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먹는 술·발포주·컬러막걸리 … 전통주의 색다른 얼굴

전통적 이미지와 고정관념 탈피
개성으로 무장한 젊은 양조인들
톡톡 튀는 제품으로 시장 선도

  • 입력 2020.09.27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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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올해 농식품부 우리술 품평회 수상작 가운데는 유난히 별난 술이 하나 있다. 강원 홍천 ‘예술주조’의 ‘배꽃필무렵 이화주.’ 술은 기본적으로 마시는 음식이라는 게 통념 중의 통념이지만, 이 제품은 잘 발효된 요거트처럼 걸쭉해 마시기가 쉽지 않다.

사실 이화주는 수많은 고서에 그 존재와 제조법이 나와 있는 엄연한 민속주다. 예술주조 정회철 대표가 이 옛 술을 복원하고 잣잎을 첨가해 재탄생시킨 것이다. 숟갈로 떠 먹거나 과일·고기 등에 찍어먹는 이 술은 재미와 풍미가 각별해 국내 소비자는 물론 일본 박람회에서도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비단 떠먹는 술뿐이 아니다. 최근 전통주는 유서 깊은 민속주 외에도 지역특산물을 활용하는 지역특산주와 소규모주류·일반주류 면허 제품 일부까지 정책적으로나 통념적으로나 상당히 폭넓게 인식되고 있으며 이런 기조 속에 외형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전통주가 등장하고 있다.

여기엔 아무래도 젊은 양조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2000년대 중반부터 가양주 열풍을 타고 한국전통주연구소·한국가양주연구소·막걸리학교 등이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했고 젊은 교육수료자들을 중심으로 최근 개성 있는 양조장들이 꽃피고 있다.

와인·리큐르의 형태를 띤 지역특산주들은 이미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산재해 있고 최근엔 사과를 발효시킨 발포주도 인기를 끌고 있다. 빨간색·파란색 각양각색의 색깔술들은 그 부재료들만큼이나 다양하고 독특한 향미를 자랑하며, 서울 성동구의 ‘한강주조’는 강서구에서 일부 재배되는 서울산 쌀만을 고집해 완벽한 서울 술 ‘나루생막걸리’를 선보이고 있다.

서울 중구 소재 전통주 보틀샵 ‘술술상점’. 고객의 연령대와 성별도, 매출이 크게 집중된 제품도 없을 정도로 다양한 계층에서 다양한 소비가 이뤄지고 있다. 퇴근길에 와인을 사 마시듯 전통주를 골라 구입해 가는 문화가 근방에서 형성되고 있다.
서울 중구 소재 전통주 보틀샵 ‘술술상점’. 고객의 연령대와 성별도, 매출이 크게 집중된 제품도 없을 정도로 다양한 계층에서 다양한 소비가 이뤄지고 있다. 퇴근길에 와인을 사 마시듯 전통주를 골라 구입해 가는 문화가 근방에서 형성되고 있다.

aT 조사에 따르면 최근 소비자들은 특히 향을 가미한 전통주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서울 강북구의 ‘DOK브루어리’는 이 분야에서 가장 ‘핫’한 전통주 업체 중 하나다. 이름부터 브루어리(통상 맥주 양조장을 칭함)를 달고 있는 이 업체는 전통 막걸리 제조기법을 기본으로 하되, 제빵에 사용하는 천연효모종과 맥주 제조에 사용하는 드라이호핑 공법을 접목해 부재료(생강·코리앤더 등)의 향을 한층 증폭시킨 막걸리를 만든다. ‘걍즐겨’·‘두유노’·‘뉴트로’ 등 제품 이름도 파격적이며 흔들어 먹으면 막걸리, 맑은 부분만 먹으면 와인·맥주 맛이 난다는 설명도 재미있다.

서울 강남구의 C막걸리도 노간주열매·개똥쑥·카카오·라벤더 등 맛과 향, 색깔, 질감을 고려해 총 12가지의 특이한 부재료를 쓴 6종의 컬러 막걸리를 내놨다. 주류계의 포스트모더니즘을 지향하는 대표의 성향 그대로 제품 하나하나가 톡톡 튀는 개성을 보여준다. 음식도 와인도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것처럼 막걸리로도 다양한 기호를 충족시키고자 한다는 설명이다.

개성 넘치는 술을 만드는 양조인들이라지만 국산 재료에 애착을 가진, 우리 농업의 분명한 우군들이다. 정회철 예술주조 대표는 이화주 부재료로 잣잎을 찾은 게 아니라, 지역 특산물인 잣잎에 어울리는 술을 모색하다 이화주를 복원했다. 지역 특산물인 단호박을 사용한 예술주조의 타 제품에서도 그 마음이 잘 드러난다. 사과 발포주 제조업체인 ‘댄싱사이더컴퍼니’와 ‘한국애플리즈’가 사과 주산지인 충주·의성에 자리잡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규민 DOK브루어리 대표는 “기본적인 건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산 재료 사용은 전통주를 만들면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고 표현했다.

최영은 C막걸리 대표도 부재료들을 청년농장 등을 통해 가급적 국내 조달하고 있으며 노간주열매처럼 국산 유통이 드문 재료도 전통시장에서 발품을 팔아 기어이 국산을 사다 쓰고 있다. 그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다 보니 농산물 생산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태풍·폭우 땜에 힘든 와중에도 원활히 공급하려는 농민들의 노력을 체감하고 있고, 농산물을 받아 다시 술을 생산하는 생산자로서 농민들과 동질감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는 것만큼 전통주의 상황이 마냥 순탄한 것은 아니다. 선물용 소비가 많은 유명 민속주와 달리 군소 양조업체들은 대부분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로 시음회 등 홍보행사 진행에도 악재가 닥쳤고 최근 편의점 스마트오더 입점이 가능해졌지만 입점을 위한 물류체계 구축은 어지간해선 불가능하다.

하지만 전통주 시장은 해가 갈수록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고, 도심 곳곳에 생겨난 전통주 전문매장엔 청년부터 노년까지 방문객이 골고루 늘어나고 있다. SNS의 발달과 비대면 거래 증가도 호재로 볼 수 있다. 오늘보다 내일이 희망적인 전통주다.

“전통주는 우리 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 모르고 있다. 와인도, 맥주도 종류가 무궁무진하듯 전통주도 매우 다양하다. 소비자들이 와인·사케를 마시듯 전통주도 많이 관심갖고 즐겨 주셨으면 좋겠다.” 젊은 양조인들이 입 모아 전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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