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 농산물 피해 일파만파

시들고 떨어지고 병들고…
전국 곳곳서 2차피해 심각
정책도 보험도 보상 뒷짐

  • 입력 2020.08.14 13:31
  • 수정 2020.08.16 19:2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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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침수되고 유실되고 흙모래에 파묻혀버린 전답은 보는 이들을 충격과 상심에 빠뜨리지만, 그것이 농업 피해의 전부는 아니다. 간신히 1차 피해를 면했다 하더라도 한 달을 훌쩍 넘게 이어지는 장마로 농산물 전반이 정상적 생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채는 시들고 과일은 떨어지며, 진흙탕 밭에 기계를 들이지 못해 수확 적기를 놓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고추 탄저병과 벼 도열병을 시작으로 병충해 확산에도 불이 붙는 형국이다. 물론, 보상받을 방법은 거의 없다.

집중호우가 상대적으로 경미했던 지역도 농작물 피해는 매한가지다. 지난 11일 복숭아 주산지인 경북 영천은 과원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복숭아가 발에 채일 만큼 떨어져 있었다. 그 이전에, 떨어진 것 달린 것 할 것 없이 대다수 복숭아의 한 쪽이 검게 썩어들어가 있었다. 장마로 인한 탄저병이다.

영천 임고면에서 2,000평 복숭아 농사를 짓는 하헌국씨는 평소 플라스틱 컨테이너박스로 250박스를 수확하던 과원(500평)에서 겨우 12박스를 수확하고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나마 6월 말부터 이어진 장마로 당도마저 형편없이 떨어져 있는 상태다.

하씨는 “(낙과로) 물건이 없으면 가격이라도 올라야 하는데 당도나 상품성이 낮아 평년의 3분의1 가격도 안 나온다. 엊그제 가락시장에 낸 물건도 박스당 겨우 1만2,000원, 1만5,000원을 받았다”며 착잡해했다.

출하를 앞둔 후속 품종들 역시 탄저·잿빛곰팡이병 등의 확산 조짐이 있지만 그치지 않는 비에 방제약을 치지 못하니 속수무책이다. 지난 4월 개화기 일부 냉해에 이어 올해 과수농가는 계속해서 고난의 연속이다.

하헌국씨가 바닥에 복숭아가 잔뜩 떨어진 과원에서 나무를 살피고 있다.
하헌국씨가 바닥에 복숭아가 잔뜩 떨어진 과원에서 나무를 살피고 있다.
탄저에 걸려 낙과한 복숭아.
탄저에 걸려 낙과한 복숭아. 위쪽이 검게 썩어 있다.

여름배추 산지인 강원도 고랭지는 겉보기엔 거의 피해가 없다. 다른 지역에 비해선 강수량도 적은 편이고 고지대의 특성상 침수나 유실 피해도 부분적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오랜 장마로 인해 병해의 우려가 극대화돼 있는 상황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황화병 병반이 드물잖게 발견되고 있으며 밭 일부가 누렇게 망가진 모습도 보인다.

계속되는 빗발에 방제약을 쳐 봐야 부질없지만 절박한 심정에 거듭 약을 치고 있다. 평시대비 30~40%의 비용을 더 투입하면서도 효과는 의문인 상황이다. 그 와중에 햇빛을 보지 못한 배추는 조직이 연해지고 구 자체도 작아지는 추세다.

강원 태백시 매봉산에서 배추 재배·유통을 하는 노성상씨는 “황화병은 사실 토양에 병균이 토착화돼 있다. 긴 장마로 인해 오히려 발병이 억제되고 있는 측면도 있는데, 다만 장마가 끝난 뒤 고온이 이어지면 이것이 급격하게 확산돼 배추가 전부 푹푹 썩어들어가게 된다”며 걱정했다.

문제는 장마 이후 고온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과거 고랭지 지역의 여름 평균기온은 26~27℃였지만 기후변화가 가속화된 최근 몇 년은 30℃를 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배추농가의 속이 바짝 타들어가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지만 과수·채소 할 것 없이 농민들이 피해를 보상받을 길은 요원하다. 침수·유실 등 1차 피해 보상도 넉넉한 편이 못 되지만, 병충해 등 2차 피해지원은 현재까지 약제 할인공급 정도에 그치고 있다. 농작물재해보험 역시 벼 도열병, 고추 탄저병 등 극히 일부 병충해만을 보장하며 그나마 대개가 특약사항이다. 여타 작물의 병충해는 대책없이 노출돼 있고, 하물며 당도저하나 상품성 하락으로 인한 경제피해 보상은 기대할 수도 없다. 개인 보험에 모든 걸 내맡긴 정부 재해대책의 맹점이 다시 한 번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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