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 하나 사이로 전남 농민엔 농민수당·광주 농민은 빈손

“광주광역시의 농민수당 외면은 30년 농업홀대의 결과물”

  • 입력 2020.10.18 18:00
  • 수정 2020.10.18 20:2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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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광주광역시 농민들이 지난 7월 15일 광주시의회 앞에서 농민수당 주민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천막농성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윤병구 기자
광주광역시 농민들이 지난 7월 15일 광주시의회 앞에서 농민수당 주민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천막농성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윤병구 기자

광주 농민들은 올해 코로나19와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 방지에 안간힘을 쏟는 한편 광주광역시와도 사투를 벌여야했다. 호남지방에선 최근 농민들의 주도로 농민수당이 전국 최초로 시행되는 등 지방농정에서 진일보한 개혁을 이뤘는데, 같은 지리적 여건에서 똑같이 농사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계선 하나를 두고 관할 광역지자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광주 농민들은 수혜를 받지 못해서다.

농민수당 제도 도입을 주창하는 전남 농민들의 노력으로 지난 2019년부터 해남 등 일부 전라남도 기초지자체가 스스로 농민수당을 도입했고, 같은 해 전라남도 농어민공익수당 조례가 제정되면서 올해엔 22개 시군에 거주하는 전 도민이 60만원의 농민수당을 지역화폐로 지급받았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전남도가 봄철에 전액을 일시 지급했던 지난 5월엔 첫 농민수당을 받아 감격에 찬 농민들의 ‘인증샷’ 공유가 한동안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농민수당을 쟁취해 낸 전남지방에서 홀로 웃음기가 사라진 농민들이 있었으니, 바로 호남의 중심인 광주광역시 농민들이다. 특히 광주광역시에서 실경작 농민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광산구는 과거 전라남도 소속의 ‘광산군’으로 역사를 이어오다 지난 1988년 광주광역시로 편입돼 ‘역차별’에 대한 저항이 상당하다. 광산구는 기초지자체 시절부터 광주광역시와 분리된 생활권을 형성한데다,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농촌의 경관과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어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여전히 농촌에 가깝다.

그러나 광주광역시가 전라남도에서 진행된 일련의 과정에 제때 발을 맞추지 않으면서, 이들은 나주시·함평군·장성군 농민들과 마주보며 지냄에도 불구하고 농민수당을 받는 시점에서 최소 1년의 격차가 발생하게 됐다. 광산구뿐만 아니라 서구, 남구, 북구의 외곽에도 여전히 상당한 농지가 남아있는데, 2018년 기준으로 광주광역시 농지 규모는 총 9,446ha로 바로 옆 장성군(1만415ha)과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이 역차별이 단순 1년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전남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가 농민수당이라는 형태로 인정받은 만큼 광주 농민들은 적어도 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결정권을 쥐고 있는 시 행정부와 의회는 농민수당 도입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사실 주민 발의 이전에도 농민수당 조례는 한 시의원이 전남의 사례를 참고해 이미 지난해 9월 한 차례 발의했지만, 이 때 의회에서 오간 논의의 내용은 광주 농민수당의 진척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다. 당시 참석한 박남언 광주광역시 일자리경제실장은 김익주 시의원의 발의안에 대해 ‘타 광역시에서는 논의조차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정직능분야에 수당을 지급하기 위해 논의가 필요하다’, ‘기초지자체와 예산을 분담하는데 기초적인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난색을 표했다. 의회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심사보류를 결정했다.

결국 광주 농민들은 전남 농민들이 그랬듯 올해 1월 이미 1만8,000여명의 주민 서명을 받아 주민조례안을 발의하는데 성공했지만 5월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광주 농민들은 지난 7월 시의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펼치는가 하면 9월 임시회 직전에도 규탄대회를 열었지만, 이번에도 의사당에서 농민수당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심사를 보류한 이후 시간은 벌써 1년이나 흘렀다.

결국 지난 7일 광주광역시청 앞에선 또다시 ‘농민수당 쟁취 광주농민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오종원·박형윤 두 농민의 삭발식으로 막을 내린 대회는 11월에도 또 한 번 열릴 예정이다. 이들은 농민을 배려하지 않은 행정구역 지정, 지속적 농업예산 감축 등 30년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광주광역시의 농업홀대가 이번 농민수당 의제를 통해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며 전향적 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갑성 전농 광주전남연맹 부의장은 “주민 발의한 지역에서 농민수당이 실현되지 않은 곳은 없다. 더욱이 서명 인원 중 농민은 2,000여명으로 나머지는 도시민임에도 동의했다”라며 “시의 가장 큰 문제는 소통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면) 협상 절차나 토론회 등도 전혀 추진이 안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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