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전엔 있고 정부엔 없는 것, ‘도매시장 개혁의지’

도매법인 독과점 구조·시장 성장 정체
문제는 분명한데 시장 개혁은 각개전투
정부 호응 없이 서울·대전만 고군분투

  • 입력 2018.03.16 16:11
  • 수정 2018.03.16 16:13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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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산물 도매시장이 성장 정체를 겪으며 대외경쟁력을 잃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시장 내 경쟁요소 제한에 있다. 도입 초기엔 거래질서 확립과 농가 판로확보에 혁혁한 역할을 했던 경매제지만, 도매법인의 독과점적 지위와 지나치게 안정적인 수익구조는 차츰 도매시장의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자리잡았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도매시장이라면 소수의 도매법인이 별다른 노력 없이도 안정적인 수수료 수익을 올리는 구조를 갖고 있다. 중앙도매시장의 경우 수익규모는 연간 수십억원에 달하기도 한다. 농민이나 농협, 일부 중도매인들이 불안정한 소득에 고심하는 것과 비교하면, 농업분야의 자본이 도매법인에 과도하게 집중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안정적인 고수익이 보장되는 한 도매시장 발전을 위한 도매법인들의 치열한 노력이나 재투자를 기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도매시장 개혁의 총대를 멘 것은 가락시장을 관리하는 서울시다. 서울시는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추진하고 상장예외품목을 굉장히 폭넓게 인정하는 등 도매법인의 독과점 체제를 깨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 왔다. 지난해엔 위탁수수료 상한선을 새로 설정함으로써 도매법인이 표준하역비를 출하자에게 전가하는 행위를 막았다.

도매시장 내 도매법인의 독과점 구조를 깨기 위한 시장 개설자들의 노력이 도매법인들의 반발로 정체되고 있는 가운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며 현 상황을 수수방관하고 있는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말 서울 가락시장 내 경매장에서 중도매인과 유통 상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문제는 도매시장에 대한 정부의 문제의식이 서울시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농안법이 시장도매인제를 보장한지 18년이 지났음에도 가락시장이 이를 도입하지 못한 건 정부와 서울시의 손발이 어긋난 탓이 크다. 정부는 줄곧 시장도매인제 도입에 앞서 이해주체 간 합의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거대 자본을 갖춘 기득권 세력이 완고히 버티고 있는 이상 애당초 합의는 이뤄질 수 없었다.

상장예외품목 확대나 위탁수수료 상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부 정책이 서울시의 개혁을 뒷받침해주지 못하자 서울시 홀로 ‘독단’이라는 비판을 떠안게 되고, 연거푸 법정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최근 수입당근 상장예외 지정 취소소송의 결과는 국내 최고 로펌 ‘김&장’을 동원한 도매법인의 승리였다.

대전시의 사례에서도 정부의 미적지근한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도매법인 지정방식 공모제 전환, 위탁수수료 하향조정 등의 내용을 담은 대전시의 계획을 지난 1월 승인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뒤늦게 ‘시장관리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다시 승인 요청할 것’을 대전시에 권고했다. 비록 권고라고는 하지만 중앙정부가 자치단체를 상대로 한 권고인 만큼 가벼이 넘길 수는 없다.

시장관리운영위원회는 의결권이 없는 심의기구다. 이에 대전시는 운영위를 거치지 않고 개설자 직권으로 도매시장 개혁안을 마련, 정부 승인을 받고 시의회 의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부가 입장을 번복함에 따라 몹시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결과적으로 농식품부가 도매시장 개혁의 역풍을 오롯이 대전시에만 떠맡긴 꼴이 됐다. 대전시는 현재 절차적 하자 여부를 재검토하고 있다.

기득권을 형성한 도매법인들은 도매시장의 변화에 가장 보수적인 성격을 띤다. 지금까지 수 차례의 농안법 개정으로 도매시장 내 경쟁체제 구축의 여지가 생겼지만 도매법인들의 반대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다. 정부 차원에서 확고한 목표의식을 갖고 정책을 끌어가지 않는다면 도매시장 개혁은 쉽사리 이뤄지기 힘든 성격을 갖는다.

문제는 있지만 정부의 해결의지는 빈약하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자체적으로나마 외로운 개혁에 나서고 있는 서울시나 대전시의 노력은 충분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 김완배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대전 사태에 대해 “도매시장은 사람들이 잘 알기 어려운 부분이라 자연스럽게 기득권이 이익을 누린다. 하지만 물은 고이면 썩는다. 물이 썩다 썩다 냄새가 나기 시작하니 이를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대전에서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다수의 도매시장 개설자들과 달리, 서울시와 대전시는 최소한의 자정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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