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늙어도 될까?

  • 입력 2020.08.23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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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장마가 끝나고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18일 전남 담양군 대덕면 운산리의 시골길에서 한 노인이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고 있다. 한승호 기자
장마가 끝나고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18일 전남 담양군 대덕면 운산리의 시골길에서 한 노인이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전라남도 담양군 대덕면 운산리 운수대통행복마을. 이곳은 담양군에서 상대적으로 번화한 담양읍과 창평면에서 자동차로 각각 35분, 18분 걸리는 농촌마을이다. 창평면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흑염소요리 식당 하나, 수련원 하나 외엔 산과 논, 밭만 보이는 시골길이었다.

지난 18일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지나 도착한 운수대통행복마을은 여느 농촌마을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평온한 분위기였다. 주민들은 늦여름 농사일을 돌보느라 각자의 논밭에서 바빴다. 문이 잠긴 마을회관이 보였고, 그 옆엔 쓰레기 분리수거장과 공용화장실이 있었다. 마을회관 근처엔 오래된 정자가 있었다. 이 정도가 운수대통행복마을에 있는 ‘편의시설’의 전부다. 그나마 이 마을 기준으로 가까운 곳 중 최소한의 병원과 약국, 기타 편의시설이 있는 동네가 창평면이기에, 주민들은 일이 있을 때마다 창평면으로 간다.

운수대통행복마을 심현택 어르신(83)은 20년째 앓는 당뇨와 그로 인한 합병증으로 온몸이 성치 않다고 했다. 심 어르신은 일주일에 3~4회 창평면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도 받고 침도 맞는다. 그는 병원을 가기 위해 운수대통행복마을에 하루 다섯 대 들어오는 버스 시간대(오전 7시, 9시, 13시, 15시 30분, 19시)에 맞춰 버스를 타던가, 한 번 이용 시 2만원 이상의 비용이 나오는 택시를 타야 한다.

버스 시간대는 이른 아침이거나, 여름일 경우 가장 더운 시간대 위주이다 보니 버스 타러 나가는 것도 고령의 심 어르신 입장에선 어려운 일이다. 버스 이용 시 운수대통행복마을 회관에서 창평면사무소까진 편도로 45~50분이 걸린다. 운수대통행복마을로 가는 버스가 하루 5대 뿐이라, 택시를 안 타는 한 치료 받고 나서 배차시간이 안 맞아 1시간 남짓 기다려야 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택시 이용의 경우 담양군에서 격오지 마을 노인들을 위해 ‘1,000원 택시’를 운영 중이나 이용대상이 ‘농촌버스가 운행되지 않는 마을 중 버스 승강장으로부터 500m 떨어진 마을에 사는 주민 중에서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은 만 65세 이상 주민’으로 제한돼 있으며, 그나마 주 1회만 이용 가능하다. 심 어르신은 농촌버스가 운행되는 곳에 살기에 택시를 1,000원으로 이용할 수 없다.

도시 노인들의 복지상황도 좋다고만은 할 수 없고, 도시에 살기 때문에 겪는 불편한 점도 많다. 그러나 최소한 도시에선 가까운 거리 내에 약국이 있기에 노인들은 약국에 걸어가서 마스크를 살 수 있고, 병원을 갈 때도 대중교통을 통해 큰 어려움 없이 다녀올 수 있다. 그러나 농촌 노인들은 마스크 하나를 사기 위해서도 엄청난 수고와 시간을 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의료서비스 하나 이용하려고 2~3시간을 들이거나, 아니면 택시비 4만원을 왕복으로 들여야 하는 농촌 노인들의 고생길은 담양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만약 농촌에 제대로 된 노인복지체계가 구축된 상태라면 이러한 고생길이 반복될까? 제대로 된 복지체계도, 복지시설도 없이 이대로 고생길을 반복하며 노인들이 농촌에서 늙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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