금 사업계획에 협조하면서 ‘철저한 수입 관리’를 그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스스로 수입 관리 의지를 불태우며 한편으로 농식품부의 손을 붙잡아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통관현장과 관세청 등을 방문하며 다방면으로 우군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제주 농민들도 지역 내에서 분투 중이다. 품목별 농민들이 연대해 읍면별로 우리김치살리기운동본부를 설치하고 음식점 국산김치 사용 캠페인, 나아가 국산김치 사용업체에 대한 행정지원까지 유도하려 하고 있다. 김치 재료품목은 물론 비재료품목까지 단결해 전국 선도사례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16일 제주농산물품목별연합회 창립을 통해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도매시장 안엔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가 있다. 저녁마다 경매 현장을 모니터링하는 한유련은 수입농산물에 대한 법적 방어장치가 없는 도매시장에서 말 그대로 육탄방어로 맞서고 있다. 지난달 말 제주 농민들과 연대해 가락시장 대규모 집회를 연 데 이어 최근엔 가락시장에서 수입양배추의 예봉을 꺾어내기도 했다. 수입 저지를 위한 농안법 개정 등 농식품부에 귀찮으리만치 꾸준한 건의를 개진하는 중이다.

기세 좋게 나서고 있는 농민들이지만 농민의 힘만으론 수입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다양한 정보 수집과 정확한 문제 진단, 효율적인 대응 구축을 위해선 정부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힘겹게 다시 일어난 농민들의 반(反) 수입 바람에 정부 각 주체들이 어떻게 호응할지가, 농업분야 오랜 병폐인 수입 문제를 해결할 분수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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