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값에 가까운 재해보상, 이제 기대도 않는다”

보험에 못 기대는 임차·중소농들, 피해 구제할 길 없어

  • 입력 2020.08.14 13:28
  • 수정 2020.08.16 19:2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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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11일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 태봉마을 주민들이 말리려다 비에 젖어 썩기 직전인 참깨를 건조기에 넣고 있다.
지난 11일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 태봉마을 주민들이 말리려다 비에 젖어 썩기 직전인 참깨를 건조기에 넣고 있다.

연쇄적으로 전국 곳곳을 강타한 폭우로 올해는 농작물 재해규모가 여느 때보다도 큰 해로 남게 됐다. 특히 집중·집약재배를 하지 못해 보험가입률이 떨어지는 영세중소농들은 구제의 여지가 거의 없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농작물이 망가진 만큼 수입의 감소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길이 없어 보인다.

경기도 안성시 동부 지역은 집중호우 초기에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은 지역들 가운데 하나다. 지난 2일 시간당 100mm가 넘게 내린 폭우로 안성시의 농업을 담당하는 죽산면·일죽면·삼죽면의 피해가 심각했다. 청미천이 범람해 인근 비닐하우스에 물이 들어차는가 하면, 죽산면소재지 시가지는 통째로 침수되기도 했다. 밀려든 토사에 양계장이 무너져 발생한 사망사고를 비롯해 곳곳의 산사태 피해도 심각하다.

지난 11일 찾은 안성시에선 비가 오는 와중에도 중장비가 투입된 복구 작업이 곳곳에서 한창이었다. 안성시는 매일 굴삭기·덤프트럭 등 약 200대의 중장비를 동원해 도로와 배수로 등 공공시설 및 주거지 응급 복구에 나서고 있다. 피해가 심각했던 일죽면과 죽산면에 대부분의 장비가 투입됐다. 안성시에 따르면 시 전역에 투입된 중장비만 횟수로 1,500회를 넘겼고, 인력은 총 2,300여명이 투입됐다. 지속되는 습한 환경이 야기할 병충해를 막기 위해 긴급방역 차량도 마을 곳곳을 돌아다녔다.

양계 농민 사망사고가 일어났던 일죽면 화봉리 태봉마을은 물이 흐를 수 있도록 마을 양쪽의 수로가 복구돼 있었다. 시에서 구역마다 정해둔 응급복구 공정은 대부분 막바지에 접어들었지만, 농민들의 망가진 생업은 복구가 요원하다. 한 농민은 이날 말리던 참깨를 어떻게든 살려 수확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는데, 날이 갤 것으로 생각해 베어 내놨다가 이날 또 다시 비가 내리는 바람에 황급히 건조기에라도 넣어보려 집으로 가져온 것이다. 예년 같았으면 정상적으로 수확이 마무리됐을 참깨는 이미 군데군데 썩어 있어 이웃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이웃 농민들도 대부분 자신의 경작지에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작업을 돕던 이규호씨는 “마을 뒤 산(마이산)을 기점으로 계곡마다 하단부가 다 무너져서 토사가 빠져나와 700~800평 되는 밭이 다 덮여버렸다”라며 “물이 얼마나 위력이 대단했는지 잘 만들어놓은 마을 양쪽 수로가 다 터질 지경이었다”라고 기억했다.

중소농가 대부분은 주력으로 짓는 농사가 있더라도 참깨·들깨·고추·콩 등을 함께 소규모로 일구며 부족한 소득을 일부 보탠다. 이런 작은 경작지들은 농민들이 고령으로 진입할 때 고스란히 주 수입원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중요한 경작지들이 대부분 농작물 재해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농민들이 많이 심는 들깨·참깨를 비롯해 블루베리·양배추 등 많은 품목들이 보험가입조차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또 농지원부로 가입 대상 면적을 확인하기 때문에 우리 농촌에서 흔히 보이는 ‘서류 없는’ 임차농의 경우 가입에 많은 제한이 따른다.

올해 관개 시설까지 설치한 고추밭 일부에 매몰 피해를 본 김영란씨는 “논이나 과수원이야 재해보험을 들기도 한다지만 논도 번지수에 안 들어가는 건 보험 당연히 못 들었고, 밭들은 당연히 보험 없는 사람이 태반”이라며 “이 정도 양의 참깨를 수확 못하면 300만원을 그냥 손해 본다고 봐야 한다. 내 고추도 올해 잘 됐는데 너무 아깝다”라며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했다.

밭 1,000평이 망가진 원종관씨는 “고추랑 콩 심은 건 임차를 한 건데 보험 가입을 못했다. 작물 심고 수확은 늘 했지만 직불금을 타지 않아서 농사를 지은 근거가 없다고 했다”라며 “보상 받을 길은 전혀 없고, 정부에서 뭐라도 나오면 다행인 수준”이라고 말했다.

안성시는 하루 전인 지난 7일 강원 철원군·충북 제천시 등 6개 시·군과 함께 가장 먼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지만 농민들은 큰 기대를 품지 않았다. 안성의 경우 이번 재해로 인해 피해를 본 농민들에게 ‘농·어·임 생산업 지원금’을 지원하는데, 매몰된 농경지의 경우 평당 2,100원 수준의 지원금이 나온다. 300평 기준으로 70만원도 되지 않아 농민들에게 큰 도움은 안 되는 실정이다. 한우의 경우 현재 비육우 한마리의 도매가격이 800만원 이상을 호가함에도 지원금은 마리당 70만원에 불과하다. 농기계나 농자재의 경우 아예 해당사항이 없다.

밀려든 토사로 집까지 파손된 한 농민은 “예초기 두 대, 잔디깎이 한 대 흙더미에서 건져냈는데 이것만 해도 150만원쯤 된다. 지원책을 봤는데 자재도 안 돼, 농기계도 안 돼, 대체 뭘 도와준다는 건지 모르겠다”라며 “비료 몇 포쯤 살 껌값 주고 말 것이다. 몇 번을 당해봤기 때문에 이제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라고 비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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