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제 폐단, 알면 알수록 산지도 분통

도매시장 관심 늘어나면서
출하자들 개혁 요구도 빗발

  • 입력 2019.11.10 18:00
  • 수정 2019.11.10 19:04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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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도매시장에서 농민·출하자는 기껏해야 한 번씩 방문하는 손님에 불과하지만 유통주체들은 수천명이 그 안에 상주하고 있다. 때문에 도매시장에 관한 숱한 이슈와 논란은 지근거리에 있는 유통인들의 목소리가 주도해 왔다. 농민들에게 도매시장은 너무 멀고 복잡했으며, 몇몇 농민단체 중앙 간부의 목소리가 농민들을 대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최근 도매시장에 변혁의 바람이 거세지고 유수의 언론 보도까지 이어지면서 농민들도 도매시장을 들여다보고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도매시장에 관심을 갖는 농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관행 경매제도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가락시장 품목별 생산자협의회(회장 곽길성, 협의회)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산지 농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지난 6월 발족시킨 조직이다. 전국양파생산자협회·전국배추생산자협회·진도대파협의회·둔내작목반 등 전국 혹은 지역단위의 실질적인 품목 출하자 농민조직으로 구성돼 있다.

경매제의 폐단을 피부로 체감하며 살아온 이들은 협의회 구성을 계기로 도매시장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고 품목별 통합경매, 경매사 공영제, 거래제도 다변화 등의 대안을 논의하고 있다. 맹목적인 경매 비판과 대안 추종이 아닌, 대안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보완 방안까지 심도있게 논의 중이다.

정관교 둔내작목반 회장은 “가락시장에서 1만원이 나와도 지방도매시장에선 1,000원이 나온다. 가락시장 경매의 기준가격 결정기능이 점점 상실돼 위탁상(수의거래) 쪽으로 출하를 전환하고 있다. 경매제는 실패작이고 절대 농민과 소비자를 보호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최근 도매시장 개혁 및 경매제도를 돌아보는 언론보도가 이어지자 농민·출하자들이 경매제가 지닌 폐단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며 시장도매인제 도입 등 또 다른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농산물 도매시장인 서울 가락시장에서 과일 경매가 이뤄지고 있다. 한승호 기자
최근 도매시장 개혁 및 경매제도를 돌아보는 언론보도가 이어지자 농민·출하자들이 경매제가 지닌 폐단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며 시장도매인제 도입 등 또 다른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농산물 도매시장인 서울 가락시장에서 과일 경매가 이뤄지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제주는 국내 겨울 노지채소 생산을 전담하는 곳이라 지역 자체가 품목 생산자조직의 성격을 띤다. 최근 제주 농민들 사이에서도 한창 경매제를 향한 볼멘소리가 터져나오는 중이다.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가 도입되면 지역에서 출자해 직접 시장도매인을 운영해보자는 논의까지 전개되고 있다.

고창덕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사무처장은 “경매는 출하한 뒤 경매사에 전적으로 의존해 전표가 오기 전까지 가격을 알 수가 없다. 수수료를 떼고 나면 생산원가에도 미치지 못할 때도 많다”며 “가격을 잘 받기 위해 경매사를 상대로 한 로비와 접대가 횡행하기도 한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올 하반기 들어 도매시장 개혁의 선봉으로 급부상한 출하자조직은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회장 백현길, 한유련)다. 대아청과 매각 사태를 겪으며 위탁수수료 인하 투쟁을 위해 비대위를 결성했는데, 이것이 경매제 자체에 대한 문제인식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최병선 한유련 비대위원장은 “수수료 때문에 비대위를 결성했는데 정작 수수료가 문제가 아니었다. 출하자들이 (경매로 인해) 보이지 않게 이익을 탈취당하고 있더라. 들여다보면 볼수록 말도 안되는 문제들이 보인다”며 분개하고 있다.

한유련은 가락시장 안에 사무실을 둔 산지유통인 단체로 출하자조직으로는 가락시장에 제법 입김이 강한 축에 든다. 경매 참여 중도매인 확충과 거래제도 다변화 등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으며, 최 위원장이 ‘시장 주재 출하자’ 역할을 자처해 매일 경매현장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

도매시장 정체성의 근본은 농민·출하자의 이익 보호에 있다. 그러나 생산 현장에선 도매시장의 현행 경매제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도매시장 개혁을 늦춰선 안되는 가장 큰 명분이 바로 도매시장의 뿌리인 산지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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