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농가 개인에 맡길 텐가

  • 입력 2020.08.14 13:33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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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7일과 8일 이틀간 약 400mm에 가까운 폭우가 쏟아진데다 영산강 지류인 문평천 제방이 무너지며 수백ha의 농경지가 침수된 전남 나주시 다시면 죽산리·가흥리 일대가 10일에도 물이 빠지지 않은 채 호수를 이루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7일과 8일 이틀간 약 400mm에 가까운 폭우가 쏟아진데다 영산강 지류인 문평천 제방이 무너지며 수백ha의 농경지가 침수된 전남 나주시 다시면 죽산리·가흥리 일대가 10일에도 물이 빠지지 않은 채 호수를 이루고 있다. 한승호 기자

물이 들어찼던 집 마당은 물이 빠지자 모래흙에 묻혀버렸다. 축사의 소들은 헤엄을 치다 지붕 위로 올라갔고 논밭은 이미 쓸려 사라진 지 오래다. 살아남은 농작물들도 질병과 낙과와 상품성 하락에 신음하고 있다. 흙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농촌이 입는 수해는 도시의 그것보다 좀 더 처참한 모습이다.

6월 말부터 장장 50일이 넘도록 장마가 이어졌다. 그 와중에 시간당 100mm 이상의 무지막지한 호우가 아무렇지 않게 쏟아져 내렸고, 지역에서 지역을 옮겨가며 연쇄적인 침수 피해가 일어났다. 아무리 수십년 세월을 농사지었다 한들 올 봄에 씨를 뿌리며 이런 상황을 예상한 농부는 없을 것이다.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 최근 SNS에서 확산되고 있는, 기후위기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해시태그 운동 문구다. 시베리아 고온현상과 대기의 수증기 포화가 이번 재난을 초래했다면, 시베리아를 달구고 바닷물을 증발시킨 그 범인은 누구인가.

분명한 건, 책임소재로 보든 수습능력으로 보든 농가 개개인의 영역을 크게 벗어난 사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손길은 이 거대한 사태의 수습을 농가 개개인으로 수렴시키고 있다. 애당초 정부가 농업부문 재해대책에서 손을 뗀 상황에서 믿을 구석이라곤 보험밖에 없지만, 농민을 구제하기 위한 보험의 그물망은 너무나 얼기설기하다. 우선 보험 가입에의 재정적·제도적 장벽이 높을뿐더러 가입했다 한들 비로 인한 병충해·낙과·가격하락 등의 피해는 거의 보장되지 않는다. 설령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농작물’ 피해엔 지원기준이 없는 실정이다.

비단 이번 호우 피해뿐이 아니다. 올봄에는 개화기 이상저온으로 과수농가들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고 지난해엔 세 차례나 불어닥친 가을태풍으로 월동작물이 초토화됐다. 또 그 전 해 여름엔 40℃의 폭염에 작물들이 말라 죽은 일도 있었다. 기상이변은 갈수록 빈번해지며 다양한 양상으로 농민들을 짓누르고 있다.

작금의 기후위기는 적어도 정부가 국가적 차원을 넘어 전 지구적 차원에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 땅의 정부로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현실로 다가온 대위기를 극복할 대안과 역할을 더욱 깊이 고민하는 한편, 식량주권의 원천인 국내 농업 피해에 대해선 우선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지원을 펼칠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기후위기와 농업에 대한 정부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여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늘도 농민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정부를 채찍질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는 중에도 농작물 피해를 입은 농민들의 한숨은 점점 깊어지고만 있다.

“기후 때문에 농사짓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런 불안한 상황이 있으면 정부가 나서 노력해야 하는데 왜 농민들이 이런 것까지 대안을 고민하고 요구해야 하나. 제발, 오래도록 농사를 안정적으로 지을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기나긴 장마에 낙과 피해를 입은, 경북 영천 농민 하헌국씨의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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