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적 소외에도 저농약 방식 고수하는 농민들

  • 입력 2020.10.25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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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해 9월 2일 경북 영주시 부석면의 사과재배 농민 이재식씨가 사과의 잎을 솎아내고 있다. 한때 이씨 마을의 20농가 가까이 되던 저농약 사과농가 중 지금도 저농약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은 이씨 뿐이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9월 2일 경북 영주시 부석면의 사과재배 농민 이재식씨가 사과의 잎을 솎아내고 있다. 한때 이씨 마을의 20농가 가까이 되던 저농약 사과농가 중 지금도 저농약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은 이씨 뿐이다. 한승호 기자

충북 충주시 대소원면에서 과수농사를 짓는 이복순 씨(복숭아 재배)와 김진원·김기수 씨(이상 사과 재배)는 한때 시도한 무농약 농사 과정을 회상했다. 그들은 10여년 전부터 대소원면에서 저농약 과수농사를 짓다가, 2016년 저농약 인증제 폐지 뒤 무농약 방식을 시도했다.

“저농약 방식으로도 쉽진 않지만, 무농약 방식으론 매년 7월말만 되면 기승을 부리는 복숭아순나방 등의 병해충을 막아내는 게 불가능했다. 효과적인 방제기술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품’ 과일(품위기준에 맞는 과일)은 많이 안 나왔고, 나중엔 나무들이 삭아 열매가 안 열리는 지경까지 갔다(이복순 씨).”

결국 그들은 기존의 저농약 농사방식으로 돌아왔다. 저농약 인증제가 폐지된 2020년 현재 그들의 농사는 공식적으론 ‘관행농사’지만, 여전히 세 농민은 농사방식에 있어 △제초제 미사용 △농약·화학비료 사용 최소화 등의 원칙을 고수 중이다.

이는 경북 영주시 부석면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이재식 씨도 마찬가지다. 과거 저농약 인증을 받았던 이씨는 마을 내 사과농가들 중 유일하게 제초제를 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과농가들이 제초제를 치면 각 농장의 벌레들이 이씨 농장으로 한꺼번에 ‘피난'을 온다.

옛 저농약 인증농민들은 한목소리로 친환경 과수농업 정책 마련에 소홀한 정부를 비판했다. 이재식 씨는 “농촌진흥청에서 저농약 인증제 폐지 직전에야 사과 재배 관련 매뉴얼을 내놓았지만, 일부 유기농 사과재배 농가들의 재배방식 위주로 정리한 것이라 저농약 농가 입장에선 실효성이 없었다”며 “각 지역마다 풍토가 다른 만큼 특정 재배사례만 갖고 일반화할 게 아니라, 각 지역 상황에 맞는 재배기술 개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중앙정부부터가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니, 지역 농업기술센터가 관련 기술 개발에 나설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충주 김진원 씨는 정부의 GAP 인증 유도와 관련해 “GAP는 친환경인증제와 별도로 운영되는 ‘농사방식 관리’ 인증임에도, 정부는 저농약 인증제 폐지 뒤 농민들에게 GAP 인증 전환을 유도했을뿐더러, 소비자 대상으로도 GAP 인증에 대한 홍보를 강화했다”며 “그러다 보니 바이어들 대부분도 GAP 인증품 위주로 농산물을 찾는 형국”이라고 밝혔다.

김기수 씨는 “GAP는 인증마크마저 유기농·무농약 인증마크와 똑같이 생겨 소비자들의 혼란을 더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KBS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서 2018년 1월 19일 ‘가장 깐깐한 친환경농산물 인증마크는?’이란 주제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친환경인증마크인 무농약 마크보다 GAP 마크에 더 많은 시민들이 스티커를 붙인 바 있다.

정부 정책이 갈팡질팡하는 와중에, 옛 저농약 농가들은 정부의 친환경농업 육성정책에서 사실상 소외되고 있다. 한때 20농가에 달했던 영주 부석면의 저농약 사과농가는 이재식 씨 외엔 전부 관행농사 방식으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이재식 씨, 그리고 충주의 옛 저농약 인증농민들은 저농약 방식을 포기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지난 여름 우리 마을도 호우피해가 컸다. 제초제를 쳤던 많은 농지들은 토양의 약화로 인해 흙이 쓸려가는 등 큰 피해를 겪었다. 그러나 제초제를 안 치고 일일이 풀을 깎았기에 땅이 건강해졌기 때문인지, 우리 농지엔 큰 피해가 없었다(이복순 씨).”

“매년 한 달 반 가량은 농장에서 잡초들과 전쟁을 치른다. 매일매일 폭염을 견디며 풀을 깎아야 한다. 사실 제초제를 친다면 한나절이면 풀들을 제거할 수 있지만, 그래도 환경과 소비자 건강을 생각해서 제초제는 안 친다(이재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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