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 못 지키는 농지법, 무엇이 문제인가

규제완화 일변도 20년, 임차농 늘어난 주범
농업진흥구역도 매년 2,000ha 이상 사라져
“농지전용 막을 용도규제·임대차 관리 필요”

  • 입력 2020.09.13 18:00
  • 수정 2020.09.13 21:3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9일 하늘에서 본 충북 진천군 이월면 사당리 관지미마을(왼쪽)과 들녘 모습. 진천군이 추진 중인 산업단지 개발 계획에 따르면 현재 보이는 마을과 대부분의 농지가 없어질 예정이다. 한승호 기자
지난 9일 하늘에서 본 충북 진천군 이월면 사당리 관지미마을(왼쪽)과 들녘 모습. 진천군이 추진 중인 산업단지 개발 계획에 따르면 현재 보이는 마을과 대부분의 농지가 없어질 예정이다. 한승호 기자

도시화에 따른 주택지·산업단지 등의 개발로 농지가 무분별하게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는 「농지의 보전과 이용에 관한 법률(농지법)」을 두고 농업활동 외의 목적으로 농지를 이용하고자 하는 ‘농지전용’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농지법이 오랜 시간 규제 완화 일변도의 개정을 거치며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지속되고 있으며, 심지어 본래 목적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은커녕 최근 들어 오히려 악화일로를 걷는 모습이 관찰된다.

경자유전의 원칙을 명시하는 헌법과 달리, 실제로는 농사를 짓지 않는 비농민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한 예외조항이 모든 문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농지법에서는 제6조 ‘농지 소유 제한’에서 농사를 짓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10가지 예외 경우를 두고 있는데 이 중 농사를 짓지 않음에도 농지를 상속을 받을 수 있게 한 것과 농사를 그만둬도(이농) 계속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 내용은 사실상 사문화된 임차 금지 조항, 그리고 비농민의 농지취득 관련 규제 완화와 맞물려 우리나라의 임차농가 비율이 전체 농가의 절반을 웃도는 현실에 일조했다. 자신의 생산수단을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는 자경농민이 줄고 부재지주가 그만큼 늘었다는 사실은 우리 농지 곳곳이 언제라도 재산증식을 위한 투자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농지법은 경작과 식량생산이 우리 사회의 공익을 추구하는 행위로 믿고, 그 수단인 농지의 취득과 이용에 여러 가지 제약을 규정한 법률이다. 우리나라의 농지는 크게 농업진흥지역에 속한 농지와 그렇지 않은 농지로 나뉘는데, 1996년 농지법이 시행되기 이전 ‘절대농지’라고 불리기도 했던 농업진흥지역은 농업용지로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보전하겠다고 지정한 농지들을 말한다.

이 지역에는 직불금 등 보조금 혜택이 추가적으로 부여되고 지자체의 농업 분야 투자가 우선되는 대신, 농업생산·농지개량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토지 이용행위 대부분이 제한된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쉽게 지정을 해제할 수도 없다. 그러나 면적 자체가 부족한 것이 문제다. 앞서 언급했듯 농지를 그저 재산으로 인식할 부재지주가 전체 농지 지주의 과반을 차지한 상황에서 농지의 투기성 거래를 막기에는 농업진흥지역의 비중이 너무 낮다.

지난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농업진흥지역 면적은 77만7,000ha로 전체 농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원장 김홍상, 농경연)에 따르면 우리가 제도를 참고한 일본은 농업진흥지역인 농용지 구역 내 농지가 전체의 90%에 이르며, 면적 목표를 설정하고 같은 농용지에서도 등급을 나눠 관리한다. 영국은 농지 전체를 진흥구역으로 지정하되 토지에 등급을 부여해 불가피한 개발 수요가 양질의 농지를 침식하는 것을 막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의 농지법이 이런 농업진흥지역조차 잘 지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농어촌공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지면적은 지난 2011년 170만ha 선이 깨진데 이어 2018년에는 160만ha 아래로까지 줄었다. 매년 전체면적의 0.5% 이상의 농지가 사라지는 가운데, 줄어든 농지에서 농업진흥구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연평균 20% 수준에 이른다(최근 5년 간 매년 2,000ha 이상). 근래 가장 농지가 많이 줄어든 해였던 2007년에는 약 2만5,000ha의 전용 면적 가운데 농업진흥구역이 5,125ha를 차지했다.

현행법 상 농업진흥구역의 해제에는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의 승인이 필요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공공 목적의 개발 등을 추진하며 용도지역을 변경하는 경우 농지법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 하더라도 농지전용을 심의하는 기구가 없어 담당부서가 개발주체로부터 지속적으로 압박을 받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농식품부에는 본래 농지관리위원회가 있었지만 유명무실화를 거쳐 지난 2009년 폐지됐다.

한편 대체에너지의 비중을 늘리겠다는 문재인정부의 기조에 맞추기 위해 농지법은 더욱 엉망이 되고 있다. 국회는 지난 2018년 말 태양광 발전설비를 간척농지에 일시사용허가 아래 건설하도록 농지법을 개정한데 이어, 지난 7월에는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업진흥구역에까지 발전소 설치를 허용하자는 개정안을 내 농민단체들의 극심한 반발을 샀다.

농경연은 지난해 말 발표한 ‘토지공개념에 기초한 농지관리 제도 개선방안(채광석, 김부영)’에서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농지법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며 여러 가지 개선안을 냈다. 농경연은 농지에 세분화된 용도규제를 신설하는 한편 농지법의 농지전용 의제 확대를 동결하고, 농지법의 개정 없이는 개별법에서 농지전용 의제를 담지 못하게 하자는 제안을 냈다. 또 현실적으로 농지 임대차가 불가피한 상황을 인지하고 한국농어촌공사가 비농민의 농지 위탁을 전담관리하며, 가칭 ‘농지임대차관리법’을 특별법으로 제정해 임대차 관련 조항을 상세하게 규정할 것을 주장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