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위기 원흉은 수입농산물

  • 입력 2020.11.15 18:00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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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농촌 고령화, 기후변화, 농지면적 감소 등 농업 위기의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핵심엔 수입농산물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지난 6월 농협중앙회 미래경영연구소가 발간한 ‘FTA 이후 농축산물 수입동향’ 보고서엔 이러한 현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우리나라는 2004년 한-칠레 FTA 체결 이후 현재 미국·중국·아세안·EU·호주 등 56개국과 16건의 FTA가 발효돼 이행 중이다. 이 보고서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최초 FTA 발효 전 4년과 2016년부터 2019년까지 FTA 발효 이후 최근 4년의 농축산물 평균 수입물량 및 수입금액 변화 추이를 비교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FTA 발효 이전 4년 간 농축산물 수입물량과 수입금액은 2,460만톤, 74억달러다. FTA 발효 이후 최근 4년은 3,570만톤, 259억달러다. FTA 발효 이전 4년 대비 최근 4년 간 수입물량과 수입금액은 각각 45%, 251% 증가했다. 수입물량 비중은 농산물이 95~97%고, 축산물은 3~5%다. 수입금액 비중은 각각 72~83%, 17~28%다.

FTA 체결 이후 농축산물 수입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무역수지 적자도 심화됐다. FTA 발효 이전 4년 간 농축산물 무역수지 적자는 59억달러였는데 최근 4년은 196억달러로, 230% 증가했다. 물론 농축산물 수출도 늘었지만, 수출규모는 수입액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심각한 건 농산물 수입으로 인해 주요 품목의 재배 면적과 생산량이 전반적으로 줄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에 의하면 FTA 체결 이전 4년 대비 최근 4년 간 수입물량 증가율은 배추(김치)가 1,979%로 가장 높으며, 고추·시금치·호박·사과가 500% 이상 증가했다. 수입금액도 배추(김치)가 3,384%로 가장 많이 증가했고, 사과(주스), 시금치도 1,000% 이상 크게 증가했다.

배·고추·무의 경우 재배면적은 50% 이상 큰 폭으로 감소했고, 포도·배추·당근·콩·참깨·보리·마늘·시금치도 30% 이상 감소했다. 생산량도 고추·포도가 50% 이상 큰 폭으로 감소했고, 당근·참깨·무·보리·시금치·배·배추도 30% 감소했다.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증가한 품목도 있지만 극히 드물다.

수입농산물로 위기를 겪고 있는 대표적 작물이 고추다. 고추의 경우 최근 4년 간 수입물량과 수입금액은 23만1,000톤, 1억3,800만달러로 FTA 체결 이전 4년 대비 각각 993%, 608% 증가했다. 최근 4년 기준 중국산이 94.3%로 대부분이며 냉동고추 98%, 건고추 1%다. 일반고추는 270%의 관세를 부과하지만 냉동고추의 경우 27%의 관세만 부가해 고율관세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냉동고추 가공 수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고추는 FTA 이전 대비 최근 4년간 재배면적이 56% 감소했고, 생산량은 58% 감소했다.

농민들이 수입농산물로 인한 가격 하락과 이로 인한 작목 선택에 어려움을 겪자 지역별로 소득작목 육성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또한 해법이 되지 못했다. 아로니아의 몰락을 예로 들 수 있다. 지자체 추천에 따라 농가들이 아로니아 농사로 몰리며 2014년 무렵부터 생산량이 폭증했다. 초기엔 가격도 좋았다. 하지만 이내 아로니아 분말 수입이 늘어나며 가격 폭락이 이어졌다. 이 같은 상황은 도미노 현상처럼 다른 작목에서도 반복됐다.

농산물 수입의 대대적 폭증은 농가소득 감소와도 직결된다. 지난 5월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19년 농가소득은 4,118만원으로 전년대비 2.1% 감소했다. 농가소득의 핵심인 농업소득은 전년대비 20.6% 감소했다. 특히 농업소득은 1999년 1,057만원으로 1,000만원 대에 진입했지만, 20년이 넘도록 제 자리를 맴돌고 있다. 생산비 증가나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농업소득은 크게 감소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종합하면 결국 농업 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수입농산물 증가에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 지난달 <한국농정>이 주최한 ‘농산물 가격보장을 위한 근본 대책을 세우자’ 토론회에서 농민들은 수입농산물에 대한 철저한 수급 관리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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