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저농약 과수농가 사실상 내팽개친 정부

  • 입력 2020.10.25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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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2016년, 친환경농산물 인증제의 하나였던 저농약 인증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0년 저농약 인증제 신규인증이 중단된 뒤 6년만이었다. 정부는 저농약 인증제 폐지 직전 “저농약 농가들의 무농약 인증단계로의 진입을 유도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그 호언장담은 실현되지 않았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원장 노수현, 농관원)의 지난해 친환경인증통계정보에 따르면, 친환경 인증농가 수는 저농약 인증제가 폐지된 2016년 총 6만1,946농가에서 지난해 5만8,055농가로 줄어 정체상태를 보였다. 특히 무농약 인증농가는 2016년 4만9,050농가에서 지난해 3만9,856농가로, 무농약 인증면적은 2016년 5만9,617ha에서 지난해 5만2,006ha로 대폭 감소했다.

2005년 저농약 인증제 폐지 결정

친환경농산물 저농약 인증제 폐지를 앞뒀던 2015년 4월 한 과수농민이 저농약농산물 인증스티커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당시 과수농가의 경우, 저농약을 포기하고 관행농업으로 돌아가는 비율이 증가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저농약 인증농가에 대한 정부의 무대책이 한몫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승호 기자
친환경농산물 저농약 인증제 폐지를 앞뒀던 2015년 4월 한 과수농민이 저농약농산물 인증스티커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당시 과수농가의 경우, 저농약을 포기하고 관행농업으로 돌아가는 비율이 증가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저농약 인증농가에 대한 정부의 무대책이 한몫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승호 기자

 

2005년 8월, 정부는 유통규제개혁을 표방하며 인증표시제도의 통폐합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저농약 인증제 폐지가 결정됐다.

당시 저농약 농가의 대부분이던 과수재배 농민들은 “과수분야는 저농약 단계에서 무농약, 유기농 인증단계로의 진입이 어려운 만큼, 저농약 인증제 폐지를 유예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당시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 농식품부)는 2010년 저농약 신규인증을 중단하는 대신, 기존 저농약 농가의 인증기간을 2015년까지 5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그 5년 동안 농식품부가 친환경 과수농업 육성 의지를 가졌다면, 최소한 둘 중 하나는 해야 했다. 저농약 인증제를 그대로 남기던가, 저농약 인증제를 폐지하는 대신 과수농가의 무농약 단계 진입을 위해 관련 기술개발 및 연구 인력과 예산이라도 아끼지 말아야 했다. 그렇다면 그 기간 동안 농식품부의 대응 방향은 어땠을까.

농식품부의 늑장 대응

2013년 12월, 농식품부 친환경농업과는 친환경 과수농가 육성 방안으로 △유기재배 매뉴얼 개발 확대 △친환경농업 직불제 지원 확대(무농약·유기농가 대상) △저농약 과수농가 GAP 인증전환 대책마련 △친환경농업 광역단지 조성(무농약·유기농가 대상) △유기농업 교육 강화 및 생산관리자 지정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육성 방안은 대부분 저농약 인증제 폐지 이후를 상정한 대책으로, 대부분의 대책이 무농약·유기농 인증농가 대상이었다. 많은 과수농가들이 저농약 인증이라는 사다리를 넘어오지 못한 상황에서, 무농약 이상 농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면 저농약 농가가 저절로 무농약 단계로 진입하리라는 정부의 판단은 오판이었다.

당시 농식품부 자체적으로도 저농약 과수농가에 대한 무농약·유기재배 기술지원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농촌진흥청 및 민간업체에서 미생물제재 등 생물학적 방제기술을 개발·보급 중이나 기대에 저조한 실정이며, 과수류 병해충관리를 위한 저항성 품종개발, 재배시험 등에 최소 10~20년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당시 농식품부 내부문서에도 기록됐다. 이 판단대로라면 정부는 2005년 처음 저농약 인증제 폐지 얘길 꺼낼 때부터 대책 마련에 나서야 했다.

저농약 인증제 폐지를 약 1년 남겨뒀던 2014년 11월 18일엔 국회에서 ‘친환경농산물 저농약 인증제 폐지,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양주필 당시 농식품부 친환경농업과장은 “유기재배 매뉴얼 개발과 유기재배 시범단지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유기·무농약 재배가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만큼 오랜 노하우를 지닌 농가를 중심으로 지역별 기술지원단을 운영할 계획”이라 밝혔다.

농식품부의 대응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5년의 유예기간 중 4년이 지났음에도 저농약 과수농가들을 위한 매뉴얼 하나, 이렇다 할 기술개발 하나 이뤄지지 않은 채, 저농약 인증제 폐지 직전에야 “매뉴얼을 만들겠다”고 하니 과수농가들로선 기가 찰 노릇이었다. 사과의 경우 저농약 인증 마지막해인 2015년 8월에야 ‘사과 유기재배 매뉴얼’이 발간됐고, 복숭아·자두의 경우 저농약 인증제 폐지 뒤인 2017년 11월에야 ‘핵과류 무농약·유기재배 농가사례집 - 복숭아·자두’가 발간됐다.

저농약 인증제 폐지 후 4년이 지났건만, 농식품부는 옛 저농약 과수농가들의 ‘친환경 진입’과 관련해 이렇다 할 대책을 못 내놓은 상황이다. 농식품부 측은 “농민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여러 대책을 강구 중이다”고 원론적 답변을 내놨을 뿐이다.

저농약 인증농민 신념과 배치된 ‘GAP 인증유도’

농식품부의 결정적 오판 중 하나는 옛 저농약 인증농가에 대한 ‘우수농산물관리(GAP) 인증 유도’였다.

위에 거론한 2013년 농식품부 친환경 과수농가 육성방안을 보면, 농식품부는 저농약 과수 인증농가 중 상위 인증으로의 전환이 어려운 농가에 대해 GAP 인증신청을 유도하면서, GAP 인증신청 절차의 간소화(3단계→1단계) 및 신청비용 경감을 통해 GAP로의 전환을 용이하게 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GAP는 친환경인증제가 아니다. 저농약 인증제는 여타 친환경인증제와 마찬가지로 제초제 사용을 금지했으며, 농약 및 화학비료의 사용량에도 제한을 뒀다. 반면 GAP 인증은 제초제 사용을 허용하며, 친환경농업과 상극인 GMO 종자 사용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저농약 인증농가들을 GAP로 유도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최소한 제초제나마 치지 않고 농사짓겠다’는 저농약 인증농민들의 신념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농관원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의 저농약 과수농가에 대한 기본방침은 해당 농가의 GAP 인증으로의 전환”이었다며 “저농약 농가의 무농약 진입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의무적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보진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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