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시장 개혁, 더 미룰 명분 없다

  • 입력 2019.11.10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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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도매법인의 독과점을 깨뜨리고 시장 내 경쟁체제를 구축하자는 도매시장 개혁론이 최근 들어 힘을 받고 있다. 또한, 도매시장 개혁을 방치하고 있는 농림축산식품부에 대한 비판 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서울 가락시장 각 도매법인 경매장 앞에서 농산물 하역작업이 이뤄지고 있다.한승호 기자
도매법인의 독과점을 깨뜨리고 시장 내 경쟁체제를 구축하자는 도매시장 개혁론이 최근 들어 힘을 받고 있다. 또한, 도매시장 개혁을 방치하고 있는 농림축산식품부에 대한 비판 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서울 가락시장 각 도매법인 경매장 앞에서 농산물 하역작업이 이뤄지고 있다.한승호 기자

농산물 경매제는 시대의 요구에 직면했다. 경매를 시행하는 공영도매시장의 도매법인들은 농안법이 보장해준 독과점적 지위가 과도한 나머지 농민들을 위한 공익적 역할보다 특혜를 이용한 사익 추구에 함몰됐다. 농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수백억원의 돈이 매년 도매법인을 소유한 기업자본의 뱃속으로 꾸역꾸역 들어간다.

도매시장의 방만한 행태에 그동안 농업분야에 관심이 없던 주류 언론들도 앞다퉈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더불어 도매시장의 고객이자 주인인 농민 출하자들의 분노도 한껏 치솟았다. 이에 도매법인의 독과점을 깨뜨려야 한다는 도매시장 개혁론이 어느 때보다 큰 힘을 받고 있다. 시장도매인제·중도매인직접집하 등 정가·수의거래를 폭넓게 보장해 경쟁을 촉진하자는 게 그 핵심이다.

그러나 도매시장 개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본을 틀어쥔 기득권에 가로막혀왔다. 근래에 이르러 도매시장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기득권을 압도하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정책의 결정권자인 농림축산식품부가 여전히 기득권의 편에 서서 개혁을 틀어막고 있다. 중도매인들의 정가·수의거래는 거래가격 투명성과 기준가격 발견기능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게 주요 논리다.

현행 의무경매제의 폐단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도매법인들은 매년 돈잔치를 벌이면서도 위탁수수료 인하는커녕 표준하역비 전가 등의 행태로 농민들을 옥죄고 있다. 독과점을 타파하고 경쟁체제를 구축하지 않는 한 수익은 환원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정가·수의거래에 문제점이 있다면 이를 ‘어떻게 보완해 도입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상황이지만, 농식품부는 지난 10년 동안 이를 한 번도 공론화하지 않고 눈앞에 뻔히 보이는 폐단을 방치하고 있다.

농식품부가 신봉하는 경매제의 ‘가격투명성’에도 농민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결정된 가격이 전광판에 그대로 표시되는 점 하나는 투명하지만, 그 가격이 결정되는 과정은 결코 농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같은 날 같은 출하자의 같은 물건이 상이한 가격을 받는 일도 허다하고, 중도매인과 출하자의 관계, 경매사와 출하자의 관계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진다. 경매의 규모가 작을 경우 유통주체 간 카르텔이 형성될 우려도 상존한다. 출하자는 깜깜이 가격산정 이후 최종 경락가만을 일방적으로 통보받는다. 시각에 따라선 차라리 출하자가 직접 상인과 가격을 협상하는 정가·수의거래를 더 투명한 거래로 볼 수도 있다. 어쩌면 경매에 대한 농민들의 가장 큰 불만은 이같은 ‘허울 좋은 투명성’에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명분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직접 농산물을 생산해 출하하는 농민들이 도매시장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경매제 폐단에 대한 언론 보도도 연일 이어지며 사회적 분위기까지 조성되고 있다. 이제 도매시장 개혁을 미룰 명분은 거의 사라졌고 개혁을 추진해야 할 명분은 차고 넘치게 됐다.

농민들의 비판과 국민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심지어 정부의 정책기조에도 역행해 애써 도매시장 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농식품부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미 언론에 보도된 바, 도매법인협회엔 농식품부 퇴직 고위공무원의 자리가 마련돼 있고 도매법인-농식품부 간 로비가 성행한다는 의혹이 만연하다. 모욕적인 유착 의혹을 부정하고자 한다면 농식품부는 현재 주어진 명분 아래에서 최소한이나마 상식적인 행보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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