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한가위, 전통주와 함께

  • 입력 2020.09.27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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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전통주갤러리에서 이현주 관장이 올해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수상한 각양각색의 전통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한승호 기자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전통주갤러리에서 이현주 관장이 올해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수상한 각양각색의 전통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한승호 기자

좋은 사람과 시간을 보낼 때, 기쁜 일을 축하할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피곤한 심신을 위로할 때, 시판 희석식 소주나 맥주로는 차마 채울 수 없는 그 소중한 순간에 우리는 ‘좋은 술’을 찾는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좋은 술이라 하면 와인·위스키·사케, 고가의 맥주 정도가 떠오를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소중한 시간엔 대개 외국 술이 함께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우리술이 있다. 전통주갤러리가 만든 <전통주(우리술) 실무 세미나> 자료에 따르면 이미 삼국시대 이전에 음주문화가 보편화됐던 것을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고려시대에 이르러선 탁주·약주·소주의 3대 주종이 완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조선시대엔 집집마다 특색 있는 술을 빚는 문화가 형성되면서 우리술이 전성기를 향유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술은 근대화 과정에서 혹독한 수난을 겪는다.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우리의 가양주를 사실상 탄압하고 상업적 양조를 정착시켰다. 해방 후에도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고 오히려 박정희정부 때 양곡관리정책으로 (밀)막걸리 외의 전통주는 거의 고사하고 말았다. 자연히 우리나라 술시장은 수입 원료를 사용하는 대기업 공장제 제품들과 외국 주류들로 채워졌다.

1990년대 이후 정부의 전통주 육성정책과 각종 규제 완화에 힘입어 전통주 산업은 재생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먹거리·마실거리를 추구하는 세태에 발맞춰 최근엔 그 성장세를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과 민간의 분발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인식 전환이 쉽지 않아서, 아직까지 많은 전통주 업체들이 난관에 부딪혀 있다. 과거에 우리술이 없어서 못 먹었다면, 지금은 몰라서 못 먹는 상황이다.

우리 전통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술이다. 한때 명맥이 끊겼다 해도 고서 등 옛 제조법을 통해 오히려 옛 맛 그대로를 복원해 맛볼 수 있게 됐고, 더러는 그 지난한 역사 속에서 단절 없이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는 사례도 있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문배주·면천두견주·경주교동법주 등은 어디에 내 놔도 손색이 없는 우리의 대표 술이다. 물론 국가문화재가 우열의 척도가 되는 건 아니다. 한산소곡주·충주청명주·김천과하주 등 시도무형문화재나 추성주·감홍로·병영소주 등 전통식품명인 제품들도 똑같은 명주들이며, 때론 시골 양조장의 1,000~2,000원짜리 막걸리도 여느 명주 못지않은 품격을 갖고 있다.

엄숙하고 고상해 보이는 술들만이 전통주가 아니다.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술들 외에 새로이 개발한 우리술, 색다른 기법을 활용한 우리술, 심지어 지역 농산물을 사용한 와인 등 전통주의 ‘외형’을 벗어난 듯한 술까지 우리 법은 전통주의 범주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막걸리 하나를 만들어도 평범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기발하고 개성 넘치는 전통주 업체들이 즐비하고 그 제품들이 전통주 시장에서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를 형성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전통주 홍보관 ‘전통주갤러리’나 충무로 ‘술술상점’, 용산 ‘아잉컴퍼니’, 문래 ‘현지날씨’ 등의 전통주 보틀샵은 애주가들에겐 별천지일 것이다. 각양각색,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전통주들이 총망라돼 와인·사케를 고르고 배우는 것과 똑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들이다.

추석은 농민들의 축제이자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마음 담은 선물을 전하는 훈훈한 시간이다. 아직 구입해야 할 선물이 남아있다면 우리 농산물로 만든 전통주를 골라 의미있고 멋진 선물을 해 보는 게 어떨까. 명절을 혼자 보내야 하는 사정이 있다면, 나를 위한 전통주 한 병 정도도 썩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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