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전통주

국가, 시·도지정 무형문화재 전통주 34종
무형문화재 지원 현실화 필요

  • 입력 2020.09.27 18:00
  • 수정 2020.09.27 19:33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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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지난 21일 충북 충주에 위치한 청명주 양조장 중원당에서 김영섭 대표가 추석을 앞두고 판매할 청명주의 마개에 한지를 두르고 있다.
지난 21일 충북 충주에 위치한 청명주 양조장 중원당에서 김영섭 대표가 추석을 앞두고 판매할 청명주의 마개에 한지를 두르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업과 우리술, 전통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집안에서 정성스레 빚은 한 사발 탁주로 고된 농사일의 시름을 잊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도 그래서다. 이렇듯 전통주는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공기처럼 우리네 삶에서 함께해 왔다.

하지만 전통주가 현재까지 이어진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리 순탄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엔 주세령과 함께 주조 면허제를 실시하며 밀주를 단속했다. 해방 이후에도 주세법은 계속됐고, 박정희정권은 1963년 탁주 제조에 쌀 사용을 막았다. 이로 인해 전통주는 흔적만 남고 점점 희미해져 갔다.

이런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전통주의 명맥이 이어진 데에는 장인들의 숨은 노력이 있다. 경북 경주최씨 가문에서 대대로 빚어온 경주교동법주가 그 사례 중 하나다.

경주교동법주는 조선 숙종 때 궁중음식을 관장하는 사옹원에서 참봉을 지낸 최국선이 고향에 내려와 빚은 술로 알려져 있다. 1986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최씨 가문의 며느리인 배영신씨가 명예기능보유자로 인정받은 후 2006년엔 그의 아들인 최경씨가 2대째 기능보유자가 됐다. 경주교동법주는 문배주, 면천두견주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3종류 밖에 없는 국가무형문화재 전통주 중 하나다.

최경씨의 딸 최석윤씨에 의하면 일제시대나 박정희정권 시절 단속으로 인해 드러내놓고 만들진 못해도 집안 제사를 지낼 정도로 소량만 만들면서 명맥을 이어왔다. 가양주임에도 집안행사 등에 다녀간 손님들이 탁월한 맛에 감복해 경주교동법주라는 이름이 세간에 알려졌다고 한다.

대표적 전통주인 경주교동법주는 그 이름을 둘러싼 비화가 있다. 경주교동법주의 원래 이름은 경주법주다. 경주지역 최씨 집안의 가양주 이름이 법주였는데, 경주와 법주를 합친 이름인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정권의 비호 아래 한 업체가 일본 주조 방식을 들여와 경주법주라는 이름으로 시판에 나섰고, 상표 등록까지 해 경주법주라는 이름을 못 쓰게 됐다. 결국 경주법주의 원조임에도 동네이름인 교동을 붙여 경주교동법주라는 이름으로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았다.

최씨는 “무형문화재라는 게 명예라면 명예이다 보니 그 명맥과 가치가 하락하지 않도록 현재의 품질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선대의 지론”이라고 설명했다.

전통주엔 국가무형문화재 외에도 31종류의 시·도무형문화재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충북 충주의 청명주다.

지난 21일 만난 김영섭 청명주 양조장 중원당 대표는 “청명주는 한겨울에 빚어 3~4개월 발효를 시킨 후 1년 24절기 중 봄 무렵인 청명에 먹는다”고 했다. 청명은 절기상 춘분과 곡우 사이로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다.

청명주는 일제 강점기에 명맥이 끊겼지만 1980년대에 복원됐다. 청명주를 세상에 다시 선보인 건 김 대표의 아버지 김영기씨다. 음식이나 약 제조방법을 적은 향전록이라는 책이 집안에서 전해져 내려왔는데, 이를 토대로 어렵사리 청명주를 복원했다. 1993년 청명주가 충청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김씨가 기능보유자가 됐고, 대를 이어 김 대표도 2007년 기능보유자가 됐다.

김 대표는 “번거롭고 힘들고 수율도 안 좋다보니까 무형문화재들조차 전통의 방식이 아닌 쉬운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렇다보니 세계적인 술이 안 나오는 것”이라며 “요즘은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옛 전통주 복원에 나서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더불어 “전통주가 일반술에 비해 비싸다는 인식이 있는데 노력과 가치를 감안한다면 결코 비싼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전통주 중 국가무형문화재는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국가가 지정하는 것이고, 시·도무형문화재는 지자체에서 지정한다. 이들 모두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지만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게 전통주 현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서도 전통주 활성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이 또한 홍보에 치중돼 있는 게 현실이다. 한 전통주 관계자는 “무형문화재 유지·발전을 위해선 정부 지원 정책의 현실화가 필요하다”며 “전통주의 경우 판매라도 할 수 있지만, 예능인(연희·연주 등)의 경우엔 실제로 생활고를 겪는 사례도 있다. 전통주도 후대엔 사라져 명맥이 끊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술, 전통주가 후대까지 이어지기 위한 정책적 고민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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