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니아 농가의 ‘추운 1년’

[2019 농업 결산] 아로니아 사태

FTA 직불금 투쟁 현재진행형
정부 수매도 요식행위에 그쳐

  • 입력 2019.12.22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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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24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열린 ‘아로니아 생산자 총궐기 대회’에서 전국아로니아생산자총연합회 정수덕 회장이 FTA 피해보전 즉각 실시 등을 요구하며 삭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월 24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아로니아 생산자 총궐기 대회’에서 전국아로니아생산자총연합회 정수덕 회장이 FTA 피해보전 즉각 실시 등을 요구하며 삭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올 한 해를 달군 이슈 품목으로 양파·마늘·배추·무와 함께 아로니아를 빼놓을 수 없다. 소규모 작목으로서 쟁쟁한 주요 농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건 그만큼 더 비정상적인 상황을 겪었다는 뜻이다.

아로니아는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소득이 양호한 작목이었다. 그러나 지자체·컨설턴트들의 무분별한 재배유도와 수요 감소로 점차 생산이 과잉되기 시작했다. 특히 한-EU FTA 이후 유럽산 분말 수입이 폭증하면서 국산 아로니아는 아예 입지를 잃어버렸다.

형편없는 가격에 수확 자체를 할 수 없어진 상황에서 아로니아 농가는 FTA 피해보전직불금에 주목했다. 유사작목인 블루베리가 FTA 직불금으로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듯 아로니아도 이를 통해 당장의 숨통을 틔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대답은 ‘NO’였다. 아로니아 수입은 100% 분말 등 가공 형태로 이뤄지는데, 가공품 수입과 생과 가격은 연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로니아는 특유의 떫은 맛 때문에 생과 섭취가 어렵고, 따라서 국산 아로니아도 가공을 통해 섭취해야 한다. 즉 국산 생과와 수입산 가공품이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는 것과 다름없는 구조다. FTA로 인한 수입 피해를 받았음은 분명한데, 정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아 보상받을 길이 막힌 것이다.

수입 가공품 피해는 아로니아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날 뿐 사실 사과·포도·감귤 등 여타 품목들도 해당된다. 가공품은 물론 바나나·오렌지 등 대체재로 인한 피해도 그 양상이 분명하지만 피해 인정은커녕 피해액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로니아 사태는 그 자체의 논란 이전에 FTA 농업 피해를 바라보는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가 상징적으로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FTA 직불금 대상에서 누락된 후 아로니아 농민들은 아스팔트로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30여 차례의 집회·기자회견·간담회가 있었고 대규모 상경집회로 청와대를 직접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었고 지금은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전이 진행 중이다.

농민들의 끊임없는 절규는 정부의 아로니아 수매예산 편성이라는 작은 성과를 냈다. 그러나 이 또한 제대로 집행되진 못했다. 예산이 부족한데다 올해산 수확기 이후로 신청접수가 늦춰지면서 수매물량이 예상을 훨씬 넘어서버린 것이다. 당연히 kg당 1,688원(농가주장 생산비 3,600원)의 수매단가로 모처럼의 정책이 요식행위에 그쳤다.

만성적 공급과잉에 직면한 아로니아는 일부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올해 한때 과원정비사업의 명목으로 폐농지원이 이뤄졌지만 제한적이었고, 수많은 농가가 지원 한 푼 없이 나무를 뽑아내고 있다. 희망보다 절망이 팽배한 상황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농민들은 내년에도 지루한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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