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니아의 몰락 … 지원 한 푼 없어도 캐내야 한다

행정이 피해 키운 아로니아
빈약한 지원에도 폐농 속출
몰락 책임은 모두 농민에게

  • 입력 2019.03.24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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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가격 폭락에 수입산 증가, 소비 감소로 애물단지가 돼버린 아로니아나무는 결국 캐낼 수밖에 없었다. 지난 19일 충북 단양군 대강면에서 아로니아농사를 짓던 김동율씨가 1,200여평에 심겨진 나무를 모두 잘라낸 뒤 나무 밑둥을 포크레인으로 파내고 있다. 한승호 기자
가격 폭락에 수입산 증가, 소비 감소로 애물단지가 돼버린 아로니아나무는 결국 캐낼 수밖에 없었다. 지난 19일 충북 단양군 대강면에서 아로니아농사를 짓던 김동율씨가 1,200여평에 심겨진 나무를 모두 잘라낸 뒤 나무 밑둥을 포크레인으로 파내고 있다. 한승호 기자

긴 겨울을 지나 봄눈을 틔워야 할 시기지만 나뭇가지들은 잘려나가 땅을 뒤덮고 있었다. 남겨진 밑둥만이 부질없이 흙을 부여잡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곧 포크레인에 뽑혀 나뒹구는 신세가 됐다. 최근 전국의 아로니아 과원에서 펼쳐지고 있는 풍경이다.

충북 단양 대강면의 김동율(60)씨도 2013년 무렵 ‘아로니아 열풍’에 합류한 농민이다. 정부의 가격안정·소득지지 정책이 완전히 실패하고 지어 먹을 농사가 없는 상황에서, 지자체가 야심차게 마련한 새 활로에 농민들이 뛰어든 건 당연지사였다. 묘목값을 50%나 지원해 주며 “심어만 놓으면 군이 다 수매해 주겠다”던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첫 해, 두 해 까지는 그래도 용돈은 벌었어요. 근데 그 다음부턴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거에요.”

몰락은 너무나 빨랐다. 전국의 지자체들이 앞다퉈 아로니아 재배를 유도한 결과 아로니아 생산량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2배씩 늘어났다. 설상가상 한-EU FTA가 발효된 이후 유럽산 아로니아 가공품이 잔뜩 늘어난 국내 생산에 필적할 만큼 들어와버렸다. 반대로 아로니아 ‘소비 열풍’은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

김동율씨가 잘려진 나뭇가지가 빼곡히 쌓인 아로니아 과원을 거닐고 있다. 한승호 기자
김동율씨가 잘려진 나뭇가지가 빼곡히 쌓인 아로니아 과원을 거닐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정부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수수방관했다. 가격이 생산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건 당연한 결과였다. 가격폭락은 둘째치고 수요 자체가 없으니 헐값에라도 내다 팔 길이 없어졌다.

“가격이 싸도 찾는 사람이 있으면 따야죠. 근데 아예 팔리질 않아요. 작년에 수매용으로 200kg, 지인들 것 100kg 정도 따고 하나도 못 땄어요. 다른 농가들 사정도 다 똑같죠. 소득은커녕 갈수록 빚만 늘고 있어요.”

아로니아에 뛰어든 건 농민이지만 그걸 비정상적으로 부추긴 건 지자체며 근본적으로 이 사태를 초래하고 심화시킨 건 정부다. 지자체와 정부의 책임이 결코 농민들보다 가볍다고 볼 수 없다. 농민들의 끈질긴 압박에 최근 정부와 지자체가 5대 5 부담으로 아로니아 과원정비(폐원)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평당 2,000원의 지원금은 지자체와 정부의 책임을 갈음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묘목 심을 때 받은 보조금을 제하더라도 평당 2,000원으론 묘목값도 안 나와요. 나무 캐낼 때 쓸 포크레인 대여비도 하루에 50만~60만원인 걸요. 2,000원 지원은 생색내기 밖에 안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아로니아 폐원은 줄을 잇고 있다. 놔둘수록 손해인지라 설사 지원 한 푼 없더라도 캐내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아로니아 사태는 농정 실패와 행정의 무능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태지만, 결국 그 책임은 ‘평당 2,000원’을 제외하곤 전적으로 농민들이 지고 있다.

김씨는 폐원 후 자두의 일종인 ‘프룬’을 식재하고 있다. 친환경 농법을 추구해서 사과 등 다른 과수를 하기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아로니아와는 달리 도매시장에서 경매도 형성되고 있고, 아무리 못해도 아로니아보다 못할 건 없으리란 생각이다.

“오죽하면 나무를 캐냈겠어요. 작목전환을 하면 공백기가 있어 몇 년을 기다려야 해요. 올해 프룬을 심으면 내후년부터 조금씩 수확하기 시작하고 5년 후부터 본격 수확할 수 있죠. 그 기간을 어떻게 버텨낼지가 걱정입니다.” 김씨의 어두운 표정에서 아로니아 농가들의 비통한 처지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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