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쓸쓸히, 불편하게 농촌에서 살아간다

  • 입력 2020.08.23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심현택 어르신(83)은 전남 담양군 대덕면 운산리 마을 역사의 산 증인 중 한 명이다. 그는 한 때 주막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마을에서 점차 사람들이 떠나가고, 홀로 남은 노인들이 쓸쓸히 생을 마감하고, 점차 마을에 빈 집이 늘어나는 걸 목격했다.

“동네 집들 중 3분의 1은 빈 집이야. 연세가 들어 돌아가시는 분들이 생기면 그 집은 그대로 빈 집이 되는 거야. 지금 우리 마을에 내 나이 또래인 사람은 아무도 없어. 얼마 전까지 95세 노인이 우리 마을에 살았는데 그도 못 견디고 자식 따라 광주 양로원으로 갔어. 다들 떠나불고, 혼자 살다 세상을 떠나고 하면서 마을이 점차 비어갔제.”

왜 노인들은 마을을 떠나갔을까. 왜 마을은 점차 비어갔을까. 이는 사실상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농촌 노인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았다.

“어디 가는 게 무섭고 미안해”

운산리 운수대통행복마을에 사는 주민 김창순 어르신(79, 가명)은 다리가 불편하다. 그는 오랫동안 당뇨를 앓다가 다리에 합병증이 생겼다. 바로 아랫집까지만 걸어가도 주저앉을 정도로 걷는 게 힘겹다. 그러다 보니 누가 놀러가자 해도 못 가는 건 물론, 하다못해 같은 마을 이웃집들 가는 것도 어렵다. 그렇게 불편한 몸으로 집에 눌러앉은 지 10년이 됐다.

김 어르신은 4년째 창평면의 병원을 다니고 있다. 그는 버스도 못 탄다. “오른쪽 엄지발꼬락(엄지발가락)이 없다 보니께 (걸어다닐 때) 힘을 못 써. 합병증 때문에 나머지 네 개 발가락도 아퍼. 그래서 오래 서 있질 못혀.” 그러다 보니 면 소재지 병원에 갈 땐 주로 동네 주민들의 차를 얻어탄다.

“처음엔 고마운 마음으로 타고 댕겼제. 근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그렇게 신세 지니께 미안하더라고. 본인들(마을 주민들)이야 말을 않지만 내 자신이 미안해서 못 타겠더라고. 요새는 우리 집 방문하는 도우미 아줌마(요양보호사) 올 때 아줌마 차타고 댕겨오제. 이젠 어디 가는 게 무섭고 미안해.”

사실상 혼자 사는 삶

전남 담양군 대덕면 운산리에서 살고 있는 김창순(가명) 할머니가 지난 18일 안방에서 현관문 쪽을 바라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전남 담양군 대덕면 운산리에서 살고 있는 김창순(가명) 할머니가 지난 18일 안방에서 현관문 쪽을 바라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운수대통행복마을엔 병원은 물론이고 보건소도, 약국도 없다. 의료기기래 봐야 마을회관 안에 있는 안마기가 전부라는 게 김 어르신의 설명이다. 그나마 가까운 보건소가 옆동네인 대덕면 용대리에 있다.

김 어르신은 “예전엔 용대리 보건소에서 의사가 방문해 당뇨검사도 해주고, 혈압도 재어주고, 영양제와 파스도 주고 갔지. 그런데 언젠가부터 안 오더라”라며 “요새 다른 동네들 보건소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용대리 보건소도 지금은 직원이 한 명밖에 안 남았다”고 밝혔다. 그러다 보니 김 어르신은 진통제나 파스도 이웃 사람이나 요양보호사가 방문할 때 부탁해서 창평면 약국에서 사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다.

요양보호사는 매주 월~금요일 오전 10시 30분~오후 1시 30분에 김 어르신 집을 방문한다. 하는 일은 식재료 조달과 집안 청소다. 요양보호사는 다른 가정을 방문한 뒤 김 어르신 집에서 3시간 일하고 또 다른 가정으로 향한다. 1시 30분 이후로는 온전히 혼자만 남는다. 혼자 집에 있을 때의 일과를 물었다.

“뭐 하기는. 그냥 오후 내내 혼자 방구석에서 드러누웠다가 앉았다가 자는 거 반복이지. 도우미 안 오면 죽을 맛이지 뭐. 그래도 도우미가 와서 청소라도 해주고 식재료라도 사다 주고 하니까 낫지.”

김 어르신은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요리와 목욕은 스스로 했다. 특히 요리는 “다른 사람이 해주는 음식은 자기 입맛에 안 맞아서” 스스로 한단다. 거동이 불편해 칼 가지러 가는 것도 중노동이건만 늘 그런다. 어르신 스스로 표현은 안 했지만 그 또한 ‘미안함’ 때문은 아니었을지.

“노인 먹고 사는 건 정부에서 멕여 살려야지”

김 어르신이 한 달에 받는 수당은 국가에서 지급하는 노령수당 30만원과 담양군이 자체 지급하는 생계비 24만원 및 장애수당 4만원이다. 장애수당 4만원은 김 어르신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수당이다.

김 어르신은 서울에 사는 딸이 하나 있다. 실례를 무릅쓰고 따님이 용돈을 보내주는지 물었다. 김 어르신은 대답을 피한 채 웃으며 답했다.

“아프니까 자식도 필요없고 다 필요없더라. 긴 병에 효자 없어요. 나모냥 몇 년째 요러고 있으면 효자 없어. 지도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데 말이야. 제 살기도 바쁘잖아. 노인 먹고 사는 건 정부에서 멕여 살려야지.”

담양읍 가산리 남봉희 이장(70)은 “농촌 마을 곳곳에 혼자 계시면서 끼니를 거르고,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노인들이 많다. 혼자 지내다 보니 치매가 발생하는 사례도 늘어나는데, 노인들은 수술 받는 것마저도 미안하다며 받지 않으려 한다”며 “가산리의 경우 마을 공동급식을 통해 노인들과 식사하고 이야기하는 기회를 늘리고자 노력해 왔다. 쓸쓸히 여생을 보내는 노인이 없게끔 정부가 나서 공동 생활공간도 만들고, 관련 복지를 강화하는 정책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