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설 곳 없는 농협, ‘유리천장’ 깨야

  • 입력 2020.07.12 18:00
  • 수정 2020.07.13 09:15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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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3년 전 사진이지만 2020년 현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1,118명의 농협 조합장 중 여성조합장은 단 8명뿐인 현실이 그렇다. 2017년 1월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 대강당에서 열린 ‘농협 리더십 컨퍼런스’에 참석한 400여명의 조합장 중 여성조합장의 모습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한승호 기자
3년 전 사진이지만 2020년 현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1,118명의 농협 조합장 중 여성조합장은 단 8명뿐인 현실이 그렇다. 2017년 1월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 대강당에서 열린 ‘농협 리더십 컨퍼런스’에 참석한 400여명의 조합장 중 여성조합장의 모습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한승호 기자

“농협 여성조합원 육성은 20년 전에도 나왔던 얘기다. 양적으로 확보된 상황에서 질적인 성장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수치상 약간의 변화만 있을 뿐 내용은 똑같다. 정말 실망스럽다.”

지난달 29일 열린 ‘제1차 농협 여성농업인 육성 특별위원회(특위)’ 첫 회의에서 한 위원이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여성농민의 현실을 지탄하며 꺼낸 얘기다. 2019년 말 기준 지역농협 여성조합원 비율은 32.6%, 여성임원은 8.6% 수준이다. 이미 농촌 여성인구가 남성인구를 넘어선 상황에서 여성조합원 비율은 현실과 거리가 멀고, 여성임원 비율은 현저히 낮기만 하다.

여성농민들의 끈질긴 싸움으로 지역농협 복수조합원 제도와 여성임원 의무할당제가 도입됐고, 정부에서도 2000년부터 ‘여성농업인 육성 기본계획’을 수립해 시행 중이지만 여성조합원과 임원 비율이 다소 상승했을 뿐 여성농민들의 농협 진입장벽은 여전하다.

여성농민과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농협 진입장벽은 크게 두 가지다. 조합원이 되더라도 출자금이나 경제사업 이용량 등 대의원·임원 출마 자격 기준이 높다는 점, 또 하나는 남성중심의 농촌 문화가 농협 의사결정 구조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여성조합원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농민이 대의원이나 이사 자격을 갖춰 남성농민과 경쟁하려 해도 이를 막아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국 1,118개 농협 조합장 중 여성조합장이 0.7%, 단 8명뿐인 점은 현실을 대변한다.

농촌 현장의 벽은 농협중앙회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적인 장면은 지난 2017년 농협 국정감사다. 당시 설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은 출석한 농협 간부 중 여성이 있으면 일어나보라고 했지만 단 1명도 없었다. 농협의 유리천장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현재도 이렇다 할 변화가 없다.

실제로 농촌 현장 여성농민 출신의 농협중앙회 이사나 여성상무(집행간부)가 1명도 없다. 다만, 농협중앙회 이사 28명 중 사외이사 2명이 여성이지만 농촌 현장 출신은 아니다. 또한 범농협 집행간부 35명 중 계열사인 농협은행에 여성부행장 1명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현재 농협중앙회 대의원 293명 중 여성조합장은 단 1명이다.

특위 위원인 김옥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가부장적 문화가 살아있는 농촌에서 여성농민과 관련된 수치는 모든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농협이 다양하고, 획기적이며 선제적인 방법으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남성중심 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더불어 여성농민들의 적극적 활동도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특위 위원장인 유찬형 농협중앙회 부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나온 대부분의 의견을 “검토하고 수렴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첫술에 배부를 순 없기에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특위 회의는 처음이지만, 농촌 여성농민의 지위 향상과 농협 진입장벽 얘기는 20년도 더 됐다. 여성농민들의 입장에선 너무 오래 기다린 셈이다. 지역농협은 물론 농협중앙회가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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