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농약 인증제 폐지 그 후, 정부는 뭐했나?

  • 입력 2020.10.25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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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저농약 인증제는 폐지됐지만 관행농업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저농약 농사를 고수하는 농민들이 있다. 지난 21일 충북 충주시 대소원면의 한 사과 과수원에서 만난 이복순(왼쪽), 김진원(가운데), 김기수씨가 수확을 앞둔 부사의 잎을 솎아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저농약 인증제는 폐지됐지만 관행농업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저농약 농사를 고수하는 농민들이 있다. 지난 21일 충북 충주시 대소원면의 한 사과 과수원에서 만난 이복순(왼쪽), 김진원(가운데), 김기수씨가 수확을 앞둔 부사의 잎을 솎아내고 있다. 한승호 기자

30년 가까이 이어진 신자유주의 무역체제 최고의 수입품(?) 중 하나는 농작물을 해치는 병해충이었다. 미국선녀벌레, 갈색날개매미충 등 과거엔 이름도 못 들어봤던 벌레들이 한반도 곳곳을 누비며 농작물을 갉아먹는다.

여기에 기후위기라는 악재까지 더해져 재래 병해충도 더더욱 설친다. 폭우, 가뭄, 동해 등 온갖 기상이변까지 더해져 이 땅의 농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농사짓기 어렵다. 제초제나 농약을 쳐도 잡기 힘든 게 요즘 병해충이건만, 친환경농민들은 이 병해충들에 사실상 맨몸으로 대적한다. 그러니 농사를 지으며 피해는 피해대로 다 입고, 수확물은 얼마 못 건진다. 그 수확물의 절대 다수도 ‘품위’, 즉 겉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않아, 맛과 영양성분이 뛰어난 것과 별도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한다.

이토록 어려운 친환경농사를 농민들이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땅을 살리고, 농지와 그 일대의 생태계를 살리고, 여기서 만들어진 먹거리를 먹는 사람들의 건강을 살리고, 무엇보다 농민 스스로가 농약과 제초제로 인한 피해로부터 건강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다. 적지 않은 수의 친환경농민이 친환경농사를 택한 이유는 바로 ‘살리고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지금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 중 하나다. 이 공익적 기능의 강화를 위해 정부는 친환경농업 정책 강화에 나서야 한다. 최소한 농민들이 병해충에 덜 시달리고 농사지을 수 있도록 관련 재배기술 연구·개발·보급을 추진하고, 친환경 공공급식 확대를 통해 농가들의 판로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친환경농업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 할 수 있는 친환경농업 육성 5개년 계획의 4차 계획 실행 마지막해인 2020년 현재, 친환경농업은 더 확대되긴 커녕 더 줄어들었다. 특히 친환경 과수농업은 절멸위기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은 과수농가들에게 친환경농업 진입의 사다리 역할을 해준 친환경인증제 상의 저농약 인증제가 2016년 폐지된 뒤 가속화됐다.

물론 저농약 인증제 폐지 건에 대해선 친환경농민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같진 않다. 그러나 적어도 정부가 ‘과수농업의 친환경화’에 소홀했다는 것만큼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친환경 과수농업을 공익적 기능 수행의 일환으로 보고 적극 지원해야 할 정부건만, 사실상 친환경 과수농업 발전과제를 내팽개치다시피 했다.

이원영 농업회사법인 도담 대표는 “저농약 인증제 폐지 직전이던 2014년, 여러 경로를 통해 방제기술이 확보될 때까지라도 섣부른 저농약 인증제 폐지는 유보해야 한다고 촉구했건만, 정부는 저농약 농가의 무농약 단계 진입이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하며 끝내 저농약 인증제를 폐지했다”며 “당시 그토록 호언장담하던 관료들은 다 어디 간 거냐”고 쓴소리했다.

내년부터 5차 친환경농업 육성 5개년 계획이 시작된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는 새로운 계획 수립에 앞서 친환경농업계에 의견을 수렴 중이다. 친환경농업 발전을 위한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정부는 그 과제 중 하나로 ‘과수농가의 친환경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에 앞서 저농약 인증제 폐지 결정 후 정부의 친환경 과수농업 관련 정책부터 평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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