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대전 도매시장 개혁 가로막나

“도매법인 철밥통에 경고를”
대전시 도매법인 공모제 시도
농식품부에 막혀 제자리걸음

  • 입력 2018.12.23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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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도매법인 공모제를 통한 대전시의 도매시장 개혁 시도가 농식품부에 가로막히고 있다. 사진은 대전 노은도매시장의 경매 모습. 한승호 기자
도매법인 공모제를 통한 대전시의 도매시장 개혁 시도가 농식품부에 가로막히고 있다. 사진은 대전 노은도매시장의 경매 모습. 한승호 기자

대전광역시(시장 허태정)의 도매시장 개혁이 다시 한 번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이개호)에 가로막힐 태세다. 도매법인 공모제를 도입하려는 대전시의 조례개정안에 대해 승인권을 가진 농식품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전시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도매법인 재지정 시 허가제→공모제 전환 △위탁수수료 상한 7→6% 하향을 내용으로 하는 조례개정을 추진한 바 있다. 당시 농식품부는 이 조례안을 승인했다가 ‘시장관리운영위원회 미경유’라는 석연찮은 이유로 뒤늦게 승인을 철회했다.

이에 대전시는 시장관리운영위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도매법인 공모제 전환 건만 조례안에 넣어 지난달부터 재차 개정을 추진했다. 출하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이득이 되는 건 위탁수수료 하향이지만, 장기적으로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건 도매법인 공모제이기 때문이다.

도매법인들은 5년마다 개설자로부터 재지정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전국 33개 공영도매시장 역사상 재지정에 실패한 법인이 단 하나도 없을 정도로 큰 의미는 없다. 위탁수수료를 걷는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수십년 동안 견고하게 보장받으며 연간 수억에서 수십억원씩의 순익을 쌓아가는 구조다.

재지정 허가제의 공모제 전환은 이같은 도매법인들의 철밥통에 경종을 울리는 효과를 가져온다. 도매법인의 교체 여부를 떠나 적어도 기존의 도매법인들이 출하자·소비자에게 수익을 더 많이 환원하도록 압박하는 장치가 될 것은 분명하다. 김윤두 건국대 농식품경제학과 교수는 “도매시장은 기득권이 워낙 공고해 새로운 도매법인이 평가를 통해 들어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공모제는 그보다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도매법인들이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토록 만든다는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농식품부다. 올해 초엔 대전시의 도매시장 공모제 계획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농식품부가 이제와서 한 달 가까이 조례안 승인을 미루며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민호 농식품부 유통정책과 사무관은 “도매시장에서 벌어지는 분쟁도 많고 도매법인 관리수단이 부족하긴 하지만 단지 그걸 공모제로 해결하겠다는 건 무리가 있다”고 사실상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농식품부는 도매법인 공모제로 인한 투기자본들의 무분별한 도매시장 진출을 가장 우려하는 바로 꼽고 있다. 하지만 현 허가제 하에서도 도매법인 매각·인수를 통해 투기자본은 도매시장을 활발히 침범하고 있으며, 공모제에 선정기준을 명확히 정해둔다면 오히려 투기자본을 걸러내고 방어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농식품부는 공모제의 대안으로 농식품부의 도매법인 평가기준 정비를 준비하고 있다. 전국 공영도매시장 도매법인 평가에 도매법인의 역할과 책임을 보다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내년 1~2월 중 기준을 조정 발표할 계획이다.

김명현 대전시청 농생명산업과 주무관은 “농식품부의 도매법인 평가는 도매법인 재지정과의 연결고리가 없다. 법률에 그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든지, 그게 아니라면 지자체의 시책을 지지해 줘야 하는 게 아닌가”라며 답답해했다. 농식품부 답변이 늦어지면서 대전시는 결국 시의회 회기를 한 차례 넘기게 됐다.

도매시장 개혁은 현 시스템으로 지난 수십년간 부를 축적해온 기득권 세력에 대한 제재이기 때문에 행정의 강력한 의지와 추진 없이는 불가능하다. 개혁에 미온적인 농식품부를 대신해 대전시가 칼을 빼들었지만, 정작 농식품부가 도매법인들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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